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마을 박씨네 셋째 딸 박득남 0

에필로그

by 박득남씨


약볕이 내리쬐는 1999년 어느 여름날,

몽실몽실 피어난 솜뭉치들이 파란 하늘에 떠다니고 있었다.


Y마을, 섬 최남단에서도 산 굽이굽이 넘어 고개를 빼꼼 내미는 마을. 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쌌고, 바닷물은 기분 좋게 넘실거렸다. 파도가 부딪쳐 새하얀 거품을 만들어 낼 때면, 몽돌은 거품 마사지에 고와진 피부를 반짝이며 뽐내었다.


이 외딴 마을은, 관광객들이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그런 곳이었다.


<우끼 3천 원*, 돗자리 1만 원, 민박합니다.>

*검은색 타이어 고무로 만든 옛날 튜브


몇 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은 여름 한철 장사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민박집을 운영했고, 아침저녁으로 빈방을 묻는 손님들로 붐볐다.


"얘, 너는 여기 마을 분교 다니니? 수영 잘하겠네 학교에서 인어공주라고 불리겠다."


민박집 손님이 서울 말씨를 섞어 쓰며 아이에게 물었다.


"아닌데요, 저 여기 안 살아요. 방학이라 할머니 집에 온 거예요"


노란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아이는 뚱하게 대답하며 애꿎은 옷자락만 만지작거렸다. 아이는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여름방학을 맞아 엄마를 따라 할머니 집에 왔다.


마을이 아닌 도시, 분교가 아닌 초등학교에 속해있는 아이는 내심 속이 상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계곡으로 피서를 갈 수 없는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아이 할머니의 한철 장사를 돕기 위해, 아이의 어머니는 매년 여름 Y마을에 내려왔다. 아이의 어머니는 1967년 Y마을 박 씨의 넷째(셋째 딸)로 태어났다. 딸 다섯, 아들 둘. 칠 남매의 중간이었다.


언니 먼저, 오빠 먼저, 동생 먼저, 막내 먼저. 온갖 이유로 항상 양보를 해야 했다. 그녀는 큰 돌 사이에 끼인 모래알처럼, 여기저기 치였다.


박 씨 셋째 딸은 마음이 여렸다.


'나만 참으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서울에 있는 오빠네 대신, 부산에 있는 언니네 대신, 대구에 있는 동생들 대신 어머니를 도왔다.


시시각각 문의하는 민박 손님에, 빠르게 순환되는 우끼 장사.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과 끈적끈적한 몸에 정신이 없었다. 징징거리는 아이로 인해 신경이 더욱 곤두섰다.


바쁜 시간이 막 지나 한숨 돌리자,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을 타고 꿈 많던 어린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멋진 정장을 입은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오빠와 남동생때문에 뒤로 밀려났다. 가난과 차별은 항상 몸을 피로하게 만들었고 원망도 생겼다. 하지만 이내 부모님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되뇌며 상처 받은 마음을 수백 번 어루만졌다.


"엄마"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회상에서 벗어났다.

노란색 민소매를 입은 초등학생 아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던 국민학교 시절이 오버랩되었다.


"딸, 이다음에 크면 꼭 멋진 여성이 되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