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
나는 늘 혼자였다.
아들을 귀하게 여기는 집안의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고 내가 아니었으면 남동생을 낳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자랐었다. 유일하게 딸이었던 나는 어려서부터 해가 지기 전에는 집에 들어와야 했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노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그런 아이였다.
결혼 3년 만에 태어난 오빠는 부모님에겐 그 자체로 귀한 아들이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일주일 간의 일상생활이 두꺼운 앨범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나는 사진관에서 찍은 백일 사진, 돌 사진 두 장이 전부라는 걸 알게 된 그날도 남몰래 숨어서 울어야 했다.
길고 긴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는 스스로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독립을 하면서 전세 보증금이 항상 1순위였던 나는, 살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
휴가 때마다, 연휴 때마다 해외로 여행 떠나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난 그때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못다 한 여행을 하기로 스스로와 굳게 약속했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돈을 모아야 되는 건지도 막연했다. 더 이상 쫓기듯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더 나은 보금자리를 찾지 않아도 될 정도의 전세 보증금이 생기는 그때가 적당하지 않을까? 예순 정도면 충분하겠는데 너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 쉰까지만 일을 하기로 나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때 가서 막상 일을 그만둘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수입의 대부분을 전세 보증금에 쏟아부었던 나는 기초 생활 수급자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며 그렇게 악착같이 버텼고 드디어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일해서 번 돈은 여행 경비로 쓸 수 있을 거라 잔뜩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유가 생기자 어머니가 갖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 사드렸고, 자취 선배로서 남동생에게 생활비를 나누어 주었고, 가족의 생일이며 가족 행사는 빠지지 않고 챙기며 살았다. 아버지가 칠순 잔치 대신 유럽으로 여행을 가겠다며 여행 경비 천만 원을 다음 달까지 달라고 요구하실 때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물론 여행을 다녀오시고는, 그래도 잔치는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해서 친척들을 모아놓고 칠순잔치도 해드렸다.
두 번째 직장에서 십 년 이상 근무하면서 생존을 위해 참아가며 일하다 생긴 스트레스는 날로 높아만 갔다. 이미 서른다섯이 넘어가면서부터 사실상 체력은 고갈되고 있었다. 몸은 여기저기 망가지고 있었고 그때마다 고쳐야 하다 보니 여행 경비가 거의 병원비로 지출되는 느낌이었다.
아직은 회사를 그만둘 때가 아님을 알기에 재직 중에 그동안 못다 한 여행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휴가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일만 했던 나는 그때부터 크고 작은 수술이 주기적인 행사가 되었고 그렇게 한 번씩 아플 때마다 퇴원 후엔 짧은 여행으로 보상해 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쉰의 나이도 너무 늦을 것 같았다. 갱년기라도 겪으면 여행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마흔이 적당할 것 같은데... 근데 너무 이르지 않을까? 주변의 시선이 걱정되었다.
십 년 넘게 나를 따라다니던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의 원인이나 알자 싶어 검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그때는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동네 의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고 대수롭지 않게 회사 근처의 고려대학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동안 들어왔던 '스트레스성 어쩌고 저쩌고...' 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쩌고 저쩌고...' 겠거니라고 생각했다. 여행 일정은 다가왔고 그래도 출국 전에 검사 결과는 확인하고 떠나기로 했다.
병원 예약일은 출국 전날이었다. 검사 결과보다도 당장 내일 떠나는 여행에 들떠 있었던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의사는 당장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석 달 동안 수술 스케줄이 꽉 차 있지만 일주일 후에 시간을 비워볼 테니 당장 입원해서 추가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선생님, 저 내일 스페인으로 출국해야 하는데... 요?"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지금 가면 큰일 난다며 의사는 겁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소에 따른 위약금도 걸렸고 무엇보다 첫 유럽 여행이었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해고를 각오하고 어렵게 받아낸 휴가를 입원으로 낭비할 순 없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결론은 쉬웠다.
"선생님, 저 죽더라도 가서 죽을래요."
