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감성, 하루의 기록
감성에세이집 8편 '누가 변해버린 걸까'
누가 변해버린 걸까
오후 11시가 넘은 시각, 해야 할 일이 있어 카페에 들렀다가 자취방으로 가는 길이었다. 차가운 밤기운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사실 그날 동아리가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 반, 실제로 일을 처리해야 되는 거 반. 그 즈음이면 아마 1차 음주 전쟁에서 전투를 미처 끝내지 못한 동아리원들이 2차로 옮겨갔을 시간이었다. 나는 그중 모임을 주도하는 한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해”
“예, 형님. 어디세요? 얼른 오십시오.”
후배는 한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내게 꼬박꼬박 형님이라 불렀다. 그와 통화할 때면 마치 조직의 세계에 몸을 담군 듯했다.
“누구랑 있는데?”
나는 어물쩍거리면서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일도 다 마쳤겠다, 시원한 맥주가 댕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입 끝에 ‘갈게’라는 대답이 어물거렸다. 결국 혼자 편의점에서 500ml 맥주 한 캔과 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그대로 자취방으로 향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별 다른 생각 없이 가지던 술자리가 이젠 무엇이 꼬여버린 건지 가벼운 모임조차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마냥 재미만 좇던 예전이 차라리 마음은 편했던 것 같은데, 관계에서 재미와 더불어 의미까지 거두려 하다 보니 무언가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나는 원래 누구를 만나든 만나기 전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사람이다. 우리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그려 가며 주고받을 대화를 미리 생각해보곤 한다. 그것은 상대방과 함께할 시간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 짐작하기 위함이다. 이 얼마나 계산적이고 부자연스러운 행위인가. 하지만 그 또한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였다. 나는 유독 만남 뒤에 오는 공허한 감정을 견디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나를 무너뜨릴지 아니까 차마 그렇게 되는 걸 두고 보지 못하고, 애초에 그 감정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작은 약속 하나조차 잡는 것이 내게 무척 어려운 일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과거의 향수에 빠져 있다. 몇 동의 신축 건물이 들어서고, 밀물과 썰물의 흐름처럼 학교 사람들의 변화가 있었지만, 학교는 그대로 자리하고 있고, 나는 여전히 그 속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있다. 크게 달라졌다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없는데 나의 마음은 왜 이토록 달라져 있는 걸까. 학교 앞 거리를 걸을 때면 내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아득해지고 과거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포차에서 여럿이 밤새 술을 마시며 그들에게 정을 듬뿍듬뿍 퍼주었던 지난날. 친구, 선배 자취방에 불려 다니며 별것도 아닌 일로 즐거워했던 그때. 물론 이것들은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같은 행동을 해도 지난날의 것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놓쳐 버려선 안 되는 기억을 과거의 어느 시점에 떼 놓고 온 사람처럼. 학교 앞을 걸을 때마다 아스라이 떠오르는 기억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지난날의 기억을 벗어던지려는 마음도 안고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나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매일 같이 사람을 만나지만 끊임없이 불안에 떨었고 혼자 있는 걸 두려워했다. 내 안에서 정과 함께 나의 존재도 그들에게 퍼다 날랐다. 그것은 지금도 그렇다. 사람을 만나면 자꾸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했던 그때는 지금보다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아무튼 나는 홀로 자취방에 들어가는 게 두려워 친구를 부르거나 해 뜰 때까지 친구 자취방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다. 즐거웠던 만큼 그 뒤에 오는 허한 감정은 큰 파도처럼 나를 덮쳤고 나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되돌아가기 두려워하는 모순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혼자만의 시간을 늘리고, 확신할 수 있는 상대와 함께 하려 했다. 나의 존재도 지키면서 관계에서의 재미와 의미도 쟁취하려 했다. 누가 봐도 욕심이 지나쳤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관계의 범위를 한정하다 보니 그 속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전무하다시피 하게 되었다. 누굴 쉽게 만나지도 못하고 자취방에서 홀로 캔맥주나 하는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누가 너보고 외톨이를 하라 했냐. 그렇다. 방문을 열고 연락처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면 얼마든지 만남을 가질 수 있고, 혼술이 아닌 ‘여러술’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방문은 마음의 문처럼 쉽게 열리지 않았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학교의 풍경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변했다곤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주변의 사람도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제자리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며칠 전 내가 쓴 글귀가 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변한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순간을 글이다> 중에서
그래도 다행히 그 관계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이들이 있다. 나와 친구하자, 손을 건네는 소중한 사람들. 만나는 사람의 수와 횟수는 적어졌지만 만남 뒤에 오는 허한 감정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감정도 결국 아쉬움의 감정이더라. 더 함께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감정들. 오랜 휴학 끝에 복학을 한 첫 학기가 끝이 나는 시점에 와 있다. 관계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외톨이 생활이 조금 심심하고 외로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카페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얻은 건 외톨이만의 부수적인 이점이지 않을까.
작가 정용하/2016.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