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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Sep 16. 2019

10. 그러고서 아무 일도 없었다

정용하 에세이



그러고서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서로 번호를 주고받기 전으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서로 가벼운 안부조차 나누기 전으로 돌아갔다. 당연했다. 서로 마음이 없었으니. 그렇다면 쿠키는 무엇이고, 케이크는 무엇이란 말인가. 왜 내가 건넨 술자리 제의에 응했던 것일까. 왜 내가 술값을 내니 다음 번엔 자신이 꼭 내겠다는 말을 한 것일까. 그저 흔한 인사치레였을까. 드디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더니 이번에도, 역시나, 아무 일도 없었다.     



내가 좀 더 다가갔다면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연락이 끊기고 나서 카페에서 내가 음료 주문할 때 좀 더 살갑게 대했더라면 좀 더 진전됐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내가 시작한 관계도 아닌데. 또 내가, 이끌어야 했단 말인가. 나는 그런 관계에 지칠 대로 지쳤다. 서로 마음이 있었다면 이미 우린 잘 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마음을 닫았던 것도 아니다. 그녀가 어느 정도 마음을 보였다고 생각하고, 나는 술자리를 제안했고, 주말에 만나자고 말을 꺼냈다.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그녀를 알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뜨뜻미지근한 답을 내놨고, 나는 더 다가가지 않았다. 그게 끝이다. 의문이 많이 남지만 더 이어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지난 주엔 친한 대학교 동기와 다퉜다. 그가 이번에 직장을 옮긴다고 했는데, 어찌 됐는지 그 소식이 궁금해 물어봤다. 그리고 그는 출근한 지 3주 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잘 하라고 격려했다. 그걸로 연락이 끝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단톡방에서 같이 듣던 다른 동기가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느냐는 투로 그 친구를 나무랐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이와 같은 좋은 일은 물어보기 전에 미리 알려 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한 친구끼리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아직 계약직이라 그리 좋은 일도 아니라고, 그래서 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좋은 일이든 아니든 근황의 변화가 있으면 알아서 좀 말해 달라, 라고 따졌다. 대학교 졸업하고 서로 만나기도 힘든데 기본적인 소식은 알고 지내자는 의미였다. 별것 아닌 일로 괜한 싸움이 붙기 시작했다.     



친구는 말하고 싶지 않은 소식을 왜 굳이 말해야 하느냐며 오히려 역정을 냈다. 나도 그 말에 화가 났다. 그럼 그동안 전한 소식은 무엇이냐고, 한 번이라도 먼저 만나자고 얘기한 적 있었느냐고 따져 물었다. 없었다. 한 번도 없었다. 늘 내가 혹여나 연락 끊길까봐 전전긍긍하며 연락했었지, 그 친구는 매번 일상이 바쁘고 여자친구 만나야 한다며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니,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는 화가 폭발했고, 소중한 관계면 지키려고 노력하라는 말을 남기고 그 단톡방을 나갔다. 아무리 진한 추억을 공유한 사이라 하더라도 지금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필요 없다. 그건 그저 옛 인연일 뿐이다. 옛 추억만 먹고사는 짓은 이제 그만할 것이다. 


    

아마 그 친구도, 나도 자존심을 굽힐 리는 없을 것이다. 예전엔 자주 마주치기라도 해서 자연스레 갈등이 풀어졌지만 이젠 누군가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면 관계 회복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자존심도 더욱 세졌다. 어쩔 수 없다. 그 친구와 나와의 우정이 여기까지인 것일 뿐. 나는 더는 떠나간 관계에 아쉬워하지 않는다.          




올해 들어 소개팅을 꽤 여러 번 했다. 그래도 매년 꾸준히 서너 번은 하는 듯했다. 물론 알아서 들어오진 않고 내가 해달라고 매번 졸랐다. 그러나 할 때마다 어렵다. 소개팅 해서 인연을 만날 수나 있는 것인지 하면서도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이것 아니면 만날 창구가 별로 없다. 어찌 보면 궁여지책이다. 올해 한 것 중에는 상대가 마음에 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면 꼭 상대는 내게 마음이 없더라.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내가 마음에 들면 상대는 아니고, 상대가 마음에 들어 하면 나는 아니고... 대체 사람들은 어찌 연애하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연애하기가 나만 이리 어려운 건지 답답했다.    


 

그래도 내 쪽에서 먼저 마음을 닫진 않을 것이다. 분명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는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먼저 다가가기란 좀처럼 어렵게 됐지만, 조금만 먼저 다가와 줘도 마음을 활짝 열어젖힐 것이다. 그러니 혹시 내게 마음이 있다면 조금만 티를 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성큼성큼 다가가겠다. 그게 한국에서 좀처럼 어려운 일이란 걸 알지만, 그래 주는 사람이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면 나는 그녀를 운명의 한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라나? 이건 속으로만 생각해야겠다.)     



올해가 가기 전에 그 인연을 꼭 만났으면 참 좋겠다.     



-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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