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누구나 봉인을 해제시키는 영화를 하나쯤은 갖고 있다.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밤에 틀었는데 짙은 여운으로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기까지 넋을 놓게 되고, 그 밤을 잠 못 이루는 밤으로 만들어주는 영화 말이다.
연인과 헤어진 사람에게 <이터널 선샤인>이 그렇다. 나에게는 꿈을 잃고 살던 어느 날 다시 보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그렇다. 이 영화는 젊은 체 게바라,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혁명가의 모습을 갖추기 전, 의대생이었던 에르네스토가 남미대륙을 여행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 영화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의 초반부는 오토바이 하나로 떠나는 두 젊은이의 패기 있는 여행기가 계속된다. 아르헨티나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의대를 다니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는 친구 알베트로와 오랫동안 꿈꾸어온 남미 대륙 여행을 떠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해 파타고니아를 거쳐 칠레, 페루와 아마존을 지나 베네수엘라 카라카스까지. 길에서 연인을 만나기도 하고, 실연의 아픔을 겪기도 하고, 고질병인 천식으로 고생도 한다. 엽총으로 사냥을 해서 끼니를 때우는가 하면, 본인들을 의사로 속이고 양식을 구걸하려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중간중간 나오는 파타고니아와 아르헨티나 초원의 풍경이 영화의 잔잔함에 풍미를 더한다.
그러나 모터사이클의 고장과 함께 시작되는 중반부터 여행도, 영화 분위기도 반전된다. 부품을 교체해도 소용이 없을 만큼 수명을 다한 오토바이는 장례를 치르듯 칠레 어딘가에 남겨진다. 이후, 히치하이킹과 도보 여행이 계속된다. 칠레와 페루의 국경에 있는 아타카마 사막, 그곳에서 두 사람은 일거리를 찾아 광산 주변을 떠도는 부부를 만난다. 광산의 거대한 자본과 그 자본에 크게 못 미치는 임금이라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구직자들을 본다.
안데스와 아마존은 백인들이 사는 풍요롭고 거대한 아르헨티나와 달랐다. 잉카인들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벽을 설계했고 낯설도록 아름다운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만들었지만, 총이 없었다. 스페인군은 총이 있었다. 원주민들은 대부분 몰살당했고, 살아남은 후손들은 본인들의 땅에서 쫓겨나 대륙의 최하위 계급으로 전락했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며 두 사람의 내면은 조금씩 변해간다.
여행을 통해 성장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청년의 변화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남미 대륙을 여행하며 여러 인종의 사람들을 만나본 사람이라면, 잉카 문명의 작품에 감탄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더 크게 몰입할 수 있다.
2016년, 첫 해외 배낭여행으로 다녀왔던 남미를 잊지 못하고 어떻게든 다시 남미에 가겠다며 취업 준비 대신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학교에서는 전공이었던 전기전자공학과 상관없는 사학과의 라틴아메리카 역사 수업을 들으며 여행 당시의 경험과 역사를 매칭 시켰다. 그러자, 천해의 경관과 세계 유산에 가려 감탄하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인종으로 철저하게 나누어진 계급 사회였고, 여전히 가난하게 살아가는 원주민들이었다.
그즈음 봤던 책이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였다. 전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크다는 대륙, 중남미의 현실을 다시 보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운 좋게 에콰도르의 국제기구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었다.
여행이 끝난 뒤의 에르네스토가 변했듯이 나 또한 크게 변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스물넷의 에르네스토만큼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의 빈곤이 없어졌으면 좋겠고, 불평등한 현실이 완화되는 것을 꿈꾸었지만 그거보다는 내 밥벌이와 자아실현이 더 중요했다. 그도 남미를 돌았고, 나 역시 남미를 두 번이나 돌았지만 나의 깨달음은 그에게 한참 못 미쳤던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남미도 질릴 만큼 돌아봤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젊은 시절을 잘 불살랐다고 만족했다. 불평등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던 꿈은 어딘가에 고이 접어두고 조용히 어른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어느덧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보다 회사의 평판, 연봉, 복지 같은 것들이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었다.
영화는 여행의 목적지였던 카라카스에 도착하며 끝이 난다. 삼 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땐 젊은 체 게바라만 보였는데,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알베트로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에르네스토와 동행했지만 둘의 선택은 달랐다. 에르네스토의 다음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젊은 의대생 에르네스토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남미 대륙과 전 세계의 해방을 위해 뛰어들고, 마침내 그 유명한 체 게바라가 된다.
반면 알베르토는 종착지인 카라카스의 한 병원으로부터 꽤 괜찮은 조건으로 오퍼를 받는다. 그리고 그곳에 남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한다. 가정을 꾸리고, 정착하기로 한다.
오랜 친구를 태우고 떠나는 비행기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혼자 카라카스에 남겨진 알베르토를 상상해본다. 분명 비슷한 것을 느꼈지만 다시 길을 떠난 에르네스토와 달리 결국 자리에 남기로 선택한 그의 결정은 옳았을까. 후회는 없었을까.
“이 이야기는 대단한 무용담이 아니다.
비슷한 생각과 꿈을 품은 두 사람이 함께 길을 떠나 겪은 순간들을 담은 이야기이다.
우리 시야가 좁았던 건 아닐까? 편견이 있었나?
성급하진 않았나? 잘못된 결론을 내렸던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처 없이 넓은 남미 대륙을 여행한 후에 난 너무 많이 변했다.
난 이전의 내가 아니다.
내면의 세계가 변한 것이다.”
남미를 알기 전 스물네 살의 나와, 남미를 겪고 난 스물다섯,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체의 여정에 설레어 다시 남미를 꿈꾸던 스물여섯, 마침내 다시 남미에 갔던 스물일곱, 그리고 영화를 두 번째 보며 알베르토의 선택에도 박수를 쳐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스물아홉의 나는 모두 달랐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검색했다. Jorge Drexler의 Al otro lado del rio라는 노래였다. 유튜브에서 노래를 다시 들으며, 한동안 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동으로 넘어가는 재생 리스트에서 비슷한 느낌의 남미 노래들이 연속으로 흘러나왔다. 엔딩 크레딧이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