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줄리아
*영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냄새를 좋아하고, 다독하고자 하는 마음은 매 순간 한결같으나, 책이랑 그다지 가깝지 못한 인생을 살아왔다. 굳이 말하자면 책을 읽기보다 영화 보는 것을 즐겨온 ‘영화파’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 대한 나의 진한 사랑은 스무 살 두 번째 치른 수능을 처참하게 말아먹은 바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고사장에서 문제를 푸는 동시에 예감할 수 있었다. 또 수능을 망쳤다는 걸.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니 집에는 온 가족이 모여있었다. 아빠, 엄마, 군대 간 오빠를 제외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내 두 번째 수능에 대한 기대가 퍽 컸다는 걸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나는 채점을 하고 나온 그 순간부터 죄인이 됐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나를 서울에서 공부시킨 부모님의 기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슬프고 괴로운 일이 생기면 기댈 곳을 찾는 인간의 본능을 충실히 이행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에게 위로를 바랐다.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다른 법. 그날 저녁 부모님 모두 나에게 한마디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는 걸 기억한다. 지금이야 그날을 아무렇지도 않게(때로는 유머를 섞어가는 대범함까지 보이며) 회상하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90세의 노인이 되었을 때 인생의 가장 슬펐던 일 열 가지를 꼽는다면 그 날이 반드시 들어갈 것이라는 걸.
나는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을 걷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깟 수능 못 본 게 뭐가 대수냐고. 원하는 대학 못 간 게 뭐 그렇게 큰 일이냐고. 세상엔 당장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서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맞다. 틀린 말은 아니다. 위로랍시고 하는 이런 말들이 조금 더 무례해지면 듣게 되는 말,
“그건 배부른 소리야.”
나는 하나도 배부르지 않았다. 너무너무 배가 고팠다. 유독 경쟁이 심한 고등학교에 다녔다. 자존심이 상하다 못해 너덜너덜해지는 일이 허다했던 고등학교생활은 나에겐 상처였다. 살이 벗겨지는 상처. 그리고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어진 내 자존심을 심폐 소생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명문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다.(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두 번째 수능을 본 그날, 간신히 형태를 유지해오던 나의 세상이 무너졌다. 그건 재앙이었다.
수분기 없이 쩍쩍 갈라져가던 마음의 사막 위에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로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3개월여를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침대에 누워 절망에 취해있는 일 말고는 딱히 하는 게 없었던 내가 뭐라도 해야지, 하며 시작한 것이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영화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인터넷에 의존했다. (인터넷은 정말 좋은 것이다. 무지몽매한 나에게 기특하게도 참 많은 것들을 알려주니 말이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명작 영화”, “명화”, “힐링 영화”, “방황하는 청춘기를 다룬 영화”, “90년대 한국영화”. 영화 보는 것에 미쳐있던 당시의 내가 선택했던 검색어들이다. 이때가 내 영화 인생의 황금기였다. 몇 달을 하루에 많으면 여러 개의 영화를 보는 생활을 이어갔다. 영화가 시작하며 잔잔히 퍼져오는 bgm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맘에 꼭 드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을 사랑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이해했고, 그들이 겪는 일에 기뻐하고 슬퍼했으며 그들이 내뱉는 대사를 들으며 위로받았다. 영화는 바짝 마른 내 마음에 물을 들이붓는 ‘오아시스’*였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만의 ‘오아시스’를 잃어버린 것은.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영화 보는 것을 즐겼다. 영화 보는 일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영화에 대한 자발적인 탐구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좋은 영화라면 귀에 들리는 대로 빼먹지 않고 보려고 했다. 봐야 하는 영화, 보고 싶은 영화를 빠뜨리는 것은 나의 ‘오아시스’에 대한 모욕이었으니까. ‘오아시스’에 물을 채우는 일을 게을리하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전 직장을 용감하게 때려치우고 난 후에는 상황이 더 안 좋았다. 더 이상 좋아하던 영화를 봐도 흥분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영화에 집중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내 인생에는 그동안 두 번의 큰 위기가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고등학교와 대학 초반 몇 년을 아우르는 암흑기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가 백수가 되어 골골대는 지금이다. 둘 다 나를 피폐하게 하는 위기인 것은 매한가지인데 무엇이 다르기에 첫 번째 위기에는 열렬히 영화를 보며 위로받았건만 지금은 그게 안 되는 걸까?
내가 잃은 것은 ‘여유’였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당시 나에게 큰 좌절이었으나, 어린 나이와 남아있는 시간을 무기 삼아 희망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나이가 들었고 지나간 햇수만큼의 가능성과 기회를 박탈당했다. 스무 살의 나는 하루 종일 영화를 봐대며 자기 위안을 해도 비난받지 않을 수 있었으나 이십 대 후반 빛이 나는 백수인 나는 티슈 곽을 팔꿈치에 끼고 앉아 영화를 보며 맘 놓고 눈물을 짜내기 어려워졌다. 누구 말 마따라 영화를 보고 감상에 빠지는 게 ‘배부른’ 짓이 되어버린 것이다.
