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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n 24. 2023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70

망각 또한 신의 배려입니다.

내리막이라는 두려움이
사람을 치사하게 만든다.
내려가는 사람의 뒷모습이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걸까?




지난 몇 달 사이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살아남는 것보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더 힘겨운 세상에서 나는 기어이 살아야 할 이유를 매번 찾아내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확신만이 들었을 뿐이었다.

나에게는 자식이 없으니 내 재산을 남겨줄 곳이 필요했다. 아무리 계획한다고 해도 제로가 되는 그 순간에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른 체 그냥 명성만을 믿고 어딘가에 무작정 맡기는 건 싫었다. 투명하게 쓰일 곳에 전 재산을 남기고 싶었던 건, 내 마지막 꿈이었다.

그동안 많은 단체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면에 숨겨진 것들만 보게 되었다. 사후 기부였음에도 그들은 내가 죽기도 전에 모든 것을 뽑아내려는 듯이 나의 지갑을 열게 했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후원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른 척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들은 당연한 듯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또 다른 상처가 되었다. 나는 착한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착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남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후로는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탐색했다. 내가 먼저 어떠한 약속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단체를 알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직접 일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매체에서 알려지는 것으로도 알 수 없었고 여러 후기를 통해서도 알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좋은 의도로 활동하는 단체에서 설령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들은 애써 눈 감아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물론 친절이나 청결 같은 부분은 주관적인 경우가 많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체적인 것으로 판단했고 작은 부분은 설령 마음에 안 들어도 어느 정도는 참아주곤 했다. 나도 그랬었다.

도전이나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한 번씩 뜬금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에서는 얼마나 위생적으로 음식을 조리하는지 궁금했다. 그건 그곳에서 일해 보는 수밖에 없었으니 그곳에 취업해 볼까 하는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콜센터가 궁금해서 교육받으러 갔던 것처럼 말이다.

어찌 보면 나는 위장 취업한 셈이었다. 물론 절망의 늪에서 꺼내줄, 새로운 일이 필요한 순간에 우연히 찾아온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이미 마음속으로 찜해두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애정을 갖고 일하다 보면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순간이 올 것 같았다. 그래서 그곳이 더 잘 되길 바랐다. 마치 내 회사라도 되는 것인 양 열심히 일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만 하다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를 원한다고 했고 게다가 절실하다고 하니 단체장은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절실함이 물론 돈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싶지만 나는 상처를 받으면서도 버텼고 석 달간의 자원봉사를 거쳐 결국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장은 내가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어느 정치인의 개인적인 후원도 약속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마지막 면담에서 단체장은 내가 남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 보라고 했다. 직원이 다쳤다고 함부로 자르지 않으니 믿고 기다리라던 그 말을 나는 그 순간까지도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을 설득해 보라는 단체장의 말에, 나의 퇴사가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고 마음을 비워야만 했다. 어쩌면 그 순간에라도 나의 숨은 의도를 털어놓았더라면 단체장은 마음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지만 나는 결코 그런 걸 원한 것은 아니었다.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취급을 받았던 걸까 하고 후회도 많이 했지만 그 또한 신의 뜻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현실적인 고민이 남았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걸을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지금 상태에서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여행을, 떠날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작정한다면 비행기는 탈 수 있겠지만 이 다리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엄두가 나지 않았고 물론 배낭여행도 힘들었다. 제주도에서 꼭 하고 싶었던 한라산 등반도 힘들었다. 오름도 올레길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내리막에서는 여전히 불안하고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오래 걸으면 다리가 퉁퉁 붓고 아팠다. 그런데 나중에는 가능한 일일까? 온전한 다리로 돌아오긴 하는 걸까?

그럼에도 시간이 너무도 아까워서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다닐까 싶었지만 지금 이 마음으로 다니게 되면, 과연 눈에 들어오는 그 풍경들이 아름답게 보일까 싶었다. 지금은 제주도에 그 어떤 선입견도 남기고 싶지 않았으니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생존을 위해서만 외출을 했다. 마트에 가더라도 날씨가 좋고 컨디션이 좋을 때만 나갔다. 나갈 때는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는데 돌아올 때는 퉁퉁 붓고 무거워진 다리를 끌면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곤 며칠 동안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 과정이 두려워서 외출은 전보다 더 줄어들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집에 다녀올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동을 생각하니 그 또한 감당되지 않았다. 호텔을 떠나면 모든 짐을 정리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가끔씩 병원에도 다녀야 하고 무엇보다 수술을 한번 더 받아야 했다. 어차피 제주도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아플 때 굳이 돌아다녀야 하나 싶은 마음이 컸다.

호텔에 짐을 맡겨두고 다녀올까도 생각했지만 묵고 있는 이 호텔이 왠지 불안했다. 모든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슬그머니 사라지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단기 투숙객은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은 장기 투숙객만 받고 있었는데 심지어 이 호텔이 매물로 나온 모양이다.

