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치욱 Aug 09. 2021

청춘들을 위한 시(詩)적 허용, <생각의 여름>

생각의 여름을 따라 머릿 속을 졸졸졸 지나는 생각의 흐름

<생각의 여름> 메인 포스터(출처=네이버 영화DB)

[감독: 김종재 | 출연: 김예은, 곽민규, 한해인, 오규철, 신기환 등 | 제작: 너드 조크 필름 | 배급: ㈜인디스토리 | 러닝타임: 82분 | 개봉: 2021년 8월 12일]


<생각의 여름> 스틸 컷(출처=네이버 영화DB)


안그래도 덥고 짜증나는데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인해 올여름은 웃을 일이 참 적다. 거기에 장기화된 취업난까지 겹쳐 괴로운 일상이 지속되는 청년세대를 위로해줄 유쾌한 영화가 찾아온다.


영화 <생각의 여름>은 MZ세대의 사랑을 받는 젊은 작가 황인찬 시인의 실제 시 5편이 영화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테마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원래의 시를 영화 속 상황에 어울리게 배치하다보니 딱 들어맞지 않고 느슨하게 연결이 되는데 이러한 점이 오히려 '시적 허용'같이 느껴진다.


'시적 허용'이라는 키워드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와도 연관된다. 시인 지망생인 주인공 '현실'은 마지막 공모전에 낼 시 한 편이 써지지 않아서 헤매인다. 또한 사랑하던 연인과도 헤어졌고 인간관계도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씩씩하게 "시가 써지지 않으면 산으로 가는 게 답!"이라며 근처의 산을 등반하러 발걸음을 뗀다. 풀리는 일은 없지만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그의 모습을 보자면 관객들은 어느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게 된다. '현실'의 모습은 되는 일 없고 답답함의 연속이지만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있어 아름다운 청춘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이는 인생에서 청춘은 시에서 '시적 허용'과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시에서 '시적 허용'은 어법에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시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듯이 인생에서 '청춘'은 괴로울 일 하도 많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시기라고 말이다.


<생각의 여름> 스틸 컷(출처=네이버 영화DB)


누구는 좋은 직장에 취업도 덥석덥석 하고, 또 인기가 많아서 알콩달콩 짝지어 연애도 잘만 하는데 왜 나는 이도저도 아닌 걸까. '현실'도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알바를 하는 카페의 동료 알바생이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시를 쓰는 모습이 마냥 멋지기도 하지만 엉뚱하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그리 골몰하는 지 알 수 없는 '현실'에 마치 동류(同類)를 만난 듯 끌리고 만다. 새롭게 찾아온 인간관계 말고도 낮에 술 먹자고 불러도 못 이기는 체 달려나오는 절친 '남희'도 있다. '현실'은 그의 생각보다 인간관계를 망친 것 같지 않다.


나도 여봐란듯이 살지도 못하고 있고 인기도 없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외롭고 스스로가 작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또 그럴 때면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친구들을 떠올린다. 어디선가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느껴질 때면 더 힘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내가 비록 대중성은 떨어져도... 좁지만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음에 감사하다. '현실'도 '남희'와 투닥거리면서 내색은 안 하지만 맞은 편에 앉아 내 찌질한 모습을 다 받아주고 또 자신의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의 여름> 스틸 컷(출처=네이버 영화DB)


다시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황인찬 시인의 [실존하는 기쁨]으로 시작해 [소실]로 끝나는 영화를 다 보고나면 한 편의 시집을 감상하는 것 같다. 특히 나처럼 시 읽는 것에 큰 취미가 없는 사람이 영화 덕분에 시에 매력을 느끼게 된 걸 보면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뺐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특히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무화과 숲]은 마지막 구절이 백미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모한 짓을 저질러도 그에 대한 댓가가 따르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이 저릿한 느낌을 주는 구절이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무화과 숲]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실존하는 기쁨]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실존하는 기쁨]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두운 물은 출렁이는 금속 같다 손을 잠그면 다시는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내 감정에 확신이 없어 생기는 두려움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제목은 또 '실존하는 기쁨'이어서 이런 불안마저 실존하기에 얻을 수 있는 기쁨이라는 역설이 재밌다. 어쩌면 불안과 고민 속에서도 활짝 웃기를 택한 '현실'과도 잘 맞는 시라고 느껴진다.


<생각의 여름> 스틸 컷(출처=네이버 영화DB)


영화의 매력을 높이는 건 김예은 배우의 역할이 8할 이상이다. 나는 김예은 배우를 처음 본 게 <비에 젖은 나방>이라는 작품에서였다. 거기서도 시인(지망생이다ㅠㅠ)으로 나오는 김예은 배우는 흑백의 화면처럼 밝은 빛마저 흡수해버릴 듯 다크한 모습이다. 목소리가 워낙 좋고 독보적이라 해당 작품에서도 시를 읽는데 내 기억에 오래 남았나보다. 배우의 다른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비에 젖은 나방>과는 180도 다른 발랄한 모습으로, 그것도 시인 지망생으로 나오다니 무척 반가웠다. <생각의 여름>에서 김예은 배우는 슬프고 외로워도 씩씩하다. 보는 관객들의 고민마저 날려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달까. 해사한 웃음에 절로 무장해제가 된다.


김예은 배우가 연기하는 '현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보니 김예은 배우의 매력이 부각되는 것이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기 섭섭하다. '현실'의 옛 절친이었지만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고, '현실'의 첫사랑을 뺐은 '주영' 역의 한해인 배우는 영화의 톤을 오묘하게 바꿔놓는 힘이 있다. 속에서부터 뿜어내는 힘이랄까. 앞서 언급한 '현실'의 절친 '남희' 역의 오규철 배우는 실제로 친구와 술을 마시는 것 같은 텐션으로 영화의 활력을 더해준다. '현실'에게 다가온 새로운 친구 '유정' 역의 신기환 배우는 이 작품에서 처음 봤는데 맑은 기운과 생생함이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현실'의 전 남친 '민구' 역의 곽민규 배우는 뭐 숨 쉬듯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를 보여줘서 그 능청스러움에 웃음을 짓게 한다. '현실'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반려견 '호구' 역의 '복자' 역시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는 멋진 연기견이다.


여름 속을 헤매는 '현실'이 다섯 편의 시와 여러 인간관계를 거치면서 정답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면 은은한 위로가 되고 힘이 난다. 영화 전체가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같다. 스물 아홉에 제대로 아홉 수를 맞은 '현실'이 좌충우돌 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이십 대의 중반인 나는 조금 더 고민하고 헤매봐도 좋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이 지워진 모두를 호명(號名)하는 영화 <갈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