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이 주는 선물

조금은 고리타분한 취향에 대하여

by dodoworld

생각해 보면 거의 오래된 것들을 사랑한다.


음악도 클래식을 좋아하고


대중음악에서 찾자면 우리 아버지 세대가 좋아했던 올드팝을 좋아한다.


미술도 이상하게 현대미술에는 마음이 가질 않고


몇백 년 전 그들의 삶을 추적하기도 어려운 그런 그림들과 작품들만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꼭 '말'에 한정해선 그렇지 않았다.



지금 느끼는 기분을 '이 순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고,


그렇지 못하면 '그 사람'과 '나'는 '단절'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 고백하건대


나는 꽤 오랜 시간 말 못 할 이유로 엄마를 미워했었다.


때문에 '함께' 있음에도 꽤 오랜 시간 '단절'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엄마는 화투를 좋아한다.


하지만 다른 식구들은 여러 이유로 화투를 좋아하지 않았고 엄마는 늘 같이 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했다.


이번 설에 난 정말 , 막연한 호기심에 엄마에게 화투를 배웠다.





그리고 엄마와 몇 시간 동안 앉아서 화투를 친 것 같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거의 모든 판을 내가 다 이겼다.




분명 내가 다 이기고 엄마가 돈을 다 잃었는데 엄마는 아이같이 웃으며 좋아했다.


화투를 치고 엄마와 고깃집에서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이야기를 나눴다.





심각한 이야기도. 깊은 이야기도 없었다.


내가 어릴 때 가끔 속상하면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왜 그랬었냐는 그런 호소도 없었다.


그냥 담담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고기를 먹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젠 깊이 엄마와 '화해'했음을 안다.


'낡음'이 주는 미덕처럼.

'시간'이 주는 깊이처럼.

'클래식'이 시간이 지나면 더 가치가 있어지는 것처럼.


말하지 않아도 해결되는 것이 있음을 이제 안다.





지금은 잘 모르겠는 관계도


가끔은 시간이 대답해 줄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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