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ón→San Martín del Camino
Day 29.
Wednesday, June 24
과일을 많이 먹으면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되는데 덕분에 열은 많이 내렸다. 어젯밤 22시에는 소란함에 잠이 깼고 자정에는 윗 침대의 비명소리에 깼었다. 새벽 2시에도 그녀는 비명을 질러대서 잠을 깼다. 그때마다 난 화장실을 갔으니 나의 움직임에 그녀 또한 신경이 쓰였을 것 같다.
5시쯤 분주한 사람들의 인기척에 잠이 깨서 장을 비우는데 설사가 시작되었다. 좀 진정되는 듯하더니 6시쯤 또 설사가 이어져서 불안해졌다.
모두가 떠나고 난 뒤 마지막으로 짐을 챙겨들고 나가려는데 누군가 놓고 간 까만 봉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바나나 2, 사과, 보카디요가 들어있었는데 무거워서 두고 갔다기보다는 잊어버리고 나간 것 같았다. 시간이 꽤 되었을 테니 그 누군가는 이미 멀리 떠났겠지. 나도 요거트와 바게트를 먹고 출발했다.
해가 떠오르고 있는 레온 골목에는 밤새고 놀았을 법한 몰골의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스페인에선 이러는 게 일상인가 보다 하며 지나가는데, 남녀로 구성된 대여섯 명의 한 무리가 내 앞을 막아섰다. 얼핏 봐도 십 대였다. 그들 중, 여자애 하나가 비웃으며 뭐라고 하기 시작했고, 남자들은 뒤에서 우릴 에워싸고 웃고 있었다. 하다 하다 먼 타국에서 스페인 불량배한테 조롱을 당하다니 순간 아찔해졌다. 그것도 아침 7시에 말이다. 가뜩이나 몸은 아프고, 밤새 잠을 못 자서 피곤했는데 이런 일까지 당하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난 이런 돌발 상황에는 전혀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매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생각해 두었다가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생각해 두곤 했다. 하지만 예상해 두었던 수많은 최악의 상황 중에도 이런 상황은 없었다.
요즘 애들 무섭다더니 스페인도 마찬가지였다. 까미노를 권장하는 나라에서 순례자를 상대로 이런 일은 결코 생각하지도 못했고 들은 적도 없었다. 내 몰골은 누가 봐도 순례자의 모습이었다. 이방인이라서 그런 걸까? 가끔 우리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내가 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던지고 대응해 보는 상상을 잠깐 해보기는 했지만, 현실에서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꼼짝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과 문제가 생겨서 경찰서에 가는 일만은 막아야 했다. 말없이 쳐다만 보고 있으니 10여 분가량 그렇게 나를 가지고 놀다가 이내 재미가 없어진 건지 그들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골목을 나서는데 광장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을 보자 그제야 안도되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잊자. 아무 일 없었던 거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하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레온 대성당 앞이었다. 또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여기저기 청소차가 보이더니 어느새 어수선해졌다. 화살표는 찾을 수 없었고 배낭을 멘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광장을 헤매다 청소하시는 분에게 길을 물어 드디어 그곳을 벗어났다. 나에게 레온은 왠지 불편한 곳이 되었다.
레온을 빠져나오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레온에서는 산 마르띤 델 까미노 루트와 비야르 데 마사리페 루트가 있다.
산 마르띤 델 까미노 루트로 걷는다면 5km가 더 길지만 길은 평탄하고 단조로워 어려움이 없다. 순례자는 도시 주위에 급하게 만들어진 주택가와 창고, 향기로운 포도주 냄새가 날 것 같은 포도주 저장고를 지나쳐 좁은 농로를 지나게 된다. 레온까지 꾸준하게 걸어온 순례자라면 지난번 경험했던 평원을 기대하게 되지만 라 비르헨 델 까미노까지는 참고 견뎌야 한다.
라 비르헨 델 까미노는 1505년 성모가 발현한 곳으로 새소리와 더불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이곳에서 까미노를 따라서 걷다 보면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을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 까미노는 오른쪽과 왼쪽의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므로 어느 쪽으로 갈지 결정해야 한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오래되고 한적한 까미노를 걸어서 가까운 비야르 데 마사리페까지 걷고 여기에서 하루를 마감할 수도 있다. 반면에 정면으로 이어지는 까미노를 따라서 N-120 도로와 나란히 걷다 보면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를 거쳐 산 마르띤 델 까미노에 도착할 수도 있다.
