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점심 사이, 새로운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
최근 부쩍 친해진 누군가가 당신에게
“브런치, 함께 하시겠어요?”라고 질문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브런치라고 생각해볼 때 떠오르는 에그 베네딕트, 팬케이크, 아메리카노 등의 메뉴를 언뜻 떠올리며 ‘아 나는 한식이 좋은데’ 싶을 수도 있고, ‘브런치? 몇 시에 만나자는 거지, 난 출근해야 하는 사람인데. 주말에 만나자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브런치(Brunch)는 아침과 점심 사이에 하는 간단한 식사, 라는 의미만 아니라 이제 특정한 메뉴와 분위기를 동반하는 문화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브런치(Brunch)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1895년 영국의 작가 가이 브링어(Guy Bringer)의 『브런치: 하나의 청원(Brunch: A Plea)이라는 책에서다. 그는 브런치를 “유쾌하고, 사교적이고, 분위기를 고무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며, 브런치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제 브런치라는 말과 식사문화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해 약 200년의 시간을 거쳐 지금의 한국까지 전해졌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으로 건너간 브런치가 처음부터 가이의 말처럼 “풍요”와 가까운 모습은 아니었다는 거다.
브런치는 1930년대 미국 서구의 산업화된 도시에서 일요일 아침을 한가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잠옷 바람으로 간단하게 집에서 먹던 식사였다. 이렇게 브런치는 원래 집에서 쓰던, 우리로 치면 주말에 늦게 일어나 즐기는 ‘아점’과 같은 가정 안에서의 식습관이었는데, 레스토랑과 호텔들이 브런치용 특별한 메뉴를 개발하고 음악, 춤 등의 엔터테인먼트를 곁들여 '사회적 이벤트’로 만들게 되었다(1).
그리고 우리가 말하고 상상하는 대중적인 브런치는 1980년대 대학교수나 학생,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이 많이 모여 살던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사이드(Upper West Side)의 안 스테르 담 에비뉴(Amsterdam Avenue) 쪽에서 생겨나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때 브런치는 주말을 즐기는 뉴요커들이 즐겨 찾는 식당에서 판매하는 메뉴로 인식되면서 “따뜻함과 풍요로움”의 이미지를 가지고 여유와 즐거움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2).
이때부터 브런치는 간단히 때우는 식사가 아닌, 사교활동의 장이 되기 고하고 브런치 메뉴가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면서 즐기기도 하는 ‘유행’이 되었는데, 아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주인공 캐리와 친구들이 즐기는 브런치, 그 모습이 브런치의 이미지 자체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브런치가 한국으로 넘어온 건 2000년대 중반의 일이다. 2007년 11월 2일 자 『뉴욕타임스』에는 한국의 브런치 열풍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3). 해당 기사에서는 한국에 ‘주 5일제’가 도입되면서 여가시간이 많아지고, 해외여행과 유학 생활 등을 통해 서구 문화를 경험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리고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인기를 얻으면서 브런치 열풍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인물과 사상』의 2009년 1호에 실린 <브런치와 몇 가지 풍경들, 그리고 뉴욕 스타일>이라는 글에서는 이 기사의 분석에 틀린 말은 없지만, 서구인의 호기심 어린 시각이 불편하다고 말하지만, 2000년대 한국사회에서 ‘뉴욕 스타일’은 가장 잘 나가는 문화상품 중 하나고, 브런치는 그중 대표주자라 할 만하다고 말한다(4).
