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o Camino de Santiago #100

Epilogue

by 안녕
Day 95.
Friday, July 28


6시쯤 기내식으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선택해서 먹고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7시 10분 인천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는데 안타깝게도 비가 오고 있었다. 탑승동에서 여객동으로 이동해서 자동 출입국 심사를 거쳤다. 내 배낭을 패킹한 비닐과 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고, 배낭 어깨끈으로 똘똘 묶여있었다. 세관 신고서를 제출하고 밖으로 나오니 8시다.

다시 무거운 짐들을 들고 공항철도를 타고 픽업 장소인 김포공항역 4번 출구로 가니 끝없는 계단이 있었다. 배낭과 짐을 들고 5km도 걸었던 내가, 한국에 돌아오니 몇 m 계단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계단을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되돌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니 바로 바깥이었다. 비를 피할 곳이 없었지만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는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픽업해 주기로 한 친구에게 10분 정도 늦는다는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폰은 아직도 런던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 날짜에 맞추어 일시정지 시키고 출국했었는데 자동으로 해제되는 게 아니었던가?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떠나는 순간부터 그렇게도 돌아오고 싶었던 집이었다. 나는 돌아올 곳이 필요했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가질 수 있는 안도감이 필요했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베드버그 박멸을 위해 현관에서부터 전쟁은 시작되었다. 배낭은 통째로 비닐에 싸서 거실 발코니 난간에 격리시켰다. 입었던 옷은 모두 물에 담가두고 샤워부터 했다. 그리고 난간에 매달려서 모든 짐을 분류하고 정리했다.

비가 오고 하늘이 흐리니 마치 저녁 같았다. 폰은 여전히 런던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집에서 유일한 시계인 스마트 폰이 계속 런던의 밤 시간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차 적응이 안 되어 그런지 계속 졸렸다. 청소부터 하고 싶었는데 순간 저녁이라고 착각했다. 실제론 낮 12시였다.

폰을 껐다 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 이러지? 그제야 비행모드를 해제하지 않은 게 뒤늦게 생각났다.

드디어 서울 시간대로 재설정되었다. 로밍을 하지 않고 100일 동안 일시정지 시키고 갔었는데 그건 이미 해제되어 있었다.

잠을 쫓으려 TV를 켜려고 보니 리모컨 배터리도 교체해야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집을 비웠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전화도 비몽사몽 받았던 것 같다.

시차 적응을 위해 버티려고 했으나 어느새 깊이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진짜 밤이 되어있었다. 내 침대에서 눈을 뜨니 계속 집에 있었던 것 같다.

그제야 집이 보이고 주변이 보였다. 옆 건물에 들어왔다던 PC방 에어컨 실외기는 방향이 이동되어 설치되어 있었고 건물 창도 전부 가려져 있어서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비스킷과 크래커는 부서진 곳 하나 없이 모두 무사했다. 배낭 속에 들어있던 초코 비스킷이 걱정되었는데 탁월한 나의 짐 싸기 기술 덕분에 모두 무사했다.

하지만 물린 상처가 몇 군데 더 생긴 것 같다.




스페인 초코 비스킷과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드렸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여행의 기억 따위는 잊을 테니 하루를 빨리 마감하려고 했으나 어느새 새벽 2시다.

반려견 몽이가 떠난 지 어느덧 2년이 되었다. 첫 번째 까미노는 몽이를 생각하며 걸었고, 다음에는 몽이를 데리고 와야지 하는 상상도 했었다. 하지만 몽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두 번째 까미노는 몽이를 그리워하며 걷게 되었다. 이번 여행으로 남은 것은 고통과 상처뿐이었다.

어머니는 손주의 등장에 딸의 생일도, 몽이의 기일도 잊으셨다.




이번 여행은 분명 실패였지만 후회는 없었다. 여행에 앞서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는 길이니 평탄한 여행은 되지 않을까란 기대를 하며 떠난 건 사실이었다.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떠나는 사람은 없지만, 이번에는 그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누굴 탓할 수는 없었다. 굳이 탓하자면 그 대상은 나밖에 없는데, 나마저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참 서글플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쁜 일이 생기면 아무것도 아닌 양 잊으려 했었다. 그렇게 잊힌 기억은 기억 너머 어딘가에 묻혀있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잊으려 노력했지만 기억나기를 반복하는, 그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점점 더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보다는 조금 완화된 기억이라 견딜만했다. 그렇게 난 나를 지키며 살아왔다.

살아왔으면 된 거지?
살아왔으니 문제인 건가?




