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Sep 11. 2019

9. 이런 내가 좋아해서 미안해요

정용하 에세이



여자들은 보통 자신감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 물론 지나치면 부담스럽겠지만 누구나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하는 이성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늘 애매하게 굴고 소심하게 행동한다. 기본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해서다. 그러나 그보다도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상대를 괜히 곤란한 상황에 빠트렸단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만 아니었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을 텐데.



여자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나는 못생겼다. 외모로 누군가의 마음을 훔칠 만큼 뛰어나지 않다. 그게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언제나 나의 내적인 매력, 세심한 배려로 승부를 봐야 했다. 그걸 알기에 첫 만남에 상대가 내게 이성적인 호감을 가질 리 없다고 여긴다. 꾸준히 알아가야 그나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데 나는 그걸 뛰어넘어 나 같은 사람이 좋아해서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내가 잘생긴 사람이었다면 그녀가 더 기분 좋고 선택이 쉬웠을 텐데 못생긴 내가 다가가 당혹감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모든 여자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만 미안한 마음은 모든 여자에게 갖고 있다. 왜냐면 나 역시 예쁜 여자가 다가오길 바라고, 내 이상형에 못 미치는 사람이 다가오면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상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거리에서 이성의 번호를 물어본 적이 없다. 차마 상대에게 미안해서 그러지 못하겠다. 심지어 잘생긴 사람이 해도 그건 거절 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내가 번호를 달라고 하면 상대가 얼마나 당혹스러워하겠는가. 더군다나 번호를 받아도 문제다. 받자마자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쳐야 하는데, 온갖 잡생각이 많은 나는 늘 행동과 표현에 신중을 기한다. 그건 비단 낯선 상대뿐 아니라 마음에 드는 이성이라면 대체로 그렇다. 그러니 이성의 마음을 얻기가 매번 어렵고, 좋지 않은 결과만 받아든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한없이 기다리기만 하게 됐다. 이런 나를 좋아해줄 한 사람을. 그리하면 더욱 더 이성을 만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도 알지만, 나의 마음은 점점 그렇게 굳어져 갔다. 그래도 인연이 한 사람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런 상대가 나타난다면, 그런 그녀가 내 옆에 한 일이 년만 붙어 있어준다면, 나는 그녀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마음 같아선 그녀와 바로 결혼하고 싶어질 것 같다. 중요한 건 이런 마음으론 더 승산이 없단 거겠지만.



최근에 내가 자주 가는 카페 직원에게 쿠키를 선물받았다. 처음에는 단골 손님을 챙기는 일종의 서비스라고 생각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개 직원이 단골 손님까지 챙길 이유는 없었다. 그녀 입장에선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 그만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녀와 나 사이에 그 전에 의미를 가질 만한 일이 전혀 없었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도 그녀는 내게 조각케이크를 건넸다. 유통 기한이 막 지난 상품이란 말에 조금 김이 새긴 했지만 그래도 반복된 호의에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많고 많은 음식점과 카페와 상점을 이용해왔지만 직원이 내게 그런 호의를 보인 건 처음이었다. 주변에 물어봐도 두 번째 케이크는 좀 의미가 있다고 보는 시선이 많았다. 대체 내게 그것을 왜 준 걸까 혼자 고뇌에 빠졌지만 그 이상의 표현은 없었기에 나도 그냥 넘기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음료를 주문하려는데 그녀가 '어디 사느냐'고 물어왔다.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나는 거기에 또 의미를 실었고, 볼 일 다 보고 컵을 반납할 때 그녀에게 '맥주 좋아하느냐'는 물음을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그 자리에서 연락처를 주었고, 그 다음 날 술자리를 가졌다. 그곳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첫인상은 어땠고, 지금 무슨 일을 준비 중인지 등. 그런 얘기를 나누는 속에 나는 그녀에게 호감이 생겼고, 더 다가가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다. 나도 마음이 큰 것은 아니어서 그 이상 진전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잘 될 것 같았던 분위기가 왜 그렇게 전환됐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상대는 애초부터 내게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닐는지. 그러면 왜 초콜릿을 주었고, 케이크를 준 것인지. 그녀의 말처럼 단순히 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단골손님인 내게 무뚝뚝하게 대한 것이 늘 미안했다고 했다. 그 많고 많은 손님 중에 왜 유독 나에게만 미안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나도 내가 먼저 상대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이제 그럴 여력이 없다. 정확히는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겪고 싶지 않다. 나에게 어느 정도 호감이 있는 사람 하고만 인연을 맺고 싶다. 마음이 있다면 드러나기 마련이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인연은 맺어진다. 그런 자연스러움에 나는 몸을 맡기기로 했다.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될 상처는 받지 않겠다. 분명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인연은 나타날 것이다. 그때 나는 그 상대를 놓치지 않고 꼬옥 붙잡으면 된다. 더는 나에게 마음 없는 상대에까지 마음을 쓰고 싶지 않다.



-19.09.09.














매거진의 이전글 '자만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