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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n 14. 2023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69

가끔은 내가 잘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일도 있다.

거짓의 기사단이 진실을 보호한다.




나쁜 일이 겹치고 겹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다. 그래서 대부분 무의미하게 잠을 잤다. 잠은 몸도 마음도 정신도 회복시켜 주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낮잠을 자는 일은 거의 없었다. 평소보다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으니 그마저도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갔을 뿐이다.

그럼에도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설득했다. 그들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란 것이 있었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적어도 내 마음이 편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러다 보면, 그들은 잘못이 없는데 그런 그들을 미워하고 있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힘든 나 자신을 더 괴롭힌 셈이었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잊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어느 순간엔 나도 별 거 아닌 일이라 생각하게 되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그대로 일상이 되기도 했.




이곳을 떠날까 하고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아직은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비행기를 탈 수 없었고 거동이 힘든 상태에서 먼 거리 이동은 무리였다. 버스 좌석에서도 간신히 버티는데 비행기에서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공항 외에서의 이동까지 고려하면 무모한 일이었다. 게다가 아직은 일반 화장실이 힘들었다. 얼마 전 박물관에 갔다가 불가피하게 일반 화장실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무릎이 굽혀지니 당연히 가능할 줄 알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 무릎을 굽혀야 했고 결국엔 눈물을 쏟고 나왔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병원을 옮기는 것도 힘들다. 아직 한 번의 수술을 남겨둔 시점에서 무작정 병원을 옮기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더라도 수술을 위해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야 했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으니 혼자라면 그나마 익숙한 이곳이 좀 더 나았다. 어딘가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 또한 생각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래서 일단은 치료가 모두 끝날 때까지는 제주에 기로 했다.

지난 십 년 동안 수없이 들었던, 젊은 사람이 놀고먹는다며 보내던 따가운 시선을 이제 다시 신경 써야 했지만 적어도 이제는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 잘 걷는 척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파도 애써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가끔은 다리가 아파서 거동조차 힘들었지만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만약 출근을 하고 있었다면 나는 아픈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나 자신까지도 속이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정말로 괜찮아질 때까지 모든 걸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 제주도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가까운 지인 외엔 따로 알리지 않았다. 서로의 안부를 물어본 지 오래된 그런 인연들에겐 내가 어디에 있든 그들에겐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사고가 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목발에 의지해 걸어 다닐 정도로는 회복되었지만 날씨는 변덕스럽고 무엇보다 갈 곳을 찾지 못해 삶이 무료해졌다. 누군가의 관심이 싫어서 한결같이 유지하던 카톡 프로필을 병원 사진으로 바꾸자 몇몇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런데 연락온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들도 모두 아팠다는 것이었다.

그중 한 명은 오랜 기간 정신과에 다니고 있었다. 우울감에 시달리는 것 같은데도 병원에 다니지 않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매번 따져 묻던 친구였는데 어느 날인가 자신이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끊임없이 나에게 병원에 가자고 설득했지만 오히려 나는, 전혀 나아지지 않는 그 친구를 보면서 네가 괜찮아지면 나도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아지지 않았고 여전히 충동적이고 여전히 근거 없이 자신만만해하면서 가끔은 사고를 치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처음 보는 의사를 신뢰하고 싶지 않았다. 몸을 치료하는 의사와 달리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에 대한 믿음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패를 거울 삼기엔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두드렸지만 오히려 많은 상담사에게 상처를 받았던 탓도 있었다. 의사든 상담사든 결국엔 그들도 사람이었다. 게다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던 졸피뎀을 아무렇지 않게 처방해 주고 있는 그 의사도 싫었고, 술과 함께 약을 먹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는 그 친구도 이해되지 않았다.

백수로 지내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내 사전에 불면증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새벽마다 전화해서 떠들어대는 바람에 잠을 방해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 그 전화를  받아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이상했다. 그래서 한 번은 낮에 전화 왔을 때 지난 통화 내용에 대해서 물어보니 자신이 새벽에 전화를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말을 전해 듣고서야 전화 통화목록을 확인했고 여러 차례 남겨져 있는 통화내역을 보고서야 그도 당황했다.

암울했던 시절에는,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오히려 나에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옛이야기를 나눌, 그때 그 시절의 친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거의 2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친구 중 하나였으니 처음엔 서로가 풀어놓는 옛날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어느 정도 노후를 대비하고 일을 그만둔 나와 달리 그 친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충동적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그저 자존심 문제였으니 나로선 이해되지 않았다. 직장인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 사직서를 던지고 싶은 유혹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에 부딪히면 차마 그러지 못하고 결국엔 버티게 된다. 그런데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결정을 할 수 있는지 나로선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더럽고 아니꼽고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자신이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을 보고 참고 참으면서 버티는 게 대부분의 직장 생활일 텐데 말이다.

그 친구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아님 흥미가 떨어져서인지 그렇게도 재미나던 옛날이야기가 더 이상 재미나지 않았다.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적을 하게 되었다.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되면서 어느덧 서로가 불편해졌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서로 연락이 뜸해졌다.