레온을 빠져나오기 위해서 찬란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단지를 이루는 산 마르꼬스 단지를 지나야 한다. 공립 알베르게에 머문 순례자라면 대성당과 레알 바실리카 산 이시도르를 지나면 어렵지 않게 산 마르꼬스에 도착할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베르네스가 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면 복잡한 시가지가 교통 체증과 함께 끄루세로 지구까지 이어진다. 까미노는 기찻길과 나란히 지나가며 커다란 슈퍼마켓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 십자가 광장에 다다르면 기찻길이 멀어진다. 이 광장을 지나가면 레온의 위성도시인 뜨로바호 델 까미노에 도착하게 된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던 Trobajo del Camino (840M)는 20세기 중반부터 레온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레온 근교의 베드타운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까미노를 걸으며 보아도 레온과 뜨로바호 델 까미노는 마치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도시가 바뀐다는 이정표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중세에도 이 마을은 로마 시대부터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도시의 중심에는 레온에서 활동하는 군대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까미노 도시답게 산띠아고에게 봉헌된 성당과 산티아고 상, 산티아고의 십자가와 조개껍질로 장식된 성당 등이 있다.
Ermita del Apostol Santiago
사도 산티아고 성당은 18세기에 만들어진 심플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내부에는 이슬람인들을 물리치는 산티아고 상이 있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Bautista
세례자 요한 교구 성당은 18세기의 건축되었으며 성당의 파사드에는 산티아고 성인의 십자가와 조가비로 장식되어 있다.
레온의 베드타운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뜨로바호 델 까미노는 항상 교통량이 많다. N-120 도로를 건너면 오래된 포도주 저장고와 함께 불규칙적인 주택들과 공장지대가 어지럽게 보인다. 이 부근에서는 노란색 화살표를 놓치기 쉽다. 창고 사이로 지나가는 길을 찬찬히 살펴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한다. 포도주 저장고를 지나면 십자가상이 보이고 여기에서 N-120 도로를 왼쪽으로 두고 나란히 걸으면 된다. 순례자는 주유소를 지나 성모가 발현하였다는 라 비르헨 델 까미노에 도착할 수 있다.
9시 20분쯤 1505년 성모가 발현한 라 비르헨 델 까미노에 도착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던 La Virgen del Camino (906M)는 새로 닦은 도로 사이에 놓여 있는 조용한 마을이지만 까미노의 성모에게 봉헌된 까미노 성모 성당이 있다. 까미노의 성모는 가족 문제, 순례에 대한 문제와 여러 기도를 들어준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해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이 마을을 찾는다.
Santuario de la Virgen del Camino
까미노의 성모 성당은 수사였던 프란시스꼬 꼬에요의 작품으로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조각가 호세 마리아 수비락이 청동으로 만든 열세 개의 거대한 조각이 있는데 이 조각들은 성모 마리아와 열두 사도를 의미한다. 내부에는 성모의 발현으로 제작된 작가 미상의 16세기 성모상이 있다.
