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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y 24. 2020

떡만둣국과 우유

나의 소울푸드는 떡만둣국과 우유다. (사실 더 있다. 엄청 많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갈 떠서 풀어헤친 노란 계란과 같이 먹는다. 식도가 데워지면 떡을 두 개 집어서 넣는다. 운 좋으면 두세 개씩 들러붙은 떡이 한 입에 들어온다. 국물이 넘어가고 난 뒤, 떡의 쫄깃한 식감을 만끽하다가 차가운 흰 우유를 한 모금 마신다. 고소함이 부드럽게 섞인다. 온기가 남아있던 식도가 다시 시원해지면 때맞춰 아삭한 김치를 먹는다. 그리고 다시 국물 한 입, 만두 한 입.


가장 기억에 남는 떡만둣국의 맛은 군대에서 당직이 끝나고 근무 취침 전에 조식으로 나온 떡국을 우유와 같이 먹는 맛이다. 선임에게 깨지고, 간부에게 깨지고, 실수를 연발해서 자괴감이 들 때 아침으로 나온 떡만둣국과 서울우유는 기분을 어느 정도 풀어주었다. 마지막에 남은 소고기들을 긁어 모아 먹으면 군대식 떡국의 풍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매번 조식에는 조미김이 나왔는데, 떡국에도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나왔다면 비닐포장을 뜯지 않은 조미김을 바스락바스락 부수어 떡국에 넣어 먹었겠지. 분명 그랬을 거다.


스물한 살, 내일로 기차 여행을 하던 어느 여름 제천의 ‘보령 식당’에서 먹은 떡만둣국이 생각난다. 대학교 동기들과 서울에서 출발했던 내일로 여행은 대전과 담양, 보성, 순천을 거쳐 여수까지 내려갈 계획이었다. 내일로 중에도 순천의 어느 pc방에 들러 모두가 LOL을 하던 그때, 홀로 인터넷 창을 켜고 여행 계획을 세웠다. 군입대를 한 달 앞뒀던 나는 남은 3일을 혼자 여행해보고 싶었다. 안동과 태백, 강릉을 가고 싶었는데 반드시 제천을 거쳐야 했다.


제천역 앞에는 빨간 간판의 ‘보령 식당’이 있었다. 제천에 있는데 이름이 왜 보령 식당인지는 모른다. 마포 갈매기가 꼭 마포구에만 있지는 않은 거랑 똑같다. 그때만 해도 혼밥과 혼자 여행이 낯설었다. 역 앞 분식집은 혼자 밥을 먹으며 눈치 보지 않아도 괜찮은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떡만둣국을 하나 시켰다.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괜히 혼자 떠나서 감상에 젖어 있는 건 아닌가, 스물한 살의 나는 혼자 하는 모든 게 낯설었다. 그 와중에 떡만둣국이 너무 맛있어서 밥까지 말아먹었다. 사장님, 공깃밥 좀 주세요. 아, 참고로 밥은 공짜였다.


을지로에는 밥을 말지 않아도 될 만큼 떡이 듬뿍 들어갔는데 오천 원밖에 안 하는 분식집이 있다. 조미료를 과하게 쓰지 않아도 사골육수 맛이 살아 있어 맛있는 그 집을 종종 찾는다.

일도 많고 실수도 많아 마음고생 심했던 어느 목요일, 그 집을 찾았다. 같이 저녁 먹자는 선배의 제안도 약속이 있다며 거절하고 나왔다. 홀로 떡만둣국을 음미하지 않으면 쌓여가는 자괴감을 해소할 방법이 도무지 없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군대의 맛이 생각나 우유를 들고 갔다. 이 집 떡만둣국은 너무 맛있어서 그때 그 맛이 나지 않는 건 아쉽다. 사실 그때의 맛이 어떤 맛이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엔 매일 말고 서울우유를 갖고 가면 그 기억이 다시 살아날까.


군대에서 우유와 함께 먹은 떡국도 좋고, 보령 식당의 밥 말은 떡만둣국도 좋지만 이제 ‘떡만둣국’ 하면 을지로도 생각이 나겠다. 소울푸드가 괜히 소울푸드인가. 삶의 힘든 순간들에 가장 손쉽게 위로를 건네주는 오랜 소울메이트 같은 음식 아닌가. 그런 소울푸드가 고작 오천 원이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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