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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Jan 30. 2023

23년에는 진짜 절약할거다.

구정이 지났으니 습관처럼 세워보는 목표. 

  무인양품을 좋아한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다이소보다는 비싸지만 그래도 만만한 가격은 딱히 살 것이 없어도 나를 그곳으로 자꾸 이끌게 만든다. 강남역에는 4층짜리 무인양품이 있는데 크게 베리에이션이 변동되지 않아도 종종 무인양품에 가서 정갈하게 정돈된 상품들을 구경한다. 그중 언제나 살까, 말까 고민하는 아이템이 있는데 바로 국자 받침대이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요리 중 국자를 보관하는 것이, 혹은 다 같이 전골을 먹을 때 국자를 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어쩌다 한 번 집밥을 해 먹는데 그때마다 국자를 어디에 두는지로 사소한 곤란이 있었다. 그러다 무인양품에서 이 제품을 알게 되었다. 이 국자 받침대는 원래 8,900원이었다. 그러다 다양한 이유 -땡스 투 노노재팬- 덕분에 6,900원까지 가격이 인하되었다. 나의 목표가는 4,900원이다. 저 국자 받침대가 4,900원이 되면 사야지. 6,900원은 너무 비싸. 이 마음을 3년 넘게 품고 있는 걸 보면 가격을 유지하는 무인양품이 지독한 건지, 그걸 아직 버티고 있는 내가 지독한 건지 구분하기 어렵다. 

  뿐만이 아니다. 지금 일주일째 장바구니에 머무르고 있는 옷도 있다. 유니클로에서 29,900원에 판매 중인 가벼운 플리스 재킷인데 싼 맛에 살 법도 하지만 사이즈가 아쉬워 재입고만 노리고 있다. 이러다 품절되면 어떡하지라고 작게 전전긍긍하며 매일같이 유니클로 앱에 들어가 재고 확인을 하고 있는데 조만간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시착 후 구매를 결정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지혜로운 소비자인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극단적인 소비자이다. 6,900원짜리 국자받침대에는 파르르 떨며 지갑을 움켜쥐지만, 비싼 가죽이나 부드러운 실크에는 생각 없이 카드를 건넨다. 마치 0이 하나 혹은 두 개 빠진 것처럼 계산한다. 조금씩 커지던 소비력은 22년에 절정에 다다랐고 23년이 되고 작성한 만다라트 중 [경제] 섹션에 가장 먼저 들어간 항목은 [옷 구매 제한 개수]였다. 그마저도 추가 조항을 걸어 어떻게든 옷을 사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 그 와중에 만다라트를 다 못 채운 게 킬포. 나는 경제적으로 이루고 싶은 건 없고 소비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만 있는 게 아닌가,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요즈음이다.          


경제는 왜 채우기 힘들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나는 왜 사치품에 빠져드는 걸까. 21년과 22년에는 빚만 지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돈을 썼다. 성실하게 저축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직관적이고 순간적인 쇼핑의 쾌락은 장기적이고 우직한 저축의 매력보다 훨씬 더 나를 매혹했다. 문틈 너머 본 vip와 쇼핑의 세계는 참으로 멋있었다. 부럽고 끼고 싶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선까지 그 틈바구니에 껴봤다. 안락했다. 출근길 지하철의 북닥거림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소비의 틈바구니는 따뜻하고 기분이 좋았다. 아, 일평생 이렇게 소비만 하고 vip등급이 누리는 혜택에 끼고 싶다. 일원이고 싶다. 영구 멤버이고 싶다. 


  그러나 올라가는 금리와 지속되는 인플레이션, 그리고 조금씩 떨어지는 집값을 보며 정신을 차리고 있다. 이제 진짜 집사야지. 기회를 놓치면 안 되니까 정신 차리고 돈을 모으고 집을 장만하여 진정한 서울 시민이 되어야지. 묻지 않았는데 남편에게 자꾸 "나 이제 진짜 그만 살 거야."라고 셀프 선언하며 혼자 진중해진다. 

...난가? 

  아무튼 그렇게 23년을 맞이하고 있다. 살까, 말까의 고민은 이제 끝났다. 안 사고 안 사야 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시 리스트 폴더에 금붙이들을 담으며 이게 마지막이다, 이게 마지막이야 라고 도박쟁이처럼 혹은 약쟁이처럼 읊조리는 나를 보면 쇼핑 디톡스에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러니까 이건 과도기 같은 거다. 쇼핑 절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결국 무욕에 수렴하지 않을까. 자신 없는 예측을 해본다. 


   ... 잘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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