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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Jun 06. 2023

빙그레

바나나 단지 우유


 나는 주기적으로 빙그레 바나나 단지 우유를 사 먹는다. 나에게 이 우유에 얽힌 특별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바나나 단지 우유를 손에 쥐고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시고 있자면 어김없이 그날의 기억이 재생된다. 그날의 기억은 듬성듬성 잘려 있다. 내가 4살짜리 어린 아기 때 있었던 일이라 사실 기억이 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다.
 
 내 기억의 처음은 성당에서부터 시작된다. 엄마아빠는 기도를 드리며 눈을 감고 계셨다.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게 지루했고, 너무 심심했다. ‘나가고 싶어.’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엄마아빠에게 들키지 않게 살금살금 성당을 빠져나와 성당 앞 놀이터에서 놀았다.

 그리고 기억이 잘렸다. 어딘지 모를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가야 엄마 어디 있니?” 다음 기억은 아저씨가 나를 데리고 슈퍼에 들어가서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고, 나는 빙그레 바나나 단지 우유를 골랐다. 슈퍼 앞에 앉아 우유를 마시고 있는데, 엄마아빠가 헐레벌떡 뛰어오셨다. 그때 엄마가 뛰어오시던 모습이 하나의 영상으로 선명하게 기억난다. 엄마가 입고 계셨던 긴치마와 엄마의 긴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다. 엄마는 나와 가까워지자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양팔을 쭉 뻗으셨다. 그 순간 들었던 감정은 ‘신기함’이었다.

‘아저씨가 삐리릭 소리가 나는 것에 뭐라고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엄마아빠가 왔네? 근데 엄마는 왜 울지?’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엄마아빠는 눈을 떴는데 내가 없어서 너무 놀랐다고 하셨다. 그대로 성당 안팎을 뛰어다니며 나를 찾으셨지만 찾을 수 없었고, 그다음은 성당 밖 길가를 정처 없이 뛰어다니셨다고 한다. 한참 뛰어다니다 내 신발을 발견하셨고, 그 방향으로 더 뛰어가니 양말이 벗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다음은 겉에 입혀줬던 잠바였다. 엄마아빠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나의 흔적을 하나씩 주우며 혼비백산 상태로 뛰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 경찰서를 통해 연락을 받고 나에게 오신 거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나에게 말을 걸었던 아저씨는 경찰이었다. 그날 그 아저씨는 비번이라 쉬는 날이었다고 한다. 슈퍼에 가던 길에 우연히 맨발로 돌아다니고 있는 길 잃은 어린아이를 발견하셨던 것이다. 다행히 내가 미아 방지 팔찌를 차고 있어서 바로 아빠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몸이 떨린다고 말씀하신다. 더워서 그랬는지 답답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허물 벗 듯 남겨 놓은 흔적을 따라가면서 엄마아빠는 너무너무 무서웠다고 하셨다.

 다른 나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좋은 경찰 아저씨에게 먼저 발견된 것은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바나나 단지 우유를 먹고 있으니 엄마아빠가 왔다.]는 기억은 곧 바나나 단지 우유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왜인지 이 우유를 마시면 기분이 좋고, 따뜻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바나나 단지 우유가 엄마아빠를 찾아 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도 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그날 엄마아빠가 얼마나 큰 공포감에 휩싸였을지 감정이입이 되면서 오싹하다. 나는 대체 왜 그랬을까? 나도 참 어지간히 말괄량이였던 것 같다. 겸이는 날 닮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바나나 단지 우유를 한 입 마신다.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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