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슬, 내가 너 좋아해.”
하얀 얼굴에 수줍어하는 모습이 귀여운 토끼 같다고 생각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섹시한 느낌의 남자들만 사귀어왔던 이슬에게 현진은 색다른 스타일이었다. 할 말 있다고 불러내선 한참 만에 붉어진 얼굴로 겨우 꺼낸 고백, 그리고 어쩔 줄 몰라하는 순수함이 신선했다. 현진은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슬을 늘 배려해 주고 맞춰주고 사랑해 줬다. 현진과의 연애는 일정한 온도의 따듯함을 유지하며 편안했다.
“우연히 옛날 친구를 만났는데 같이 밥 먹어도 될까?”
쩔쩔매며 이슬에게 말하는 현진의 뒤로 보이는 강희는 흑표범 같았다. 까만 피부에 큰 키, 쌍꺼풀 없이 큰 눈, 그의 귀에 반짝이는 피어싱, 그리고 위험한 눈빛. 이슬은 잡아먹힐 것 같은 강렬한 눈빛에 얽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셋은 종종 함께 만났다. 그리고 이슬과 강희의 은밀한 눈 맞춤도 점점 더 깊어졌다. 이슬은 강희에게 향하는 마음을 외면하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니 괴로워졌다. 현진이 좋은 사람이어서 더욱 힘들었다. 터져 나오는 마음은 강희도 마찬가지였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진도 두 사람의 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현진이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슬이 이별을 통보할 때까지 모르는척하면서.
불안정한 시작이 문제였을까. 강희와의 연애는 뜨거웠지만 편안하게 유지되지 않았다. 현진에 대한 죄책감, 또 다른 사람에게 금방 마음을 줄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세우는 자존심까지 더해져 두 사람은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거렸다. 이슬과 강희의 연애는 결국 얼마 못 가 꺼지고 말았다.
분명 더 떨리고 강렬했던 사람은 강희였다. 그런데 잔잔하게 계속해서 생각나는 사람은 현진이었다. 이슬이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현진이었다면 강희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이슬에게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이슬은 현진과 강희, 두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 어떤 연애를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