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라샘 Oct 26. 2024

감정 쓰레기통이 된 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나의 수업은 언제나 헤어짐이 아쉽고 열정과 진심을 알아주는 아이들이 있어 그 맛에 수업을 한다. 부산, 김해, 양산복지관등 공예가들이 함께하는 단체 수업에서도 타 도예공방 선생님들은 보조를 자처하고 내가 수업을 이끌길 원하신다. 내가 아무리 많은 수업을 뛰어다녔다 한들 바로 앞에 있는 체험자는 나와의 수업이 처음 일 테니 그 어떤 대상이든 쉬 흘려보내지 않는다. 이번 찾아간 어린이집 역시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와락 품에 안기며 다음에 또 보자고 한다. 그래그래... 그런데 4주 뒤,  좋은 기억을 안고 작업한 그 어린이집 담임교사의 감정쓰레기통이 되고 말았다.


단체수업을 할 때면 꼭 깨지는 작품이 있고 20명 이상의 아이들이 이름을 직접 적는 경우 잘 알아보지 못해 작품에 이름이 달리 새겨지는 실수가 있다. 재벌 후 실금이 가는 정도면 아이들의 손맛이라 그냥 보내지만 사용이 어려운 정도의 파손은 속상해할 아이들을 위해 모양이 달라도 쓸 수 있게 다시 만들어 준다. 이번 경우도 그랬다. 직접 만들고 화장토까지 발라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지만 아이들의 손맛이 나길 바라는 선생님의 열정과 흙을 만질 수 있는 경험을 최대한 많은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바라는 나의 열정이 더해져 그렇게 수업으로 성사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심하게 튀어나온 부위를 깎고 최대한 아이들의 손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름을 새겨서 초벌, 재벌을 마치고 나니 실금은 물론, 갈라짐이 꽤 많은 그릇이 나왔는데 6개의 작품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쓸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 내용을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니 감사의 인사를 주셨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다시 제작한 작품까지 모두 나왔다.

완성작을 건넨 후 돌아오는 저녁. 아이들의 이름이 잘 못 적혔다고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Z라고 적어 놓은걸 'ㄹ'인지 'ㅈ'인지 보내준 명부 확인 없이 틀리게 적었다는 이유였다. 확실한 잘못이며 실수가 있어 죄송하다는 통화를 하면서 수업에 쏟았던 열정과 수 주 동안의 가마작업, 불량에 대한 재 제작과정의 모든 노고가 사라짐을 느꼈다. 통화를 끝내고 이름을 다시 새겨 구워드린다고 문자로 거듭사과를 했다. 분명 나의 실수는 팩트니까. 그런데 수정할 아이의 작품 사진과 함께 나의 자질을 짚어가며 폰 화면이 넘어갈 정도의 강도 높은 비난과 본인의 감정을 담아 문자를 보내왔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딱히 한 줄 한 줄 읽어내리며 되새김질할 이유 없이 장문의 글을 훑어보다 짧은 답장을 보냈다.

'네 작업 후 연락드릴게요.'



솔직히 물건을 팔고 수업을 하며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보호자든 구입자든 갑이 되어 행동할 때가 많다. 돈을 지불했다는 명백한 사실이 무의식이든 자의식이든 본인이 갑이 되었다는 걸 티 내는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온라인판매로 물건이 하나 빠진 사실에 앞뒤 말 다 자르고 노발대발 장사를 그 따위로 하냐며 당장 반품을 원했던 사람이 있었다. 1인 공방사장의 비애일 수도 있는데 사람인지라 이런 실수가 꼭 1년에 한 번씩 있기 마련이다. 아니, 조금 더 있었지만 물건이 빠졌다고 연락이 오면 사과하고 선물이랑 빠진 물건을 동봉해 보내드리고 되려 감사의 인사를 받기도 하는 등 웬만하면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데 있어 자연스러운 해결방식이 통했다. 그런데 이번 어린이집 교사처럼 이성적인 문제해결에 초점을 두지 않고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들이 꼭 있다. 그 문자를 보고 잊고 있던 4년 전 겪은 일이 문득 생각났다.

야외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3주 후 100개가량의 작품을 일괄 배송 보냈는데 두 군데서 연락이 왔다. 100개 정도를 배송하다 보면 꼭 1~2개는 택배 측 과실의 파손이 있었는데 그 예상은 적중했다. 아무리 완충제를 써서 던져도 깨지지 않게 포장을 한들 무거운 짐에 짓눌리면 파손은 피할 길이 없다. 박스부터 이미 훼손이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파손이 된 물건을 받은 곳이 두 군데였는데 한 곳은 아직 아이가 보지 못했으니 똑같이 다시 제작을 해 줄 수 있느냐는 문의였고 당연히 그리 해드리겠다고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한 곳은 파손이 된 그릇을 보고 너무 속상해 아이 앞에서 버렸어야 했던 심정을 아냐며 체험료 환불과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결론은 체험료 환불로 마무리되었지만 분이 풀릴 때까지 집요하게 문자를 보냈던 그 당시의 젊은 엄마의 사건이 떠올랐다.


어른스러운 것. 어른다운 것. 어른이 되는 것. 이 세 가지의 사람들 중에 나에게 상처 주려 했던 사람들은 아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나와 만났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감정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것조차 어른의 방식이고 열정이고 최선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그러한 감정으로 다른 이를 아프게 한 적이 있었으니 절실히 이해한다.






이미지출처-canva

이전 09화 떼쓰는 아이로 만드는 처방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