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올라간 발자국

저학년 단편동화입니다

by 제노도아

다솔이의 이름은 아빠가 지어 주었어요.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과 솔로몬에서 ''자와 '솔' 자를 따온 것이지요.

다윗 왕의 용기와 솔로몬 왕의 지혜를 닮으라고 지어 준 이름이에요.

학교 친구들은 다솔이의 이름이 여자 이름 같다고도 하고, '도레미파솔'이라며 놀리기도 해요.

별이 따스한 날이었어요. 다솔이네 반 아이들은 잔디밭에 앉아 그림을 그렸어요.

하늘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구름이 수를 놓고 있었어요.

"얘들아, 우리 구름 모양 말하기 놀이하자."

경식이의 말에 아이들은 구름을 보며 눈에 보이는 대로 이름을 붙였어요

병아리구름, 토끼구름, 호랑이구름, 방울구름, 새털구름.

아이들은 병아리구름은 병아리가 하늘에 올라가서 된 구름이고, 토끼구름은 토끼가, 호랑이구름은 호랑이가, 방울구름은 방울이 올라가서 된 걸 거라고 말했어요.

그때, 경식이가

"어? 저건 구둣솔 모양이잖아?"

하며 다솔이를 돌아보았어요.

경식이는 '학교 종이 땡땡땡'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솔솔 솔솔 무슨 솔

썩은 이 칫솔

더러운 신 구둣솔

옷솔 화장실 솔


짓궂은 아이들이 재미있다며 따라 불렀어요

그날부터 경식이는 다솔이를 볼 때마다 그 노래를 홍얼거렸어요.

화가 난 다솔이가 선생님께 일렸어요. 그런데도 경식이는 선생님 몰래 다솔이를 놀렸어요.


아침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날이었어요.

다솔이는 가방을 메고 한 손에 우산을 들었어요

그리고 숙제한 도화지를 가방에 넣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어요. 가방 안에 넣었다 혹시라도 자국이 생기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다솔이는 조심스럽게 도화지를 겨드랑이에 꼈어요.

"야. 구둣솔. 이 도화지 숙제지?"

운동장에서 만난 경식이가 대뜸 다솔이의 어깨를 툭 쳤어요. 그 순간 도화지가 후르르 떨어졌어요.

"어, 어."

다솔이는 울상이 되어 얼른 도화지를 집었어요.

도화지에는 이미 흙탕물이 번져 있었어요.

"에이, 너 선생님께 이를 거야."

"이를 테면 일러라 고자질쟁이. 그러면 화장실 솔이라고 부를 거니까."

경식이는 아이들과 함께 낄낄거리며 앞서 갔어요.

다솔이는 초록색 물감과 흙탕물이 뒤섞인 도화지를 들고 툴툴거리며 교실로 들어왔어요.

"모두 숙제한 것 꺼내 봐요."

숙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의 발자국을 찍어오는 것이었어요.

아이들은 친구가 어떤 발자국을 가지고 왔을까 궁금해서 이 책상 저 책상을 기웃거렸어요.

"야, 구둣솔. 난 우리 집 불도그 발자국이다. 으르렁 컹컹!"

경식이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불도그 흉내를 냈어요.

다솔이는 경식이가 밉살스러워 바라보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경식이는 다솔이 팔을 잡아당기며 신나게 떠들었어요.

"어제저녁에 이 발자국 찍느라고 굉장히 힘들었단 말이야. 불도그 녀석이 자꾸만 발을 옴츠리잖아. 그런데 넌 이게 무슨 발자국이야? 에계계."

경식이는 다솔이의 얼룩진 새 발자국을 보더니 입을 삐죽거렸어요.

"우리 집 잉꼬 발자국이야. 그런데 너 때문에 이렇게 망쳤잖아."

다솔이가 눈을 치켜뜨며 볼멘소리를 했어요.

"쉿. 조용히 해, 인마. 그래도 새 발자국인 건 알겠는데 뭘 그래. 선생님께 고자질하면 이거야."

경식이가 볼끈 주먹을 쥐어 보였어요.

다솔이는 입술을 잘근 물고 다른 아이들의 도화지를 살펴보았어요.

햄스터 발자국ㆍ청거북 발자국ㆍ병아리 발자국.

"공룡 발자국을 찍어 와야 했는데 볼 수가 없어서 말이야. 넌 왜 솔 닮은 고슴도치 발자국을 찍어 오지 그랬냐? 지저분한 도화지에 시시하게 새 발자국이 뭐야?"