Epilogue


2년 만에 꺼낸 기억이었다. 첫 번째 매거진 '산티아고 가는 길'은 까미노를 앞둔 초보 순례자를 위한 정보를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정보 위주의 후기를 많이 찾아보았지만 대략적인 일정이 정해지고 나면, 더 이상 정보는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에 같은 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사건을 중점적으로 찾아보게 되었다.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해서 각 성격마다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저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 길에서는 같은 길을 걷는다고 해서 다 같은 상황일 수는 없다.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두 번째 매거진 '악몽으로 끝나버린 두 번째 까미노'는 주관적인 부분이 대부분이다. 정보도 최대한 배제했고 오로지 걸으면서 일어난 일을 솔직히 담으려고 노력했다. '쟤는 왜 저래?'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나 역시도 '저때는 왜 그랬지?'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돈이 없어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고 싶었다. 고생은 하겠지만 적은 돈으로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그렇게 시도하다 보면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했었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미리 알려주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듯이 말이다.

다소 거친 마음으로 떠났던 여행이었고, 런던에서의 휴식으로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다. 왕복 16km 거리의 그리니치까지 걸어서 갔다 오면서 나름 계획대로 순항하던 여행이었지만 영국에서 나의 운은 다했던 모양이다.

프랑스 파리 숙소였던 북역 근처의 Jacobs Inn Hostel에서 베드버그와 함께 나의 악운은 시작되었고, 그 일은 남은 모든 여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야고보 즉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고 가다가 야고보 즉 '제이콥스 인 호스텔'에서부터 망해버린 여행이었다.

스페인 순례길에서는 끊임없는 물집과 발진 그리고 무릎을 다치는 것도 모자라 한여름에, 저체온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면서 절망했다.

모든 의욕이 사라진 포르투갈에서는 남은 일정을 접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때우다가 돌아왔다. 돈 쓰는 것조차 아까웠다.

발톱 네 개는 새로운 발톱이 자라났지만 다리는 여전히 시큰거리고 뻐근했다. 밤마다 무릎은 아팠고, 벌에 쏘이고 베드버그에 물린 상처는 염증이 심해져 몇 달 동안 고생했다. 겨울이 되면서 발의 열기는 사그라들었고, 베드버그에 물린 상처도 아물었지만 무릎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힘든 상황이다. 두 번째 매거진을 발행하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 뉴스를 보면서도, 스페인 순례길은 무사했으면 했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재앙이라 유럽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유럽이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니 까미노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고, 걱정이 되었다. 길 위에서 스치고 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무사하길 빌어본다.




04.25~05.01 London, England
05.01~05.08 Paris, France
05.08~05.15 Lyon, France
05.15~05.22 Nice, France
05.22~05.29 Lourdes, France
05.29~05.30 Saint Jean Pied de Port, France
05.30~07.13 Camino de Santiago, Spain
07.13~07.14 Santiago de Compostela, Spain
07.14~07.19 Fátima, Portugal
07.19~07.27 Lisbon, Portugal
07.27~07.28 London, England




2do Camino de Santiago 775.0km

Saint Jean Pied de Port→Valcarlos 13.0km
Valcarlos→Roncesvalles 12.0km
Roncesvalles→Zubiri 21.5km
Zubiri→Zabaldika 12.1km
Zabaldika→Pamplona 8.2km
Pamplona→Puente la Reina 24.0km
Puente la Reina→Estella 21.9km
Estella→Los Arcos 21.2km
Los Arcos→Viana 18.3km
Viana→Logroño 9.5km
Logroño→Navarrete 12.7km
Navarrete→Nájera 16.9km
Nájera→Santo Domingo de la Calzada 21.0km
Santo Domingo de la Calzada→Belorado 22.7km
Belorado→Olmos de Atapuerca 32.9km
Olmos de Atapuerca→Burgos 19.6km
Burgos→Tardajos 10.8km
Tardajos→Castrojeriz 29.5km
Castrojeriz→Población de Campos 28.5km
Población de Campos→Carrión de los Condes 15.4km
Carrion de los Condes→Calzadilla de la Cueza 17.0km
Calzadilla de la Cueza→Sahagún 22.6km
Sahagún→El Burgo Ranero 17.6km
El Burgo Ranero→Mansilla de las Mulas 19.2km
Mansilla de las Mulas→León 18.1km
León→Villadangos del Páramo 21.3km
Villadangos del Páramo→Hospital de Órbigo 12.4km
Hospital de Órbigo→Astorga 16.1km
Astorga 0.0km
Astorga→Santa Catalina de Somoza 11.5km
Santa Catalina de Somoza→Rabanal del Camino 11.0km
Rabanal del Camino→Ponferrada 32.9km
Ponferrada→Cacabelos 16.6km
Cacabelos→Trabadelo 17.2km
Trabadelo→La Faba 13.8km
Faba→Hospital da Condesa 10.6km
Hospital da Condesa→Triacastela 15.4km
Triacastela→Samos 9.8km
Samos→Barbadelo 19.5km
Barbadelo→Portomarín 17.9km
Portomarín→Os Chacotes 24.0km
Os Chacotes→Melide 15.8km
Melide→Arzúa 14.0km
Arzúa→Pedrouzo 19.2km
Pedrouzo→Santiago de Compostela 20.0km



매거진의 이전글2do Camino de Santiago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