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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Sep 23. 2019

11. 같은 나이의 낯선 네 사람이 모였다

감성인간 에세이



지난 주 내가 주최한 걷기모임이 있었다. 나까지 총 네 명으로 소박한 모임이었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모두 스물여덟, 동갑이었다. 나는 사실 조금 들떠 있었다. 간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기도 하고, 동갑 친구라니, 금방이라도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회에서 드디어 친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일까. 나는 모임 전부터 김칫국 한 사발을 들이부었다. 과한 기대는 언제나 실망을 불러오지만, 그래도 모든 느낌이 좋았다. 나는 그 예감을 믿는 편이었다.    


 

걷기 코스는 꽤 길었다. 당초 짤 때는 8km 남짓이었는데, 완주하고 보니 만오천 보 이상이 찍혀 있었다. 13km 남짓 되는 거리였다. 오차가 너무 컸다. 기획과 안내가 어설펐던 것이다. 걷고 나니 탈진할 것 같았다. 두 다리가 덜덜 떨려 왔다. 일어나서 쉬다 걷기모임만 한 게 아니라 평소대로 일상생활도 하고 모임도 한 것이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왜 그렇게 미련하게 걸은 것인지. 나를 믿고 따라와 준 걷기 모임원들도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첫 만남이라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우리의 정확한 경로는, 공덕역에서 시작해 한강공원을 쭉 따라 걷다가 다시 도심으로 접어들어 홍대역으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최종 도착지는 상수역이었다.      



처음엔 다들 기대를 했던 듯하다. 아무래도 생소한 걷기모임은 처음이었을 테니. 게다가 다 같은 나이라는 것도 그들을 설레게 하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다. 나도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모임 당일에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통성명을 하고, 하는 일을 묻고, 걷기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였다. 화기애애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밝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같이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서로 친해지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나빴거나 특별히 실수를 저질렀던 건 아니다. 분명 나름 진행도 매끄러웠고, 이야기도 적지 않게 나누었다. 그러나 서로의 벽이 느껴졌다. 더 이상 다가갈 수도 없고, 다가가면 실례가 될 것만 같은 단단한 벽. 첫 만남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이겠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니 답답했다. 어차피 오늘 하루 만나고 헤어질 사이라면 여행자처럼 좀 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나눌 수 있었지 않을까. 그렇게 주도하지 못한 내 능력 부족이 한스러웠다. 내가 기대한 것보다 너무 건조한 모임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또 첫 만남에 운명적인 상대가 나타나길 기대한 것일까. 그것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좀 더 따듯한 모임이 되길 바랐다. 어떨 땐 오히려 낯선 상대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물론 그것이 그들에겐 부담이 되었을지 모른다. 허나 나는 지금까지 모임을 주도해 만든 이유도, 머지않은 미래에 나만의 독립서점을 열겠다는 이유도, 다 그것 때문이었다. 일상에서 갈증을 느끼는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 내 공간에서만큼은 사람들이 편하게 소통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게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현실화 되기 어렵다면 나는 매우 당황스러울 것 같다. 내가 의도한 대로 사람들이 느낄 리 만무하니까. 나의 블로그 공간도 그런 곳이 되도록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방문해주는 분들이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노력하다 보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이번 모임에서 얻은 교훈은, 나는 아직 모임을 운영할 자질이 부족하단 것이다. 누군가를 이끌 만한 적극성이 부족하다. 나중에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 모르지만, 아직은 아니다. 나는 나보다 나의 공간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내 공간이 너무 좋아서 찾아와주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당분간 내가 직접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기존의 모임에 내가 들어가는 것을 택하겠다. 그런 경험이 쌓여 훗날 내가 바라는 모임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사람 냄새 나는 모임, 혹은 공간을 만들 수 있기를.  


   


2019.09.23.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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