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ía de la Plata #1

Prolog

by 안녕
세 번째
산티아고 가는 길에 있었던
나의 기록 2025


그냥 죽기는 너무 억울합니다.

어느덧 인간 수명의 절반을 살았다. 내가 지나온 시간은 유독 길었으니, 그만큼 남아있는 시간 또한 길게만 느껴졌다. 여전히 그 끝은 보이지 않았고,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늘 습관처럼 내 수명을 가지고 기도하곤 했다. 아픈 사람을 보면 내가 살아갈 시간이 줄어도 좋으니 그들이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나의 시간을 나누어 주어도 좋다고 끊임없이 기도했다.

까미노 도중, 아프게 태어났다는 조카의 소식을 듣고 습관처럼 그날도 그렇게 기도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기도했다. 하지만 스페인 절벽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타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가치가 달랐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의 생명처럼 나의 시간도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나의 시간과 타인의 시간은 결코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다. 나에게 항상 불친절했던 신은, 나의 마지막 자존감마저 무너뜨렸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그 존재로부터 오랫동안 숨어 지내왔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꿈꾸던 여행은 잊혔다. 제2의 인생을 찾아 떠난 제주도에서 무릎뼈가 두 동강이 나버렸다. 재활 과정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상생활조차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배낭여행은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다.

나의 50대를 생각하고 또 60대를 생각하니 그토록 바라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되었다.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간은 기껏 십 년 남짓, 그제야 그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이러다 언제 병들어 주저앉을지 모른다. 무조건 떠나야 했다.

어머니에게는 늘, 자식에게 남겨줄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드시며 살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그러질 못했다.

나이 드신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은 짧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은 너무나 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후를 위해, 더 아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써도 될 것 같았다. 습관처럼 아끼고 살았던 지난 시간을, 나도 이제는 보상받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독 순례길을 선택하는 것은 신앙심이 깊어서가 아니었다. 걷고 싶어서였고, 내 형편에 맞는 장기여행이 가능해서였다.

잦은 출국이 힘들어진 나로서는, 한 번의 여행으로 길게 다녀올 곳이 필요했다.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더 좋겠다 싶었다.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신청했고 2024년 연말에 연락이 왔다. 2025년 여름에 떠날 봉사자를 모집한다는데, 2주간 다녀오는데 드는 비용이 교통비만 700만 원이었다. 새로운 곳을 알게 되면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는데, 그곳은 단체로만 방문해야 하는 곳이었다. 고작 2주간의 경험으로 끝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단순히 경험으로 끝날 거라면 그 돈으로 차라리 숙박비가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이탈리아로 가기로 했다.

장기간 여행하길 원했고, 숙소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다가, 그래서 조금은 낯선 비아 프란치제나를 걷기로 했다. 로마에 가본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떴다.

하지만 체류 가능한 90일로는 모든 구간을 다 걸을 수 없었다. 영국 구간을 제외하고 또 프랑스 구간을 제외했다. 그나마 스위스 구간부터 가능했지만 숙소, 물가 등을 감당할 수 없어서 텐트를 가지고 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텐트를 들고는 배낭여행을 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생각은 많아지고, 걱정은 늘어서, 여행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떠나기 위해 이탈리아 구간만 걷기로 하고, 일정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스페인 순례길에 비하면 비아 프란치제나 숙소 비용은 편차가 심했고, 어떤 곳에서는 도미토리룸 베드 하나에 하루 십만 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고환율도 한몫했다. 숙소가 있는 곳으로 코스가 나누어진 분위기라 하루에 걸어야 할 거리가 터무니없이 긴 곳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루 코스를 이틀로 나누면 호텔에서 묵어야 했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부담이 되었다. 기부제로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주변의 시세를 고려해서 지불하려면 90일 숙박비에 최소 700만 원이 들었다.

스페인 순례길의 숙소는 선착순이지만, 이탈리아 순례길은 대부분 예약으로만 받는단다. 주인으로서는 하루 종일 대기하는 불필요함을 없애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이탈리어만 가능한 숙소 주인에게 전화로 예약하기에는, 외국인인 나로서는 정말 힘든 모험이었다.

스페인어를 못해도, 예약을 따로 받지 않아서 여권과 끄레덴시알만 내밀면 묵을 수 있는 스페인 순례길과 달리 이탈리아 순례길은, 어찌 보면 이탈리어가 가능한 자국민에게 친절한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어가 가능한 여행 메이트를 만나서 예약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지만 친절한 메이트를 만난다는 보장은 없었다. 메시지로 예약 가능한 곳도 있고 인터넷으로 예약 가능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전화로만 예약을 받는다고 했다.

숙소 예약이 힘들어서, 프란체스코의 길을 걷기로 했다. 숙소는 수도원이 대부분이라 숙박비가 비싸도 그냥 기부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숙소 비용은 각오했지만 예약이란 걸림돌을 넘어서기 힘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숙소 예약이 현실이 되니 그게 그렇게도 두려워졌다. 나를 설득하고 설득했지만 그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그러다 보니 다 포기하고 싶어졌다.

스페인 순례길처럼 막상 가보면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설득했다. 스페인 순례길도 처음에는 무서웠다.

몇 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도보 여행이라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다리가 버텨줄지도 알 수 없었고, 이제는 문제가 생겨도 예전처럼 버틸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중도 포기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중도 포기할 경우, 숙박비는 더 큰 부담이 되었다.

중도 포기를 감안하니, 변수가 많은 이탈리아 여행은 역시 무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몰두하던 이탈리아 배낭여행은 떠나갔다.

그냥 스페인으로 가자. 숙소 불안은 있지만 적어도 예약이 필수는 아니었다.




그나마 익숙한 스페인으로 계획을 변경하니 중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도, 부담이 없어서 한결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코로나를 거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모른다.

처음 떠난다는 마음으로 스페인 프랑스길을 선택했다. 걷고 싶어서 스페인으로 가려고 했는데 왠지 익숙한 길이라 편한 길로만 걸을 것 같았다. 아는 길이라 무덤덤해졌다. 심지어 힘든 길은 피해 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구간에서 멈추어졌다.

사고가 있었던 그날이 떠올랐고, 꿈같던 그 일이 또렷하게 생각났다. 그 길을 걷는 게 두려웠다. 아스또르가 이후는 도저히 걸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또 시간은 가고 있었다.

가지 말까? 가면 뭐 해? 시간이 없잖아!




시간이 없다는 그 말은 참 슬픈 말이었다.

새로운 길을 걷는 게 낫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길, 이번에는 새로운 길이어야 될 것 같았다.

숙소를 예약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 불안했고, 프랑스길에 비해 숙박비가 비싸서 포기했던 은의 길이 생각났다.

은의 길은 나에게 새로운 길이었다. 이탈리아의 비싼 숙박비용을 각오해서인지 은의 길 비용이 한결 편하게 느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하루에 십만 원도 각오했는데, 스페인에서 하루 오만 원 정도야.

비교 기준이 생기니 계획은 순조로웠다. 몇 달간의 이탈리아 계획 경험이 헛수고는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이번에는 Via de la Plata, 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런데 여권이 만료되기 6개월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