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를 대신 해달라는 아이에게
이제 1학년 막바지에 접어든 딸은 학교라는 곳이 재미있기만 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지 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도 8살 되면 학교 갈 거잖아~1학년 1학기는 괜찮은데 2학기는 더 힘들어져. 공부도 어려워지고. 휴..."
아직 1학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숨을 푹 내쉬며 공부가 힘들다는 아이. 네가 얼마나 최하 난이도로 1학년 생활을 했는지 아느냐 되묻고 싶은 입을 꾹 닫고 아이의 말을 계속 들었다.
6학년까지 갈 길이 아주 먼데 뭐가 그리 힘들고 어려울까 싶어 곧바로 어떤 부분이 그렇게 심각하게 만드는지 되묻으려다 혼자 생각을 해본다. 그래, 1학기보다 산수가 어려워졌겠지- 처음 가보는 학교가 신기했을 텐데 이제는 익숙해지니 재미가 없어졌겠지- 계속 앉아서 수업하는 시간이 많은 학교는 원래 재미보다 힘든 곳이지-
친구들은 학원을 다니지만 자신은 학원을 다니지 않음에도, 다른 반은 선생님이 매일 숙제를 내주지만 아이반 선생님은 아주 가끔 수학 1장 풀어오는 간단한 숙제정도만 내어주는데도.. 그조차도 자기 맘대로 풀어지지 않으니 하는 말 같았다.
동생에게 무용담을 늘어놓다가 끝이 났는지 슬쩍 나에게 온다.
"엄마, 오늘 숙제 있는데 엄마가 대신해주면 안 돼?"
생전 처음 숙제 부탁을 해왔다. 숙제가 거의 없으니 그럴 일도 없었고 이런 부탁을 들어줄 엄마가 아닌데도 하는 걸 보면 정말 하기 싫은 날이었나 보다.
"응 안되지. 그건 엄마 숙제가 아니잖아~그런데 말이야, 숙제 안 해가도 되지 않아?"
아이가 아니라 내가 말했다. 숙제를 선생님이 내주지만 한 번쯤 안 해도 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안 해오는 친구가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친구가 없냐 물었더니 모두 잘 해온다고 했다. 분명 숙제를 까먹는 아이가 있을 텐데 모두 해온다니, 엄마들이 아이 숙제를 잘 챙기는구나 싶었다.
"그럼 네가 숙제를 안 해가면 첫 번째겠네? 숙제 안 해가면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궁금한데, 그냥 가봐~"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 말에 아이는 눈을 번쩍하더니 산수문제지를 들고 방으로 가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숙제를 안 해가면 어떤 반응과 분위기일지 감도 안 잡히고,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워질까 봐 숙제를 안 하고 배포 있게 학교에 갈 자신이 없나 보다. FM인 아이의 성향상 그렇게 못한다는 사실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하라고 하는 것보다 해놓고 노는 아이가 딸이지만 정말 하기 싫을 때는 그냥 안 해도 되지 않겠나 생각이 들어서 한 말이었다. 내 말을 듣고 숙제를 하거나 하지 않는 건 아이의 선택이고 하지 않았을 때 혼나는 것도 역시 아이 몫이다.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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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30년 전이나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수업시간에 집중은 못하더라도 앉아있어야 하고, 선생님이 시키는 것들을 해야 하고, 노는 시간밥 먹는 시간 등 모든 시간표는 학교에서 짜주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등 어쩌면 자유보다 강제적으로 해내야 하는 것들이 훨씬 많이 있는 곳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많은 학교. 아이가 커서 사회에 나오면 그보다 더 스펙터클한 세상이 아닌가. 하나 둘 내가 하기 싫은 것도 해보고 해내보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다. 그 반대로 한 두 번쯤은 빠지기도 하고 빼먹기도 하는 등 그 틀에 나를 모두 맞춰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억지로 하기도 일부러 안 하기도 하면서 내가 속한 곳에서 조절을 하며 적응해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네 거지 내 거 아니야'
왜 해야 하는지 왜 하지 않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했을 때 아이는 더 잘 알아들었다. 엄마가 선을 그으며 네 선택이라고 하는 것에 아이는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들으며 한 번 더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할 뿐.
숙제를 하고 나온 아이에게 하기 싫은 거 이렇게 해냈으니 장하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며 안아주었다. 어른도 힘든 순간을 해냈으니, 오늘도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