비슷한 시기, 같은 잡지에 실렸던 또 따른 글에서는 강남의 고급 레스토 랑가를 중심으로 브런치 레스토랑이 붐을 이루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이것을 중산층의 유별난 모습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20~30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여성들 사이에서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브런치를 즐기는 것이 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뉴욕에서도 그렇듯이) 대한민국 모두가 브런치를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2020년인 지금의 브런치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떤 특권의식을 드러내는 장치라기보다는, 흔히 마주하는 많은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메뉴 중의 하나이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테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에도 사회의 구성원들이 움직이고 살아가며 만들어낸 의미들이 담긴다는 것이고, 때문에 중요한 것은 쉽사리 특정 단어에 프레임을 씌우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마치 1930년대, 늦은 시간까지 잔업을 하다가 주말 휴무를 받아 느지막이 일어난 토요일 아침 간단하게 아점을 먹으려던 마크 씨가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먹을법한 브런치를 왜 당신이 먹느냐며 사치스럽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음식을 매개로 문화가 전달되고, 나타나며, 일상에 그 의미가 녹아들게 되는지를 그려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좀 더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이 브런치라는 말에 담긴 ‘시간’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앞의 이야기들이 왜, 누가 브런치를 즐기는가?라는 질문에 관한 대답들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을까?”가 더 궁금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생각해보면 1930년대의 뉴욕의 산업 노동자들이 그랬듯, 1980년대 맨해튼의 교수님이 그랬듯, 그리고 2000년대 후반 강남의 중산층 누군가가 그랬듯, 이전에 사회적으로 정답처럼 정해졌던 식사 시간의 패턴이 다양해질 수 있었던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나도 브런치를 처음 제대로 접한 게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던 것 같다. 시간의 개념만으로 보았을 때 브런치는 곧 ‘아점(아침과 점심 사이의 식사)’인데,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부랴부랴 먹고 (많은 경우 먹지 못하고) 학교에 가거나 출근길에 오르는 경우 아침을 먹지 못하고, 점심 전에 간단하게 간식을 먹기는 하지만 그걸 아점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즉 시간은 애매하지만, 간단하긴 하지만 ‘식사’라고 생각되는 것을 우리는 아점 그리고 브런치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브런치’라는 것을 사전적 의미 그대로 ‘아침과 점심 사이의 식사’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그저 하나의 식사인데, 그저 누군가는 늦게 일어나서 하루를 늦게 시작하면서 아점을 먹게 될 수도 있고 또는 점심부터 업무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전에 아침보다는 늦게, 그러나 점심시간보다는 이르게 식사를 하게 되는 것뿐이다,
이렇게 보면 브런치는 ‘즐긴다’의 개념이 아니라 ‘먹는다’의 개념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아침 7-8시경엔 아침식사, 12시-1시경엔 점심식사, 6시-7시경에 저녁식사를 먹는다는 (과거의 언젠가까지는 일반적이었던) 사회적, 문화적 도식에서 벗어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하나의 동일한 패턴 안에 있지 않다.
우리 모두는 하루에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자원을 갖는다. 그래서 이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을 배분하는가는 개인의 삶의 방식이자 적응 양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5), 개인의 시간 할당에 대한 선택은 사회적 환경과 자신이 속한 문화 및 관습에 영향을 받는다(6). 즉 브런치(아점)를 먹기로 선택하는 것은 유행에 따른 선택일 수도 있지만, 다양해진 일하는 시간의 패턴에 맞추어 선택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단순히 그 현상 자체를 이해하는 것만 아니라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적 환경과 문화, 그 안의 개인들의 행위를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통해 드러나는 시간의 재구성과 시간의 재구성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변화, 그리고 그 안에서 끝없이 움직이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 앞으로도 나의 Brunch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쌓아가 보려 한다.
2020년 6월 25일,
조금씩 비가 흩날리는 목요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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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9년 2월 2일, 『뉴욕타임스』, 「일요일 아침 브런치(Sunday Morning Brunch)」
(2) 1998년 7월 8일, 『뉴욕타임스』,「브런치는 기괴할수록 좋다(At Brunch, The More Bizarre The Better)」
(3) 2007년 11월 2일, 『뉴욕타임스』, 「한국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첫 번째 주말, 그리고 지금 브런치(A New Lifestyle in South Korea: First Weekends, and Now Brunch)」
(4) 탁선호(2009), <브런치와 몇 가지 풍경들, 그리고 뉴욕 스타일>, 『인물과 사상』, 2009(1), 91-107.
(5) 차승은(2008), <중년의 일, 가족, 여가시간 배분 유형과 유형결정요인: 취업한 기혼 남녀를 중심으로>, 『Family and Environment Research』, 46(1), 103-116.
(6) Michelson, W. H. (2015). Time use: Expanding explanation in the social sciences. Routl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