성모 발현
1505년 7월 2일, 엘리사벳의 성모 방문 기념 축제에 벨리야 데 라 레이나의 목동 알바르 시몬 페르난데스가 가축을 돌보던 중 성모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성모에게 다가갔고 성모는 그에게 말했다. “도시로 가서 주교에게 알리고 이곳에 내 조각상을 보관하기 위한 성전을 세우도록 하라. 그러면 내 아들이 이 땅의 번영을 위해 이곳에 나타날 것이다.” 목동이 놀라서 대답했다. “성모님, 어떻게 하면 절 보낸 분이 성모님이라는 것을 그들이 믿겠습니까?” 그러자 성모는 목동의 새총과 작은 돌을 집어 들고 돌을 멀리 쏘아 보낸 후 말했다. “주교와 함께 돌아오면 이 돌이 거대한 바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돌이 떨어진 자리가 나와 내 아들이 나의 조각상을 보관하도록 결정한 곳이다.” 목동이 주교에게 가서 사실을 말하고 주교와 함께 이곳으로 돌아오자 모든 것이 성모가 예언한 대로 일어났다. 주교는 이곳에 Ermita del Humilladero를 지었다. 이 성당은 1961년엔 현대식 성당으로 재건축되어 까미노의 성모 성당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또 다른 성모의 기적
까미노의 성모가 일으킨 기적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1522년에 일어난 것이다. 신앙심 깊은 까스띠야 출신의 노예가 있었다. 그의 이슬람교도 주인은 워낙 의심이 많아서 그가 도망갈까 의심해 밤에도 노예를 사슬에 묶어 나무 우리에 가두었다. 그러고도 믿지 못해 주인은 우리 위에 올라가서 잠을 잤다. 노예는 매일 같이 성모에게 자신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어느 날 밤, 나무 우리가 까미노의 성모 성당까지 날아가 노예와 주인을 그 앞에 내려놓았다. 노예와 주인은 기적에 감동해서 여생을 성모를 섬기며 살기로 결정했다. 오늘날에도 이 성당에는 기적의 일부였던 사슬과 나무 우리가 남아 있다.
라 비르헨 델 까미노에 들어오면 각종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N-120 도로 왼쪽에 있는 라빠스 거리에는 샘터와 공동묘지가 있다. 라 비르헨 델 까미노에 도착한 순례자는 각자의 체력과 상황에 맞추어서 두 개의 까미노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왼쪽으로 가는 까미노는 비야르 데 마사리페 루트로 레온에서부터 22km에 이른다. 이 루트를 선택하면 다음 일정에서는 아스또르가까지 29km를 걸어야 한다. 육체적으로 힘들지라도 이 루트는 도로와 인접해 걷는 오른쪽 까미노보다 훨씬 조용하며 지루하지 않다.
정면으로 향하는 까미노는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과 산 미구엘 델 까미노,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를 거쳐 산 마르띤 델 까미노에 이르는 25km의 루트다.
라 비르헨 델 까미노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출구에 있는 마지막 신호등에서 왼쪽의 인도를 따라 자동차 전용도로와 평행하게 걸으면 어렵지 않게 뿌엔떼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에 이르는 두 가지 까미노가 있음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비야르 데 마사리페 루트,
라 비르헨 델 까미노 출구의 표지판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까미노를 따라가다 보면 까미노 사인은 A-66 도로의 밑을 지나는 터널과 철길 위로 이어진다. 비야르 데 마사리페 루트의 첫 번째 마을인 프레스노 델 까미노까지는 3km 정도다.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인상적인 가구점에 도착하면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마을을 나서면 얼마 되지 않아서 주위가 평원으로 변하며 좁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까미노를 따라가게 된다. 순례자가 철길을 지나면 온시나 데 라 발돈시나와 만나게 된다. 이어지는 길은 대도시의 소음과 어수선함에 지친 순례자를 위로해 준다. 또한 종종 지나치는 시원한 떡갈나무의 그늘은 거대한 평야를 통해 길게 늘어져 있다. 이렇게 걷다 보면 왼편으로 포도주 저장고를 지나면서 초사스 데 아바호에 도착한다. 마을을 빠져나와 높은 송전탑을 지나면 다시 주위는 그림과 같이 고요해지며 비야르 데 마사리페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는 까미노를 기리는 벽화가 세워져 있으며 마을 왼쪽으로 알베르게가 있다.
일반적으로 걷게 되는 산 마르띤 델 까미노 루트는 자동차 전용도로와 나란히 걷기 때문에 자동차의 소음이 심할 것이라고 이 길을 외면하는 이들이 많지만 레온과 아스또르가를 이어주는 차도가 완성되어 이 도로에는 교통량이 많지 않다. N-120 도로와 나란히 걷다가 왼쪽으로 전진하여 A-66 도로의 밑을 지나는 터널을 지나면 커다란 안테나가 있는 곳까지 평범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이어서 왼쪽에 프레스노 델 까미노로 이어지는 좁은 샛길이 보인다. 까미노는 다시 N-120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며 물푸레나무가 이름다운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에 도착한다.
11시, 10세기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인구 200명의 작은 마을인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에 도착했다.
