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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맘 Aug 13. 2021

3.행복한 시간 부자가 되기를 결심하다

장기오프

 장기 오프(장기휴가)를 휴가 신청 노트에 적을 수 있다는 것은 비로소 신규 딱지를 떼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라떼에는 만 2년 정도를 근무하고 나서야 겨우 눈치를 보고 조심스레 휴가 신청 노트를 펼칠 수 있었다.


 2년 만의 휴가라니! 

 장기휴가라면 역시 여행이지!     

 일단 무조건 제주도로 가 늦가을을 즐기기로 했다. 그곳은 이미 여름에 대학 동기들과 다녀온 지역이었다. 햇살 쨍한 바다에서 놀던 첫날, 촉촉하게 젖은 푸른 가로수 길을 걷던 둘째 날, 슬리퍼를 달그락거리며 고즈넉한 여름밤을 즐기던 마지막 날…. 그 느낌이 너무도 아련하고 행복했었기에 이번 여행지 고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휴가를 맞출 수 없는 친구들의 스케줄이었다.      


 “반드시 혼자라도 여행 갈 거야! 이 기회가 어떤 기회인데!”     


 주말을 바라보며 5일을 꾹 견디며 지내온 일반 회사원처럼 나도 이런 보상을 기다리며 참아왔기에 절대로 그냥 기회를 날릴 순 없었다. 자전거 여행은 어떨까? 여행은 편하게 쉬는 것이라는 모토를 가진 나의 친구들과 함께 갔으면 엄두도 못 낼 아이디어였다.


 마침 제주도에는 해안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제주 환상 자전거길’이 있었다. 234 km에 이르는 그 길은 보통 4박 5일을 잡고 즐긴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3박 4일을 목표로 했다. 처음엔 위험하다며 엄마를 비롯한 다른 지인들이 만류했지만, 곧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응원을 받으며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 날씨는 완벽했다. 바람이 불면 제법 쌀쌀한 듯하였으나 방문을 축하라도 하듯 건조한 가을 햇살이 면사포처럼 감싸주니 황홀했다. 자전거 대여점에서부터 해안도로 가로 나갈 때까지는 긴장이 되었으나 바다를 접하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하니 비로소 일에서 해방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혼자 하는 자전거 여행은 날씨나 컨디션 등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하루에 얼마의 거리를 달릴지 모른다. 때문에, 5시쯤엔 잠시 여정을 멈추고 그때 그때 근처의 숙소를 찾아 들어가야 했다. 


아 혼자라 다행이다. 


 정말 내가 오롯이 혼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숙소도 내가 선택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계속 달리고 싶을 땐 달리며, 점심을 거르기도 하고, 때가 아닌 시간에 식사하기도 했다. 모든 결정권은 나에게 있었다.


 시간의 제약도 없었다. 여행 기간 내내 24시간이 모두 내 시간이었다. 중간에 출근하기 위해 자전거를 돌리지 않아도 되었다. 같은 시간으로 맞춘 알람일지라도, 출근하기 위한 새벽 5시가 아니라 달콤한 새벽 공기를 마시기 위한 자율적인 설정이었기 때문에 나의 눈꺼풀 또한 무겁지 않았다. 내 시간이 없었다면 자전거를 계속 탈지, 밥을 먹을지 말지의 선택권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나를 위한 휴가가 없었다면 김포공항으로 출발이나 할 수 있었을 텐가?


 4일째 저녁, 출발점으로 되돌아와 마지막 인증샷을 찍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순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기억하는 경험 중 가장 자랑스럽고 짜릿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정반대의 느낌도 들었다. 참으로 묘했다. 3박 4일간 나는 행복했으나 자전거 여행이 끝난 시점, 이제는 행복이 다시 멀게 느껴졌다. 목표에 다다른 보상이 끝나서일까? 이제 다시 제약이 많은 곳으로 돌아가 그곳에 서야 보이는 목표를 향해 또 뛰기만 해야 하나?


 덜 바쁘고 더 행복하고 싶던 나는 어쩌다 향긋하고 달콤한 커피믹스의 맛을 처음 본 아이처럼 재고 따질 것 없이 다시 그 맛을 찾고픈 마음이 가득해졌다. 

‘대학병원’ 간호사요.   

 그렇다. 나 또한 대학병원의 간호사로 일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병원 안에서는 못 미더운 일 처리 때문에 유능한 동료 선생님들과 예민한 의사들에게 치이며 구박받는 현실일지라도 밖에서는 그만큼 힘들고 소중한 일을 하는 전문직이자,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라는 자부심으로 콧대를 높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누군가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 물으면 굳이 ‘대학병원’이라며 수식어를 붙여 이야기했던 내가 어느새 사직하겠다며 이곳저곳 자랑하듯 말하고 있었다.      

 

“너무 아깝다! 그만한 직장 또 못 찾을 텐데….”    

 

 라는 말과 함께 반드시 오는 질문은


 “그럼 이제부터 뭐할 거야?” 


였다. 당연한 반응이다.

 나에겐 4년간 대학교에서 두꺼운 전공 책을 들고 다니며 공부하고 ‘사족시간’을 매일 붙이며 아픈 다리를 매만지다 잠드는 실습 기간이 있었고, 3차 병원(가장 높은 단계와 규모의 병원) 취업을 목표로 마른 수건 짜듯 쥐어짜 내며 그럴듯한 ‘자소설’을 쓰는 몇 날 며칠이 있었으며, 결국 원하던 직장에 들어왔으나 적응하느라 눈물 흘리며 다녔던 신규 생활의 짜디짠 소금 길을 걷는 경험도 있었다. 그런 나날들이 무색하게 돌연 사직을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아까운 일이었고, 그렇다면 혹시 다른 대책이 있는 것일지, 이제 무슨 일로 월급을 대신 채울 것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확실한 대책은 없었다. 뭉뚱그려진 미래를 얼버무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서 온전한 내 시간이 없다면 선택권은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지 않았던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부를 누리고 싶다면 일단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적 자유를 확보해야겠다는 결론이었다. 당연히 그 뒤로 시행착오도 많을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두려움보다 행복감으로 퇴사 선언을 당당히 할 수 있었다. 나중에 어떤 활동으로 돈을 벌게 될지는 몰라도, 나답게 성공할 자유의 시간으로부터 얻는 것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행복한 시간 부자’가 되기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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