그 후론 일 년에 한 번쯤 안부를 물었을 뿐, 서로 교류 없이 지낸 지 십 년이 지났다. 그리고 두 달 전, 장례식장에서 인사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사이 두 차례나 극단적인 시도를 했었다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잠깐 마주쳤던 그때, 이미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순례길을 권했다. 그곳에 간다고 우울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걷는 동안에는 육체의 고통이 정신적 고통을 이기곤 했으니, 그 길에서라도 마음이 아프지 않길 바랐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며 돌아왔던 나조차도 다녀온 지 2년 후에 다시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똑같은 마음으로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두 번째는 예상했던 고통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그 길을 걷게 되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의 우울에서 벗어나기에 그 길은, 상당히 효과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갈 수 있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라며 애써 외면했다. 따로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비용과 용기 문제일 것 같았다. 영어를 못하는 것은 유럽인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계획만 잘 세우고 떠나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곳은 미리 준비하면 최소 경비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다. 당장 죽을 마당에 경비 백만 원이 아까운 걸까? 아니면 아끼면서 그 길을 걸을 자신이 없는 걸까? 나를 위해 쓰는 돈이 아까운 나조차도 그때만큼은 나를 위해 기꺼이 지불했었다. 그 길을 걷는 데 있어서 도움이 필요하면 내 경험과 정보를 기꺼이 알려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대로 외면해 버렸다. 당장 먹고살기 바쁜데 한가롭게 여행을 다닐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오래전 캄보디아에 봉사활동하러  때, 지인들과 그 경험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비로 모든 경비를 충당했다. 같이 가겠다는 이들에게는 항공료만 받고 일체의 경비를 내가 부담하기로 했다.

나는 그곳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있는 듯, 없는 듯 행동했지만 그 친구는 무언가를 자꾸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장기 봉사자로 추천까지 받았으니 행동에 더 조심스러웠고 그 친구를 말리기에 급급했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무언가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캄보디아를 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남들이랑 다른 길을 가면 남들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한단다. 그곳이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서로 같았지만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번엔 내가 무언가를 시도했는지도 모른다. 뒤늦게 도달하고 싶은 게 아니라 같이 도달하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앞섰던 것도 같다.

캄보디아에서는 힘든 일주일을 보내고 금요일 저녁 다 같이 모여서 보드게임을 하며 맥주 한 캔을 기울이던 그 시간이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기억할 추억이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곳에 온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더 힘든 건지도 모른다.




수술을 받은 지 아직 석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담당 교수는 그동안 한결같이 별거 아닌 수술이었다며 운동에 집중하면 곧 회복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지난번에는 이제 뼈가 다 붙었으니 거의 나은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달이면 잘 걸어 다닐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간신히 무릎이 굽혀졌다. 그 또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굽히는 수준에서 무릎이 굽혀지는 것이라 걸을 만큼 자연스럽게 굽혀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알고 보니 나는 뼈만 부러진 것이 아니었다. 뼈가 두 조각나면서 주변 조직을 찢어놓았다. 부러진 뼈가 다리 속에서 많이 이동해서 뼈 두 개를 핀으로 고정하는 방식이 아닌 뼈 전체를 8 자 형태로 고정하는 방식의 수술을 받았다. 십자인대도 끊어져서 인대를 잇는 수술도 함께 받아서 근육의 회복도 필요했다. 오른쪽 다리는 뼈와 지방과 피부만 남아있는 것처럼 보여서 근육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앙상했고 왼쪽 다리의 절반 두께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운동하면서 근육이 많이 돌아왔지만 아직은 보기에도 흉했다. 기아에 시달리는 이들의 다리처럼 관절이 뭉툭했다. 그래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 잘 걷지 못한다고 해서 조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담당 교수는 이번에도 여전히 목발을 짚고 진료실에 들어온 나를 보더니, 이제는 그냥 걸을 수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 순간 나는 당황했다.

'지금쯤이면 제대로 걸어야 정상인 거구나.'

그날은 비가 왔다. 나는 여전히 목발 없이는 잘 걷지 못했고 그래서 목발을 사용하려면 우산을 쓸 수 없었다. 지난번처럼 예약일을 지키지 않아서 겪게 되는 그 과정이 싫어서 비를 맞고 병원에 갔다. 그나마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 무사히 병원에 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교수는 목발을 짚고 온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교수의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지금 혼자서 걸어야 하는 게 정상인 상황인 거냐고 되물었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교수가 사고 당시의 사진을 띄워놓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 뼈만 부러진 것이 아니었군요. 그때 아주 심각한 상태였군요"라고 말했다. 수많은 환자를 대하면서 교수도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뼈 수술을 했으니 뼈가 얼마나 잘 붙었는지만 체크한 거라며 저 상태에서는,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정정해 주었다.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뼈 전체를 감싸놓은 금속의 매듭 부분이 피부를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부어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뼈와 주변 조직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공간이 생긴 건지 끝부분이 피부를 찔렀고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게다가 무릎을 굽힐 때마다 피부 속을 긁어댔지만 이 굽히기 운동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야 했다. 이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이곳저곳에 들러 여러 검사를 받고 오랜 대기시간을 거치다 보면 다리는 부어있기 마련이었다. 진료실에 들어갈 때쯤이면 적당하게 부어올라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잘 보이지 않았으니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은 복직을 위해 몸도 마음도 서둘렀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걷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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