Valverde de la Virgen 물푸레나무와의 주변은 우아한 물푸레나무와 상큼한 초원이 가득하다. 이 마을의 가옥들은 아담한 성당 곁에 모여 있고 성당의 종탑에는 여름마다 황새 부부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른다. 원래의 마을 이름은 Valverde del Camino 였으나 Valverde de la Virgen으로 바뀌었다.
Iglesia Parroquial de Santa Engrácia
산따 엔그라시아 교구 성당의 종탑에는 종지기 황새의 둥지가 있다.
마을의 끝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까미노를 따라갔다. 30분쯤 지나 산 미겔 델 까미노에 도착했다.
San Miguel del Camino (897M)는 인구가 채 3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바르, 레스토랑, 빵 가게가 있고 화려한 성당과 수도원이 있어 순례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화려한 성당은 천상의 군대를 이끄는 대천사 미카엘의 엄격한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활발한 느낌을 준다. 또한 마누엘 알론소 데 낀따니야의 작품으로 둥근돌과 농기구를 사용하여 제작된 산띠아고의 십자가가 눈에 띈다. 십자가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네 개의 철 격자로 만들어졌다. 까미노를 따라 마을에서 벗어나면 호텔과 현대적인 분수가 있는 휴양지를 만날 수 있다.
Iglesia Parroquial del Arcangel San Miguel
마을의 중심인 대천사 산 미겔 교구 성당에는 얼마 전까지 산띠아고를 묘사한 15세기 고딕 양식의 조각상이 있었으나 현재는 레온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어느 집에서 세요가 놓인 테이블을 마련해 두었는데 의자에 앉아 쉬면서 바나나를 먹고 있으니 아저씨가 나와서 비스킷을 건네준다. 그라시아스! 산 미겔 델 까미노에는 순례자를 위한 바르와 향로로 구운 빵을 파는 가게가 있다.
마을을 나와서 걷다 보면 왼쪽으로 아름다운 분수대를 가지고 있는 호텔을 지나게 된다. 2개의 주유소 이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없이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알폰소 1세와 그의 아내 도냐 우라까가 전쟁을 벌였다고 알려져 있는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알베르게를 지나 까미노를 따라 N-120 도로를 건너야 한다.
14시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에 도착했다.
Villadangos del Páramo (895M)는 La Matanza 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드넓은 초원 위에 세워졌다. 이 지역에서는 벽돌과 흙으로 지은 전통가옥, 돌기둥 위를 짚으로 덮은 집을 볼 수 있다. 기차역 부근은 전투왕 알폰소 1세와 그의 아내 도냐 우라까가 1111년경에 벌인 전투가 일어난 장소다. 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산띠아고 성당의 현관에 새겨져 있는 전투 장면은 산띠아고 성인이 나타났던 끌라비호 전투가 아니라 이 부부 사이의 전투를 묘사한 것이다. 한때 번성했던 이 마을은 레온의 급속한 성장에 따른 도시화로 인구가 감소되어 퇴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
산띠아고 교구 성당에는 목재로 만든 성당의 처마와 생생한 현관의 전투 조각이 있다. 성당 내부에는 흰 말을 타고 달리며 무슬림을 죽이는 산띠아고와 그의 발밑에 쓰러져 있는 무슬림과 그들의 군기를 볼 수 있다.
전쟁이 된 부부싸움
몇 백 년 동안 계속된 기독교 왕국 사이의 싸움은 많은 손실을 불러일으켰다. 특이한 것은 전쟁의 당사자인 두 사람이 부부였으며 나바라의 산초 엘 마요르의 직계 후손이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정략결혼은 이베리아 반도가 하나의 기독교 왕국으로 통일될 수 있다는 야심 찬 계획의 일부였다. 귀족과 성직자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여왕과 부르주아의 지지를 받은 왕이 까스띠야에서 전쟁을 벌이면서 야심 찬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이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 3년 후 모든 결혼은 무효화되었다.
앞으로 한 시간 반을 더 걸어야 했지만 길이 힘든 것도 아니고 날씨가 힘든 것도 아니었는데 뭔가 나를 계속 힘들게 했다. 기분이 다운되어 멍하니 걷다 보니 아무 생각이 나진 않았지만 가끔씩 정신을 차리면 우울해졌다.
