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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라샘 Oct 08. 2024

엘렐레노P

마이마더 도자기 쎈세이


일을 마치고 집 안에 들어서면 "어머니~" 하고 초등 5학년 덩치 큰 딸이 쿵쿵 달려와 두 팔 벌려 날 안아준다. 정수리에서 올라오는 쉰내마저도 사랑스럽다. 주 3회 운동 학원 외 방과 후, 공부방도 다니지 않는 대한민국 흔치 않은 초등 고학년. 학원을 안 다니는 대신 전자 패드를 이용해 학습지를 하는 것이 유일한 공부 사교육이다. 정확히 딱 학력 수준에 맞춰 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올 초 이런 일이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 남편이

"여보! 고오 이대로 안될 것 같은데?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 학원 알아봐야겠는데?" 하며 심각한 얼굴로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손바닥크기의 메모지에 알파벳을 써보라는 아빠의 뜬금없는 쪽지시험이 열렸었나 보다. 그런데 난 그 쪽지를 보는 순간 진짜 거실 한 복판을 떼굴떼굴 구르며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뻘쭘해하던 아이도 엄마의 모습에 큭큭 웃었고 남편도 어이가 없었는지 허허 웃기만 했다.

 "그동안 알파벳 써 볼 일이 없어서 그래. 근데 생각보다 큭큭 심하네 엘렐레노피가 뭐야?! 하하하 아이고 배야. 고오야! 이번주 금요일 학습 검사할 때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글씨체까지 시험 볼 거니까 공부 좀 해놔. 그때도 이 모양이면 아빠 말대로 학원을 생각해 볼 수도 있어." 고오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자기 방으로 홀라당 들어가 버렸다.

고오는 외국인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차게 말을 거는 아이다.

"헬로~ 웨아유프럼~ 와~ 마이네임이즈 고오~ 아임 코리아초딩~ 나이스투미츄~예~ 마이 마더 도자기센세이~ 빠빠이~"대화인 건지 일방적인 자기소개인 건지 모를 정도의 콩글리쉬를 적나라게 구사한다. 이미 난 멀찍이 떨어져 있다.

학교에서 영어 성적은 파닉스 기초 수준이니 나쁘진 않다. 읽기 발표도 잘해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던데 이제 보니 쓰기가 문제였던 것이다. 금요일 알파벳시험은 당연히 만점이었다. 그 높아진 어깨뽕을 팡하고 터뜨리고 싶을 정도로 고오의 잘난 척이 하늘을 찔렀다. 영어학원을 가장 오래 다녔다는 같은 반친구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알아봐 달라고 아주 큰 소리다. 남편은 남들 하는 만큼 학원을 보내며 곧 어려워질 중. 고등학교를 대비하자는 게 입장이고 난 집에서 스스로 공부 잘하고 있는데 굳이 싫어하는 학원 억지로 보내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로 싸우지는 않는다. 아이 교육에 있어 전적으로 엄마인 내가 주도하고 있고 남편은 믿음 반 걱정 반으로 이따금씩 한마디를 던지며 지켜봐 주고 있다.



우리 부부는 대학 산악동아리에서 동기로 만나 여러모로 통하는 게 많은 친구 같은 부부다. 그리고 결혼 5년이 되던 해 병원에서 배란주사를 맞아 노산으로 어렵게 낳은 딸이 고오이다.  결혼과 출산은 선택이라지만 출산과 이어지는 육아는 해 보지 않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는 경이로운 경험이다. 신이 되어보는 기분? 악마가 되어보는 기분? 온전한 나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원치 않았음에도 자아성찰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천국이 되었다 지옥이 되었다 난리부르스인 나날을 적어도 아이가 미성년자 딱지를 떼는 그 순간까지 견디거나 붙잡아야 한다. 많이들 좀 더 크며 나아지겠지 하고 기대하고 견디며 살고 있지만 난 붙잡는 쪽이다. 마트에서 밀가루를 터뜨려도, 소파에 매직으로 낚서를 해도, 씻는다고 멀쩡한 전자제품을 싱크대에 담그는 등의 이런저런 일상의 사고들조차 사랑이고 아쉬움의 연속이다. 결코 노산으로 어렵게 낳았다고 해서 애정이 남다른 것은 아니다.

결혼 전부터 '5세까지는 정서적 안정을 위해 엄마가 주양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들을 들었으며 그게 옳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난 절대 일핑계로 내 자식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지 않으리라. 그래서 결혼 직 전 운영하던 도예미술학원을 정리했다. 집에서 미술홈스쿨을 하며 아이가 생기면 바로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올인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고오가 태어난 지 7개월 차. 주 2회 친언니에게 고오를 맡기고 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돌잔치를 치르고 바로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난 몸소 깨달았다. 육아는 양이 아닌 질이라는 것을. 그리고 양육지침서라고 나오는 서적이나 유명 아동 전문가의 강연들이 모두에게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진정한 육아는 케바케(case by case)라는 사실. 가끔씩 내가 옳은 방향으로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의심이 될 때가 있다. 난 최선이지만 남들이 볼 땐 설렁설렁 거저 키우는 형상이라 유독 교육열이 높은 사람을 만나면 꼭 한 소리씩을 듣는다. 그런 와중 최고의 극찬을 듣게 되었는데 재작년 담임선생님과 상담 끝에 "제 아이도 고오처럼 밝게 잘 컸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씀.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도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에 너무나 감사했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중 2학년 된 딸아이가 도자기 공방 문을 덜컥 열고 들어와 가방을 툭 던지고 머리를 질끈 묶는다.

"엄마! 오늘 속상한 일이 있어서 물레 좀 돌려야겠어. 마음의 안정이 필요해!" 라며 물레 앞에 앉아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평범한 일상. 그 상상만으로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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