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해 '삶'을 보다
시작하기에 앞서 세 가지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 여러분이 돈을 벌 수 없고,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복지로) 살아간다고 가정했을 때 여러분은 어떠실 것 같으십니까? 어디서 행복을 찾으실 수 있을까요?
2) 반대로 여러분이 돈은 무한히 많지만, 역시 돈을 벌 수 없고 이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이 산다고 가정했을 때 여러분의 삶은 어떨 것 같으십니까? 역시 어디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3) 여러분에게 있어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입니다.
당신은 최면이란 것을 믿으세요? 몇몇 사람들은 ‘최면’이란 행위를 통해 ‘전생의 나’와 만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은 오늘 그러한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당신은 어느 날 우연한 경험으로 최면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체험에서 당신은 최면사에게 전생으로 가게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최면의 시곗바늘이 똑닥거리면서 당신은 깊은 최면에 들게 됩니다. 그 최면에서 눈 뜬 당신은 당신이 당신의 전생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 충격.
당신이 도착한 곳은 한 열차 안입니다. 당신 주변을 둘러싼 곳은 발 디딜 곳 없는 빽빽한 사람들 사이, 이 열차를 둘러보니 이 좁은 열차 칸 안에 적어도 80명은 넘는 사람들이 가득 매우고 있습니다. 코를 찌를듯한 지독한 악취가 밀려와서 보니 대소변이 섞여 있는 곳에도 사람들이 가득 메워져 있을 정도로 빽빽합니다. 그 상태로 밤이 지나고 새벽이 도달하자,
종착역에 다다른 것처럼 옆선로를 덜컹 넘어선 순간, 한 사람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우슈비츠다, 저기 팻말이 있어!”
조금 지나자 날이 밝아 오면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 아우슈비츠,
그곳은 황량한 길 사이로 누추한 사람들의 행렬이 지나가고. 가끔 고함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었습니다. 역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의 명령소리가 들리고, 열차문이 열리자 몇 사람이 안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당신은 신기하게 그 사람들을 보며 안도합니다. 그들은 영양상태가 좋아 보이고 심지어 웃긴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잠시 뒤에 그 사람들은 소수의 허락된, 소위 반복적으로 열차에 실려 오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짐을 나르는 일부의 사람이란 것을 깨닫습니다.
1) 이곳에 처음 당신이 처음 겪게 되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충격’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느끼게 되는 감정은 ‘집행유예 망상’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을 죄수가 사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적으로 이 사람들 (짐을 나르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운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2.‘집행유예 망상’
누군가 명령하는 소리가 들리고 당신과 열차에서 내린 많은 사람들은 한 줄로 서게 됩니다. 줄 앞쪽에 장교로 보이는 키가 큰 사람이 어떤 명령을 하며 손가락질하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의 차례가 다가오려고 할 때 누군가 당신에게 귓속말로 속삭입니다.
“오른쪽은 일을 할 수 있는 작업실 행이고 왼쪽은 일을 할 수 없는 특별 수용소입니다.”
순간 당신은 당신의 왼쪽에 용감하게도 빵 봉지를 넣어뒀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그때 빵봉지를 꺼낼 수도 없는 터, 당신은 왼쪽의 빵봉지를 숨기기 위해 최대한 오른쪽으로 씩씩하게 걸어봅니다. 덕분에 장교의 손짓이 오른쪽으로 향했고, 당신은 오른쪽으로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날 저녁, 당신은 보이지 않는 당신의 동료와 친구 P의 행방이 궁금해졌습니다. 당신은 그곳에 먼저 와있던 사람에게 동료와 친구 P의 행방을 묻자 그가 손가락을 들어 멀리 떨어진 굴뚝을 가리켰습니다. 그들은 아까 왼쪽으로 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역에서 함께 내렸던 사람들의 90퍼센트이며, 그곳은 ‘목욕탕’이라고 쓰여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비누 한 조각씩이 나누어졌고, 그들의 행방을 알려주었던 사람은 그 사람들이 지금 쯤 저 굴뚝을 통하여 하늘로 올라가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처음 겪게 된 삶과 죽음의 경계였습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오른쪽에 오게 된 이후 ‘집행유예 환상’이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당신은 어렴풋하게 여기 오기 전 정신과 의사였으며 당신이 과학에 관련해 평생을 바쳐 쓴 원고를 아직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집행유예 환상’에 의기양양해진 당신은 한 선임 수감자에게 당신의 삶을 털어놓기로 결심합니다.