마을의 중심을 통과하여 작은 운하를 건너면 언덕 위에 샘터가 있고 노란 화살표를 따라서 다시 N-120 도로를 건넌다. 그리고 운하와 도로 사이로 이어진 직선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산 마르띤 델 까미노에 도착한다.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를 지나 거대한 막대 모양의 저수조가 나타나면 San Martín del Camino (866M)가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이 마을이 있는 엘 빠라모 지역은 레온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넓은 밀밭 사이사이로 양 떼가 지나가는 평화로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에는 순례자를 위한 서비스 시설이 갖춰져 있고 황새가 둥지를 틀고 사는 성당 근처에 주거지역이 있다.
마을 근처에는 검정 버드나무 숲이 있는데 이곳은 갈가마귀, 까마귀 등 조류들이 둥지를 틀기 좋은 이상적인 서식지로 손꼽힌다. 이 지역은 스페인에서 새들이 가장 많이 둥지를 튼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 있는 레알 거리에는 예전에 가난한 순례자를 정성껏 돌봐주는 병원이 있었는데 아픈 순례자로 넘쳐났던 이 병원에서는 순례자에게 침대를 배분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었다고 한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Martín
산 마르띤 교구 성당은 현대와 바로크 시대의 성상이 함께 있는 현대적인 성당이다.
15시 30분에서야 산마르틴 델 까미노에 도착했다. 차도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걸어오니 길은 편했지만 나에겐 멀게만 느껴진 하루였다. 적응이 되어 발걸음이 가벼워졌다고는 하나 오래 걸으니 힘들긴 했다. 비야당고스 델 까미노에서 멈추는 게 낫지 않았나 싶은 맘도 들었다. 그래도 푹푹 찌는 열기는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니 무얼 해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오면서 사립 알베르게에 머물고 있는 H와 J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나쳐 공립 알베르게로 왔다.
공립 알베르게 한편에 따로 있는 리셉시온으로 들어가니 띠엔다를 겸하고 있었는데 등록을 하면서 둘러보니 5€짜리 스펀지 슬리퍼를 팔고 있었다. 아직 여유가 있어서 침대는 선택할 수 있었으나 강당 같은 큰 공간에 침대가 있는데 뭔가 어두침침한 게 마치 감옥 같았다.
씻고 주방으로 가니 취사는 가능한데 이곳 띠엔다에서 산 식재료로만 조리가 가능하다는 설명에, 먼저 온 사람들은 포기하고 나갔다. 그런 법이 어디 있지? 난 꿋꿋이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는데 관심 갖는 이는 없었다.
뒤늦게 빨래를 해서 널었고 마당에 앉아서 사과를 먹었다. H와 J가 파스타면이 필요하다고 찾아와서 남은 것을 챙겨 보냈다.
빨래를 걷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벌써 8시가 넘었다. 다들 이미 취침 모드라 조용해서 좋았는데 뒤늦게 들어온 뚱보 아저씨가 초저녁부터 자는데 엄청 심한 코골이었다. 발뒤꿈치 상처가 덧나는지 계속 욱신거린다.
León→San Martín del Camino 25.8km
○León (844M)
●Trobajo del Camino (840M) 3.9km
-Ermita del Apostol Santiago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Bautista
●La Virgen del Camino (906M) 3.7km
-Santuario de la Virgen del Camino
■Fresno del Camino (877M) 2.5km
■Oncina de la Valdoncina (871M) 0.5km
■Chozas de Abajo (882M) 6.0km
■Villar de Mazarife (874M) 4.1km
■Villavante (839M) 7.8km
●Valverde de la Virgen (892M) 4.6km
-Iglesia Parroquial de Santa Engrácia
●San Miguel del Camino (897M) 1.4km
-Iglesia Parroquial del Arcangel San Miguel
●Villadangos del Páramo (895M) 7.7km
-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
●San Martín del Camino (866M) 4.5km
-Iglesia Parroquial de San Martín
284.5km/775.0km
Albergue Municipal de San Martín del Camino -5.00€
바게트, 요거트, 바나나, 비스킷
복숭아, 체리, 보카디요, 탄산수, 견과류
파스타, 초코 비스킷, 사과
Cocina (외부 식재료 반입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