경식이가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어요. 그 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어요.

다솔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뭐라고? 내 도화지가 누구 때문에 이런데. 선생님, 경식이가 운동장에서 제 도화지를 쳐서 떨어뜨렸어요."

갑작스러운 다솔이의 모습에 경식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이 자식이!"

경식이가 주먹으로 다솔이를 힘껏 밀쳤어요.

다솔이는 의자에서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벌떡 일어난 다솔이는 제 도화지와 경식이 도화지를 구겨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어요.

"이게 정말, 내 불도그 발자국을!"

경식이가 다솔이의 멱살을 잡았어요.

"그래. 불도그 발자국하고 새 발자국은 하늘로 사라졌어, 어쩔래?"

다솔이도 경식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어요.

"어어, 이 녀석들 좀 봐라. 매일 올근 볼근하 더니 이게 무슨 일이야? 둘 다 뒤에 가 서 있어."

선생님이 성큼 다가와서 화난 목소리로 말했어요.

경식이는 디솔이의 발을 꽉 밟고 교실 뒤로 갔어요.

"아야!"

다솔이가 소리를 지르는데도 경식이는 시치미를 뗐어요. 다솔이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어요. 경식이가 창 밖으로 목을 쑥 빼고 내다보았어요.

"어라, 내 도화지 어디 갔지?"

경식이가 중얼거렸어요.

다솔이는 눈을 흘기며 얼굴을 돌렸어요. 어떻게 하면 경식이한테 분풀이를 더하나 생각하면서요.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어요.

어슬어슬 어스름이 내리고 교실에 불이 켜졌어요.

"쫘르르르, 우르르릉 쿠앙!"

번갯불이 번쩍하더니 천둥소리가 교실을 흔들었어요.

"엄마야, 엄마 무서워."

여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책상에 엎드렸어요.

다시 번갯불이 번쩍하더니 불이 나갔어요. 교실은 어둠에 싸였어요.

유리창이 퍼르르 퍼르르 흔들리는 소리가 났어요.

"괜찮아, 조금만 기다리면 지나갈 거야. 경식이랑 다솔이는 제자리로 가."

선생님의 말을 천둥소리가 삼켜 버렸어요.

어떤 아이는 훌쩍훌쩍 울기도 했어요.

경식이와 다솔이는 귀를 막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어요. 서너 걸음 떨어져 있던 경식이가 슬금슬금 무릎걸음으로 다솔이 곁으로 다가왔어요.

연거푸 번개가 새파란 눈을 치켜뜨고, 천둥소리가 교실을 뒤흔들었어요.

"아이고, 엄마!"

경식이는 깜짝 놀라 주저앉았어요.

다시 번개가 치자 경식이는 와락 디솔이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어요.

다솔이가 얼른 경식이의 등을 끌어안았어요.

"미. 미안해, 다솔아. 불도그 발자국하고 새 발자국이 정말 하늘로 올라갔나 봐. 그래서 하느님께 우리가 싸웠다고 이른 것 같아."

경식이의 목소리가 떨렸어요.

"그. 그렇지? 우리 이제 싸우지 말자."

다솔이도 겁에 질린 목소리었어요.

다솔이는 경식이의 손을 꼭 잡았어요.

천둥소리가 점점 멀어졌어요. 교실에 불이 반짝 들어왔어요. 아이들이 와아 소리를 질렀어요.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졌어요.

"다솔이랑 경식이는 언제 이렇게 친해졌니?"

선생님이 다솔이와 경식이를 바라보며 눈웃음 지었어요.

다솔이와 경식이는 멋쩍게 웃으며 슬며시 손을 놓았어요.

수업이 끝나자 비도 그쳤어요.

먹구름이 비껴간 사이로 햇살이 말간 얼굴을 드러냈어요.

다솔이와 경식이는 어깨동무를 하고 교문을 나섰어요.

하늘을 올려다보던 다솔이가 소리쳤어요.

"경식아, 저것 봐."

하늘에는 불도그 발자국과 새 발자국 구름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어요. <끝>


*이야기 너머, 작은 속삭임

작은 말 하나로 멀어지기도 하고,

작은 미소 하나로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 친구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울고 나면 금방 웃으며 서로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우리는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합니다.

오래 머뭇거립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다시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