그렇게 나는 예정대로 출국을 했다. 여행자 보험조차 가입하지 않고 떠났지만 계획된 일정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수술을 해야 한다면 원하는 병원에서 하고 싶어 새 단장을 마친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겼고 검사는 이어졌다. 어치피 수술은 해야 한단다. 그렇게 의사의 스케줄에 따라 석 달 후로 예약되었고 회사에는 면목이 없지만 다시 병가를 신청했다. 그동안 연차도 월차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휴가는 퇴근 후에, '내일부터 하계휴가'라는 통보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계획적인 휴가는커녕 눈치 보느라 써 본 적 없었던 십 년 치의 연월차를 뒤늦게 써대고 있었다.
'사장님, 저 자르려면 자르세요!'
회사에서 잘려도 할 수 없지만 이제는 잘려도 상관없었다. 겁도 없어졌고 이제라도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족 같은 분위기임을 내세운 회사였다.
'그래 가족이 아프다는데?!'
하지만 병가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 나는 길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날은 유난히 추운 겨울날이었다.
의식이 먼저 돌아왔던 나는 손가락 하나 꼼짝 할 수 없는 나를 발견했다. 외진 골목길이라 도움 청할 사람도 없었고 온몸이 마비되어 주머니 속의 폰은 꺼내지도 못한 채 차가운 바닥에 한참을 엎어져 있었다. 이러다가 먼저 얼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날은 나에게 정말 공포스러운 날이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던 나는 언제 죽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비참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그제야 주변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위로받고 싶을 때면 수고한 자신에게 립스틱을 선물한다던 백지연 앵커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엔, '명품백 정도는 선물할 능력이 있는 분이 고작 립스틱?' 그랬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자신을 위로해 주려고 하는 선물인데 만약 돈마저 없어서 못한다면 그게 더 슬플 것 같았다. '언제든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선물'이어야 했다.
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최악의 순간, 힘든 나에게 따뜻한 까페라떼 한 잔을 선물했다. 힘이 들거나 슬플 때는 아무리 돈이 없어도 나를 위해 커피전문점의 맛있는 커피 한 잔은 아끼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인들도 위로의 까페라떼 기프티콘을 슬쩍 보내주기도 했다.
'그래, 나를 위해 까페라떼 한 잔 사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여력만 있으면 그걸로 괜찮았다.
아직 마흔이 되기도 전이었지만 아파트 전세 보증금이 있으니 당분간 집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지출을 줄이면 가진 돈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중이란 있을 수도 없겠구나 깨달은 그날, 12년을 근무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살기로 했다.
내가 글을 쓰게 된다면 규칙적으로, 정기적으로 쓰고 싶었고 또한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여러 개의 매거진을 만들어 놓고도 고작 서너 개의 게시글이 등록된 브런치가 되기 싫었고 기분에 따라서 몇 달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는 매거진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지난 매거진은 이미 탈고를 한 상태로 첫 번째 글을 발행했었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글을 보면서 좋기도 했지만 그 끝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지루하기도 했었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글조차도 오타나 오기를 찾으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걸려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지만 발행 후에도 수정은 계속되었다.
그렇기에 아직 쓰지 않은 글을 하루 만에 발행하기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나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내키는 대로 글을 쓰는 게 아닌 최소한의 규칙을 만들어서 지키고 싶었다.
매주 같은 요일에 발행하자니 요일 하나를 선택하기가 힘들었고 그렇다고 한 달은 내게도 너무 긴 시간이었다.
'무슨 거창한 글을 쓰겠다고 한 달씩이나 정성을 쏟아?'
하소연하고 싶은 공간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런 규칙이 스스로를 옳아 매고 있었나 보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이번 매거진은 규칙 하나 정하기까지 몇 달이 걸렸고 내가 지킬 수 있는 기간은 열흘이었다. 그래서 매달 4일, 14일, 24일마다 매거진을 발행하기로 했다.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고 반드시 지키겠지만 그럼에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는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목숨 걸지 말자! 집착하지 말자!'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 보기로 했다.
If you really want to do something, you'll find a way.
If you don't, you'll find an exc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