“저는 여기 오기 전까지 과학을 하던 과학도였습니다. 여기 제 평생을 바쳐 집필한 원고가 있습니다. 제 일생이 여기에 들어있다는 말이에요. 이해하시죠?”
그러자, 그는 그래 ,라고 답변하며 당신의 원고를 갈기갈기 찣어버렸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심각한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주먹질을 당하다가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이끌려 진짜 목욕탕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분 안에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탈의한다. 실시”
당신은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옷을 벗고, 그 주변에서 심한 채찍소리와 함께 다른 방으로 옮겨졌습니다. 거기서 당신은 당신의 머리카락을 비롯하여 모든 털들이 모두 제거되는 경험을 합니다. 당신은 이제 당신 몸뚱이. 그 자체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3. 궁금증과 놀라움
당신은 이러한 과정들을 며칠간 반복하면서 당신 안의 희망이 사라져 갑니다. 대신 단순하지만 당연한 질문들이 당신을 둘러쌉니다.
‘다음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이런 환경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당신은 (교과서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궁금증들은 점차 놀라움으로 바뀝니다. 당신은 사람이 일정시간 이상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교과서에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해도 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를 닦을 수 없었는데도 잇몸이 건강했으며 흙일을 하다가 다치더라도 상처가 곪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놀랍도록 신비한 인체의 적응능력을 깨달아 갑니다.
이제 사람들은 ‘왜 자살하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감옥 외벽은 철조망이 감싸져 있고 거기는 고압 전류가 흐르는 곳이라 ‘철조망에 몸을 던진다’는 뜻은 ‘자살’을 의미합니다.
신기하게도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몇 번이고 겪고, 심지어 가스실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당신이 ‘자살 ’하는 것을 막아주게 됩니다.
#4. 무감각
그렇게 명령이 떨어지면 일하고 적은 수프만을 하루의 배급으로 산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의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발진티푸스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됩니다. 당신은 시체들 사이에서 사람들을 돌보게 되는데, 곧 죽어갈 환자에게는 점차 약을 주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약은 의미가 없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의 약의 기회를 뺏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방금 돌보던 환자가 문 밖으로 던져진 시체가 된 장면을 창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수프를 먹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감정에서 어떠한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깨닫습니다.
#5. 모멸감
이내 당신에게 감독관이 찾아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런 말을 합니다.
“야 너 처음부터 지켜봤어. 여기 들어오기 전에 뭐 했냐? 너 일을 똑바로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너는 결국에 이빨로 이 더러운 쓰레기 더미를 파게 될 거야! 너 여기 들어오기 전에 뭐 했지? 어? 장사했냐?”
당신은 의사였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 의사였다고? 사람들한테 돈깨나 긁어모았겠군?”
그러자 당신은 당신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모멸감이 밀려오며 답했습니다.
“ 사실대로 말하자면, 돈을 벌기 위해 일한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진료소에서 일했습니다. ”
당신은 그 말을 한 후 쉴세 없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당신 안의 분노는 잠재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극한의 환경에서도 인간으로서의 기본 감정과 모멸감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6. 수용소 안의 특별한 경험-현실을 잊기 위한 노력
수용소 안에서 모든 것이 무감각해지지만 유일하게 무감각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정치와 종교였습니다. 당신은 어느 날 밤 사람들이 금방 어떤 세력이 이기게 될 것이며 이 전쟁이 끝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또 어느 날 밤에는 영혼을 불러들이는 것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 어느 날 밤에는 예술을 하는 밤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현실을 잊도록 하는 공연을 하고 그중에는 현실을 풍자한 것도 있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수프를 많이 퍼달라는 유머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허락되지 않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잠도 못 자고 음식도 거의 배급받지 못하고 추위와 동상에 시달려야 했던 어느 날, 당신은 당신이 사랑했던 아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현실을 잊기 위해 당신은 몸은 일을 하면서도 머리로는 당신의 아내와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속적으로 반복됩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상한 시간감각을 경험합니다. 시간은 동일하게 가지 않고 어떤 하루는 일주일보다 느리게 갈 수 있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7. 살아야 할 이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당신은 당신의 가까운 환자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 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이 끝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날짜는 1945년 3월 30일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그 환자가 갑자기 3월 29일부터 아프기 시작했고, 3월 31일에 죽게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희망과 상실이 그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을 보고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8. 해방의 체험.
