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여전한 베스트셀러 <걷는 사람, 하정우> 이전에 <하정우, 느낌 있다>가 있었다. 하정우의 첫 에세이다. 전작은 2011년 출간됐었다. 그렇다. 첫 작품의 존재를 모를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그 당시 (내 기억이 틀릴 수 있으나) 이 책은 <걷는 사람, 하정우>만큼 흥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 작품에 매료되어 첫 작품을 찾아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책도 두 번째 책만큼 매력적이다.
<걷는 사람, 하정우>는 책 제목에 맞게 걷는 이야기가 상당하고, 비교적 최근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에 반하여 <하정우, 느낌 있다>는 2011년까지의 전반적인 기록과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하정우'라는 확실한 매력이 두 책을 관통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정우의 마음가짐은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오히려 그의 열정 폭은 더 넓어졌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나이와 영화감독 도전기이다. 그때도 연출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지만, 실제적으로 행한 바는 없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때를 기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하정우는 실제 행동에 옮기면서, <롤러코스터>와 <허삼관>을 연출해냈다. 대단한 열정과 실행력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하면, 하정우가 직접 그린 다수의 그림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화집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 밖에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볼 수 없었던 그림에 관한 이야기, 매니저, 학교 친구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어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원래 그렇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보다 '누가'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누가 하냐에 따라 별 재미없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린다. 그런 점에서 전작도 충분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언젠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을 많이 벌려 하고, 이름을 얻으려 하고, 아름다워지려 하는 이유는 모두 사랑 때문이 아닐까. 돈이 많을수록, 이름을 날릴수록, 아름다울수록 더 멋진 사랑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다양하고 복잡해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도 결국에는 자신이 짝을 얻기 위한 단순한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p206-209
하정우는 참 대단하다. 스스로는 굉장히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그런 겸손함과 인간다움이 하정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가진 능력을 보면 전혀 평범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은 한 가지 능력도 제대로 못 갖춘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들 고만고만한 능력으로 살아간다. 헌데 연기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이, 그림, 글쓰기에도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는 상황이라니. 이건 천부적 재능이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물론 하정우의 노력을 평가 절하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다. 일단 가지고 있는 재료 자체가 적은 사람이 너무 많다. 그에 반해 하정우는 가진 재료가 풍부했다. 그의 아버지가 원로 배우 김용건이라는 것부터 그것을 알 수 있다. 하정우는 그 재료를 잘 다듬고 수련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재능을 꽃피웠다. 재능만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 재능을 게으름과 잘못된 삶의 태도로 날려버린 사람 또한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더 하정우의 재능과 노력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이 책에는 하정우가 출연했던 영화의 뒷이야기도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용서받지 못한 자>다. 솔직히 그 영화를 보진 못했다. 그러나 단 하나의 명장면, 하정우 상병이 이등병에게 군대 전화 예절을 가르치는 장면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 장면은 인터넷이나 SNS상에 이미 많이 떠돌았던 장면이다. 군대 시절을 떠오를 정도로 리얼하고 디테일한 연기가 인상 깊으면서도 공감이 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헌데 그 이등병 역할이 윤종빈 감독이었다니. 나는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 둘은 학교 선후배 사이였는데, 재학 당시는 서로 알지 못하고 졸업 후에 같은 업계 종사하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아래 스크립트를 보면서 오랜만에 <용서받지 못한 자>의 명장면을 떠올려보자.
종빈: 통신보안 이병 이지훈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정우: 그러면 도와줄 수가 없어. 너처럼 그렇게 느리게 말을 하면 도와줄 수가 없어. 무슨 말인지 알지? 딱, 신속 명확 정확하게. 알았어?
종빈: 네, 알겠습니다.
정우: 아니 모르는 것 같은데. 손 대, 손 올려. 몇 대 맞을래?
종빈: 저 한 대 맞겠습니다.
정우: 충분해? 될 것 같아?
종빈: 네, (맞는다) 아야...
정우: (즐거워하며) 흐흐.
이 책은 영화보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영화배우 하정우가 그림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론 <걷는 사람, 하정우>와 내부 구성이 비슷한데, 총 세 개의 쳅터로 이루어져 있다. 첫 편이 바로 '화가'로서의 하정우이다. 하정우는 이 편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와 그림에 대한 인사이트, 그림과 관계된 에피소드를 풀고 있다. 사실 나는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가 얼마나 그림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 외에도 중간 중간 그가 그린 그림과 각 쳅터 끝에 세계적 화가에 대한 인사이트가 삽입돼 있다. 더불어 2편은 '배우'로서의 하정우, 3편은 '인간'으로서의 하정우를 담고 있다.
2019.10.16.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