어차피 지금은 호텔도, 다리도 불안하니 아무래도 이 여름은 지나고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어머니는 패키지여행이 힘들다며 자유여행에 익숙한 나에게 여행을 제안하곤 하셨다. 하지만 그마저도 단기 여행이어야 했고 비행시간이 짧아야 했으니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차량 여행을 제안하신 적이 있었다.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국내 맛집 투어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패키지 투어나 고급 호텔에 익숙하신 분이라 내가 생각하는 그런 여행은 적응하지도, 이해하려고도 하 않으셨다. 차박을 다녀온 지인들에게 좋은 얘기를 전해 들었으니 그 이면에서 감당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으셨다. 매사 긍정적인 어머니에게, 매사 부정적인 내가 미리 설명을 해드린다 한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이해가 어려웠고 나 또한 모든 것을 예상하기는 힘들었다. 때로는 부잣집 사모님처럼 아쉬울 것 없이, 때로는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원하는 차량 여행은 할 수 없지만 지금 제주도에 숙소가 있고 혼자보다 둘이서 가능한 일들을 함께 하고 싶어 어머니에게 다시 연락드렸다. 복귀하고 싶은데도 주변에서 말릴까 봐 그동안 괜찮다고만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요즘은 어떠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자 난데없이 어머니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러게 관절에 좋다는 건강식품을 사 먹으라고 했을 때, 사 먹었으면 지금쯤 다 나았을 거 아냐? 엄마 말은 죽어도 안 듣더니 잘한다! 수술받은 너네 아버지도 한 달 만에 낫던데 너는 젊은 애가 왜 아직 그러고 있어!"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하소연이라도 해보려던 마음은 이내 접었다. '그래, 이게 우리 가족이었지.' 여느 딸처럼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며 상사의 험담을 하는 그것을, 정말 해보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결국 하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그곳에서 잘려서 이제 시간이 많으니 같이 여행이나 다니자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결국 그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복직에 대해서 물어보셔서 이제 거기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빨리 다른 일을 구해보라고 하셨다.

"내가 돈 벌러 제주도에 온 건가요?"

그럼에도 다리가 다 나으면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여행 준비는 계속하고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어머니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젠 무엇을 위해 여행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추억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곳에 다간다고 예전과 같을까 싶다.

사진으로 남길 곳이라며 가볍게 지나쳤던 곳들이 지금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은 지금, 그때 주변을 좀 더 둘러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후회하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두 눈에만 담아 오기로 했다.




이번 매거진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제대로 정리해서, 제대로 기억하고, 제대로 털어내기 위해 시작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현실에 얽매여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억울한 일들이 있었으니 하소연이라도 할 통로가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결국 원망 가득한 글로 가득 차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잠시 멈추어야 할 것 같았다. 의미 없는 하소연도 싫어졌고, 누군가를 향한 원망에서도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

마지막 면담을 했던 그날, 나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들은 그 누구도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그런 말조차 나는 듣지 못했다. 오히려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 이제 그만두라고 했다. 비수처럼 꽂혔던 그 말이 지금까지도 귓가에 메아리쳤다. 기억하는 그 자체가 나에게 고통이었으니 그냥 잊으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합의서에 사인하란다. 내 의지로 그만둔 것이 아니었으니 그냥 원칙대로 퇴사 처리하길 바랐다. 애초에 난 부당해고니 뭐니 그런 싸움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으니 조용히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굳이 합의서를 받아야겠다고 하니, 나를 도대체 뭘로 보고 그렇게까지 하려는지 마음이 무너졌다. 나의 진심은 끝내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문득문득 마주하게 되는 현실에서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누구라도 자신을 붙잡아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서 있는 사람도 있다. 사는 게 지옥이라면 죽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 끝을 보며 달려왔다.

나에게는 종교가 있으니 교리에 어긋난 선택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때로는 종교를 외면하기도 했다. 도대체 신은 어디에 있는 걸까, 있기는 한 걸까 하고 의심했던 순간도 참 많았다. 그럼에도 최악의 순간에는 신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결코 믿음에서 우러나온 기도는 아니었다. 그 순간엔 무엇이라도 잡고 매달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악마가 와서 제안을 했더라도 내 영혼을 대가로 기꺼이 거래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떤 죽음이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저지르지 않는다면, 마지막 순간에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그 또한 존엄하게 죽을 권리라고 생각했다.

사고가 있었던 그날, 부러진 다리를 끌며 빗속을 걸었던 그 순간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을까?

행복하다는 말을 무심코 내뱉을 때마다 불행이 찾아왔다. 그래서 가끔은 행복해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에게 행복은 남들에게는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그 작은 행복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그동안 고생했다는 그 한마디면 행복하게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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