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링기 Mar 16. 2022

[락] 누군가는 막장이라겠지만

혹시 당신도 ...보시나요?

  “요즘 넷플릭스 뭐 봐요?”


  예전에는 어떤 책을 보는지, 혹은 최근 개봉한 그 영화를 보았는지 물어보며 대화를 열었다면 요즘은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물어보며 서로의 취향을 알아간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멋지구리한 콘텐츠가 있다. D.P.,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 화제가 되는 시리즈물이나 익스플레인, 우리의 지구 등 다큐멘터리 장르가 그러하다. 그러나 말하면서 살짝 주변의 눈치가 보이는 영상도 있다. 요즘 내가 빠져있는 ‘결혼 작사 이혼 작곡’처럼 말이다.


  ‘결혼 작사 이혼 작곡 (이하 결사곡)’ 은 막장 드라마의 대가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다. 그녀는 절필을 선언했지만 ‘피비’라는 필명으로 TV 조선에 돌아왔고 결사곡은 TV조선 드라마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현재 시즌3을 절찬리에 상영하고 있다. 숫자로만 보면 성공한 드라마이지만 주변 사람에게 이 드라마를 본다고 쉬이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작품성에 대한 찬반 논란이 심하기 때문이다. 임성한 작가는 그동안 작품성보다는 비현실적인 소재나 과하게 파격적인 전개로 비난을 받았다. 나도 그녀의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는 웃다가 죽는다던지, 눈으로 레이저빔을 쏘는 드라마의 캡처 화면을 보고 뭐 이런 게 다 있냐고 비웃었는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 밤만 되면 생각나는 치킨처럼 자꾸 보고 싶고 기다리게 된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드라마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30대, 40대, 50대 여성이 각자의 사연으로 이혼을 경험하며 발생하는 일을 그리고 있는데, 그 과정이 막장답게 참신하고 웃겨서 보다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젊은 새엄마가 결혼한 의붓아들에게 이성적인 마음을 품는 장면이나 억울하게 죽은 할아버지 귀신이 자꾸 여기저기 빙의하는 장면 등 명장면은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되지도 않는 이유로 불륜에 빠지고 이걸 사랑이라고 칭하는 인간 말종들 때문에 뒷머리를 잡는 것은 기본이다. 자신들의 불륜을 운명적인 사랑이라 여기며 궤변을 늘어놓는 등장인물들을 보면 혼자 있는 집 안에서 듣는 사람도 없는데 육성으로 욕을 하게 된다. 고구마처럼 어이없고 답답한 장면에서는 목이 메이고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하고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나오는 ‘I’m in love again~’ 하는 BGM을 들으면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나, 아쉽고 다음 회차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것이 드라마의 힘인 걸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빙의한 장면. 명장면이다.

  예전에는 엄마가 이와 비슷한 류의 드라마를 보면 그런 걸 왜 보냐며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그냥 시간 때우기 용이라고 했지만 꽤 집중해서 보았다. 몇 번 같이 보다가 재미도 없고 시간도 아까워서 그만두었는데 이제서야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깊은 뜻이 있는 건 아니고 너무 재밌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전개도 웃기고 속이 터지다가도 좋아하는 등장인물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방긋 웃음이 절로 나온다. 결국에는 다 드라마 속 이야기라는 걸 아니까 필요 이상으로 과몰입하지도 않고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도 막장스러운 일이 정말로 많기에 이 정도 플롯이야 있음 직한 일 같다. 시즌 1을 보다가 혹시 엄마도 이 드라마를 봤을까, 싶어 물어보니 반가운 목소리로 보고 있었다며 너도 이걸 볼지 몰랐다며 답했다. 이후로는 종종 전화를 주고받으며 드라마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 아니 엄마, 그 아저씨는 미친 거 아니냐, 그러니까, 근데 그 둘이 다시 만날 것 같다, 이렇게 말이다.


  누군가는 막장이라겠지만 - 실제로도 막장이지만 - 이런 자그마한 삶의 낙이 있어서 즐겁다. 사는 데 있어 소소한 낙은 중요하다. 매주 로또 1등이 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턱없이 말도 안 되는 꿈이다. 꾸준하게 작은 웃음을 주는 일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이렇게 매주 나를 웃겨주는 드라마가 있어 올해 2월 중순부터는 우울하다가도 마음이 놓인다. 주말이면 결사곡을 볼 수 있으니까. 더불어 좋아하는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무튼 임성한 작가가 돌아와서 반갑다. 이번 주 결사곡도 기대된다. 과연 이시은은 앞으로 누굴 만날지, 사피영은 서동마와 어떤 관계가 될지, 부혜령은 판사현과 다시 만날지. 어서 넷플릭스에 오늘 결사곡이 올라오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결사곡을 보면 좋겠다.


  그렇다. 사실은 영업 글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 달달한 알고리즘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