당신은 어느 날 종전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당신은 이 수용소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당신에게 느껴졌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생각보다 당신은 기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체험들로 인해 기뻐하는 감정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해방이 된 당신의 친구와 당신은 몇 날 며칠 동안 먹었고 잤습니다.
해방된 당신에게 첫 번째 느껴진 감정은 당혹감이었습니다. 당신의 친구는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밭을 지나게 됐는데 이 밭에 농작물을 짓밟자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지 말자고 하자 친구가 말합니다.
“그런 말 하지 마, 우린 충분히 빼앗겼어. 내 아내와 아이는 가스실에서 죽었다고. 내가 귀리 몇 포기 밟는다고 뭐라 할 수 없는 거 아니야?”
당신은 당신이 무참히 짓밟혔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고 싶은 감정에 빠집니다.
또 진정한 감정은 당신의 고향에 돌아왔을 때 느끼게 됩니다.
당신이 그토록 그리고 만나고 싶었던 가족들이 다 가스실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정작 자유를 얻은 후에 당신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통함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동시에 이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책은 빅터 플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이며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의 창시자입니다. 그가 만들어 낸 개념은 ‘로고테라피‘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삶의 경험을 통해 정신적인 것을 치유하는 심리치료학을 내놓습니다. 이는 로고테라피인데 사람은 이 세가지 인간의 삶을 제한하는 고통을 맞이할 수 있고 이러한 비극속에서의 낙관을 통하여 사람이 강해지고 성숙하며, 더불어 이것을 승화시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무의식을 성적인 욕망으로 해석하고 쾌락의 원칙에 초점을 두고
아들러가 인간의 무의식을 열등감으로 해석해서 우월하려는 욕구와 열등감 극복에 초점을 뒀다면
저자인 빅터 플랭클은 인간의 삶은 ‘삶의 의미’에 있으며, 미래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란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 개념입니다.
로고테라피는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게 도와주는 것이 그 과제이며. 그렇게 하려면 그 환자의 실존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과정입니다.
많은 정신분석학에서는 긴장 없는 상태 즉 항상성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 로고테라피에서는 어느정도 목표를 향한 긴장과 자유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실존적 공허에서 살아갑니다. 이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가 없어진, 살아갈 의지가 없어진 사람들은 누가 많이 때리고 괴롭혀도 자신의 똥물에 누워서 숨겨두었던 담배를 피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여지없이 48시간 안에 죽었다고 하는데요.
현대인들도 이러한 공허를 많이 느낍니다. 동물적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원시시대를 벗어나, 신이 존재했던 중세를 벗어난 현대인들은 실존적 공허, 즉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 이르르는 사람이 많습니다.예를 들어 열심히 일하다가 일요병이 몰려오는 일요일. 혹은 목표가 없는 노년의 노인들이 자살을 하는 경우가 이러합니다.
로고테라피는 ‘책임감’을 기본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정신이나 인간의 내면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역으로 이 세상이 나에게 주는 의미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자체에서 질문을 받고 있고 자신의 삶을 책임짐으로써 그 의미를 찾아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은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보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인생도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날 정신건강은 행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그리고 불행의 부적응에서부터 온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불행이 가중되며 불행의 집이 커진다’고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삶에서 시련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란
고통을 세가지로 나눕니다.
1)고통
2)죄
3) 죽음입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이러한 시련 안에서도 삶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는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자각하는 자만이 일상성에서 벗어나 본래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죽음에 대한 경험을 미리 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먹고살기 위한 것에 대한 논의를 끊임없이 하죠. 그러면서 다른사람의 눈치는 많이 봅니다.그리고 승진도 하려고 하고 좋은 학교도 다니려고 합니다.아둥바둥 살다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고 가정했을 때 그때서야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세 가지는
1) 무엇을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
2)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
3)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하면서 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수용소의 체험에서 숭고하게 행동하는 성인을 만난 경험도, 돼지같은 사람을 만난 경험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이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에도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프로이트가 살았던 때에는 강제 수용소의 체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같은 상황에 놓임으로써 그 반대로 각각 개인의 차이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돼지와 성자, 두 부류로 말이죠.
처음 했던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인용해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인간에게 위험한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