연이은 실패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딱히 없다. 그들이 내게 준 거라곤 생기를 잃은 낯빛과 눈 밑으로 적어도 5cm는 자라나 있는 다크서클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딱 하나, ‘실패를 견디게 하는 맷집’을 제외하고. 나는 지금 살아온 이래로 가장 두터운 맷집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첫 실패가 남긴 상흔에서 회복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두터운 맷집이 자리 잡은 지금은 하루쯤 펑펑 울고 일주일쯤 넋을 놓다가도 이내 정신을 차린다. 실패와 좌절이 나를 보기 좋게 두둘겨 패대도 얼마쯤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막이 생긴 거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잔인하고, 나는 유례없이 궁하지만 그래도 나를 잃지 말자. 내 마음이 이렇게 바짝 말라있는데 ‘오아시스’마저 말라 사라지게 만들어서야 되겠나. 많이는 아니어도 조금씩이라도 물을 부어보자. 기왕이면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영화를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나아가 좋은 영화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해보자. 십여 년 전의 그때보다 적어도 사려 깊은 말 한마디 정도는 더 내뱉을 수 있게 된 지금의 가치관으로!
첫 번째 영화는 ‘줄리&줄리아’이다. 2009년 제작되었으며 노라 애프론이 감독했다. 노라 애프론은 우리나라에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유브 갓 메일’(1998) 같은 영화로 익히 알려져 있는 여성 감독이다.(운이 좋게도 위의 세 영화를 다 봤고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세 영화는 대체로 남녀가 주고받는 간질간질한 감정, 서로에 대한 마음이 무르익어가는 과정에 집중한 모범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줄리&줄리아’가 나머지 세 영화와 결을 달리 하는 건 아무래도 이 영화가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여성의 성장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두 개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줄리의 시점, 20세기를 살아갔던 줄리아의 시점이 그것이다. 줄리아는 ‘프랑스 요리의 달인이 되는 법’의 저자로서 미국의 전설적인 셰프로 회자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파리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파리에 살고 있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프랑스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프랑스 요리 전문가가 된 그녀는 이내 ‘하인 없이 요리하는 미국인’들을 위한 프랑스 요리 책을 집필한다. 이 책은 수십 년이 지난 21세기의 줄리에게 읽히고 있고, 줄리는 365일 동안 책에 쓰여 있는 500개가 넘는 레시피를 따라 만드는 과정을 블로그에 써나가기 시작한다.
줄리는 대학신문의 편집장이었고 장래를 촉망받는 인재였다. 작가 데뷔에 실패하고 현재 9.11 테러 민원을 전담하는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무료하고 시시한 그녀의 생활에 활력이 돌기 시작한 건, 줄리아의 레시피를 따라 요리하는 과정을 블로그에 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줄리의 블로그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여러 출판사로부터 출간제의를 받는다. 작가 데뷔를 목전에 둔 그녀에게 날아든 비보는 노년의 줄리아가 그녀의 블로그를 탐탁지 않아한다는 것.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줄리아에게 ‘진지하지 못하고 존중이 부족하다’라는 평가를 듣게 되지만 그녀는 낙심하지 않는다. 물론 줄리아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이다. 그녀의 블로그는 ‘줄리&줄리아’라는 제목으로 출판되며 꿈에 그리던 작가 데뷔에 성공한다.
줄리와 줄리아는 사실 닮은 지점이 많다. 둘 다 여성이며 조금은 늦게 꿈을 이루는 점이 그렇고, 하고자 하는 일에 굉장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심지어는 이름도 비슷하다.) 영화에는 뚜렷이 구분되는 기승전결이 없어 중반에 살짝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리는 엔딩 크레디트의 자막이 기분 좋은 짜릿함을 선사할 것이다. 시종일관 어떤 긴장도 없이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다. 또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무자극 무스트레스의 영화가 끌리는 당신에게 추천한다. 빠뜨릴 뻔했다. 프랑스 요리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더욱이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한다!
줄리는 그녀의 오아시스를 지켜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오아시스 주변에 나무를 심고 무성한 수풀을 이룬다. 그녀는 알았을까? 그녀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고 심지어는 영화로 제작될 것이라는 걸! 모를 일이다. 십수 년 후에 우리의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되는 행운이 있을지!
영화 말미에 줄리는 그녀를 믿고 지원해준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은 나의 버터이고, 나의 숨(breath)이야!”
거친 세상을 살다 보면 얇디얇은 마음의 상피조직이 쉽게 손상되고, 때론 피가 철철 흐르기도 한다.
그래도 부디 당신들의 오아시스 혹은 버터, 그리고 숨을 지켜내길!
*오아시스 :
[1] 사막 가운데에 샘이 솟아올라 식물이 자라고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곳
[2] 인생의 위안이 되거나 욕구를 해소해 주는 것. 또는 그런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