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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May 15. 2019

이거 못 놔? 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야!

부처님 오신 날, 영웅의 격

장면 하나. 토요일 다섯 시쯤, 만화방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주말에도 가장 바쁜 시간에 일을 하기 때문에

만화를 읽을 시간은 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들은

정리를 하면서 드문드문 펴서 몇 장을 읽어보곤 합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일곱 개의 대죄라는 만화인 "일곱 개의 대죄"

일곱 개의 죄로 대표되는 일곱 명의 성기사들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그중, 교만을 상징하는 에스카르노는 현재까지는 가장 강한 캐릭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영어로는 더 원(The One)

사실 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수식어는 무협 만화에서 자주 보아 왔던 팔자 성어(?)였습니다.


이 단어가 소개하는 인물과 같이

저는 엄청 강하거나 똑똑한 사람이 이 칭호를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만화 일곱 개의 대죄 중, 에스카르노

장면 둘. 화요일 저녁, 독서토론 모임


매주 화요일 저녁 일곱 시,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벌써 17개월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달마다,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고 다른 분들의 생각들을 들어보면

"어떻게 이걸 읽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번 주 읽었던 책은

벤저민 하디의 "최고의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라는 책이었습니다.


작가는 책에서

의지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의지를 만들고, 결국에 자신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작가가 인용한 부분을 선배님들(참여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모든 영웅은 환경의 산물이다. 22p

그 질문에 대한 듀렌트의 답변이 이 책의 토대가 되었다.

나는 칼라일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영웅이 남긴 결과물이 역사라기보다는 상황의 산물이 영웅입니다.
영웅은 그의 모든 잠재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집니다.
상황이 그러기를 요구한다면 보통 사람의 능력도 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야기했듯이, 이 책의 가장 토대가 되는 이 답변의 핵심은

상황의 산물, 즉 결과물이 영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선배님께서 이 부분을 따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영웅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토론에서 한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영웅은 동사가 아닌 명사로 존재합니다.

상황의 산물로서의 영웅은 이미 죽어 있는 시체일 뿐입니다.
그러한 영웅은 하나의 결과물이며, 한쪽의 해석이기 때문에
역사 위에서만 나타나며,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영웅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웅은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웅으로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웅의 삶은 결과가 아닌 동기로서 결정됩니다.

무엇을 원하며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어떤 변화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의 답을 확신하고 나아가는 영웅이여만
칭찬과 비난이라는 해석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영웅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영웅의 정의를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도 나도 영웅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벤저민 하디

장면 셋. 부처님 오신 날 아침, 지하철


일요일 아침

지하철을 기다리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부처님의 생애"의 앞부분을 읽어나갔습니다.


부처님의 생애, 여여(如如)

부처님께서 일곱 걸음 걸으신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셨는데, 여기서 '천상'이란 하늘세계 즉 관념의 극상, 나의 알음알이로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뜻하며, '천하'란 물질세계로서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게는 '나의 참생명은 관념이나 물질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에도 지배를 받지 않는다.' 는 선언입니다. 이때의 나는 너보다 더 잘나거나 못난 상대적인 나가 아니라 참생명으로서의 나를 말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눈을 감고 다시 단어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생명으로서의 "나"

약간 아리송합니다.


절대적인 참 생명이란 것이 따로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나"가 있다면 이미 상대적인 것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대로,  참생명으로서의 나는 어떠한 것에도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어떤 잘난 모습을 가져도 별로 좋을 것도 없고

아무리 못난 모습을 하고 있어도 괜찮다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못난 모습이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저에게

훌륭한 자기 합리화의 근거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인데 저처럼 핑계를 대려고 그 말을 하신 것은 분명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다,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런 생각은 격이 떨어진다..."


부처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로 자신의 생명이 상대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

부처님 자신의 생명이 본래 그러한 것이기에

모든 생명의 격이, 이 선언으로 평등해졌으며, 가장 귀해진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본래 생명으로서의 제가 해야 할 것은

격에 맞게 살아가는 것임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그리고 나로서의

참생명의 격에 맞는 삶의 모습이

저번 주 화요일, 독서 토론에서 이야기했던

"영웅"의 모습과 가까워 보였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부터의 내가

영웅으로서 영웅의 삶을 사는 것이지

상대적인 나로부터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나로서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좋은 말이 그저 좋은 말로만 남겨질 때

진정으로 나쁜 말이 되는 것처럼


영웅이 되기 위한 삶은

나와 남의 삶의

인생이라는 벅찬 내용을

스스로 평가절하시키는

일종의 자학이며, 폭력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짜, 김혜수, 이대 나온 여자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저도 속으로 말을 합니다.

"내 생명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야!"


저도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격을 갖추고

격에 맞게 살아가야지

격에 맞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를 대접해야지

다짐을 해봅니다.


P.S

산타할아버지가 있는 크리스마스처럼

누구나 "메리 크리스마스"로 안부를 전하는 것처럼

부처님 오신 날에도

무엇인가 말할 수 있는 멘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친구들이 있는 단톡 방에 메시지 하나를 보냈습니다.


"메리부다스데이, 메리니르바나!" 


친구들은 예상대로 답이 없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매년 꾸준히 해봐야겠습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친구가 먼저

그 메시지를 보내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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