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ía de la Plata #97

Hospitalera en Madrid

by 안녕
Miércoles, 11 de Junio


20°~27°
비가 오고 추워졌다. 잠은 깼지만 계속 누워있었다. 오늘은 조용해서 다들 일찍 나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접시 선물은 포기되지 않아 오늘까지도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오니 다음을 기약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번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9시 마지막 청소를 시작했다. 화장실 바닥 청소를 남겨두고 걸레를 빨려고 주방에 들어가는데 수에리가 또 막아선다. 자신이 닦은 바닥의 물기가 다 마를 때까지 들어오지 말란다. 마지막인데 얼굴 붉힐 필요가 있을까 싶어 조용히 나왔다.

화장실 바닥 청소를 마저 끝냈다. 샤워가방을 가지러 방으로 갔는데 옷걸이에 걸어둔 수건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았는데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커튼에 휩쓸려 떨어진 모양인데 언제 떨어졌을까?

나는 수에리가 커튼을 열어두면 열린 채로, 닫아두면 닫은 채로 내버려 두었다. 수에리는 침대에서 쉴 때는 커튼을 닫았으니 자기 전엔 항상 커튼을 닫던 수에리가 어젯밤에는 웬일인지 커튼에 손대지 않았다.

광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 터라 침대를 가리는 커튼은 필수였다. 그녀는 밤에도 창문을 열고 잤으니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커튼을 항상 치고 잤는데 어젯밤에는 이상하다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수건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샤워하고 화장실 바닥 청소를 마무리하고 나왔다. 이곳에서의 청소가 끝났다. 빗을 가지러 방에 가니 수에리가 침대를 정리하고 있는데 비켜주질 않아서 미안하다며 꺼내왔다.




머리를 빗으러 광장에 나갔다. 수도원 건물에는 알베르게가 있지만 어린이집도 있다. 특정일에는 아이들이 강당에서 뛰어노는 소리에 알베르게가 시끄럽기도 했다.

광장에서 보니 건물 2층에 어린아이들이 창문에 매달려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단체복을 입은 아이들이 너무나 귀여웠다.




수에리가 노려 보고 지나간다. 마주칠 때마다,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무서워서 애써 외면했지만 그럴수록 더 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떠나는 날이 가까워지기도 했고, 반복되는 일에 익숙해서인지, 왜 그러냐고 따지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며 지나쳤다.

이번에 내가 그녀와 함께 한 달을 같이 지내야 했다면, 아마도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참아주는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열심히 하면 무언가 억울한 순간이 오더라.

들어와서 수건을 창가에 널려고 보니 발이 젖어서 발 한쪽만 닦고 소파에 올라섰다.

하지만 푹신한 소파에 중심을 잃으면서 넘어졌고 벽에 무릎을 찧고 말았다. 긴바지를 입고 있었음에도 수술을 받은 오른쪽 무릎에 상처가 났고 피가 흘렀다.

지금 벌 받는 건가? 내가 잘못한 걸까?




바게트 두 조각을 구웠다. 고다 치즈 두장도 녹였다. 하나만 먹어도 되는데 갈증이 나서 커피를 마시다 보니 다 먹어치웠다.

미셀에게 메시지가 왔는데 파일 하나가 와서 뭔가 했더니 알베르게 오픈 때의 사진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고 공감할 줄을 몰라 난감했다.

청소가 끝나자 둘은 나가고 알베르게에 혼자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흐리다.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에 쌀쌀함을 느꼈다.

짐을 쌀까 했지만 그마저도 귀찮다. 선물도 귀찮다. 과연 고마워할까? 고민이 더해지니 의욕은 사라졌다.

선물을 줄 때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하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받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나와 다를 수도 있으니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내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굳이 내 돈 써가며 욕먹는 건 기분 좋은 일도 아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수납장에서 배낭을 꺼냈다. 선반에 널브러져 있는 짐도 치우고 선반도 원래대로 바로잡았다.

신발주머니도 꺼내고, 둘 곳이 없어서 침대에 두었던 옷보따리도 정리했다.

외투는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버리고 갈까 싶었지만 주머니가 아쉬워서 챙겼다.

좋은 사진을 남겼던 선글라스, 다리가 부러져도 들고 왔는데 꺼내지도 못했다. 다음에는 케이스에 넣어서 오든지 멀쩡한 선글라스를 챙겨 오자. 다음이 있을까?




14시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주니 수에리가 문을 열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녀가 다쳐서 들어왔을 때 이후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내가 만들어 둔 얼음을 꺼내서 음료에 넣어 마신다.

나는 오늘도 갈증이 계속 생겼다. 약 기운 탓이기도 했고 감기가 나으려는 탓이기도 했다. 커피를 희석시켜 마셨다.




내 기억이 왜곡될까 봐 항상 메모하고 자주 읽어본다.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서 공을 들여서 여행을 준비했지만 자꾸 일이 생기면서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떠나기 직전까지 모든 걸 잠시 접어두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인터넷이 끊겼다. 그래서 복습이란 것을 하지 못하고 운에 맡기고 출발했다. 렌페 티켓머신부터 왜곡되어 기억했다.

메트로 티켓 머신은 빨간색, 렌페 티켓 머신 중, 보라색은 시외, 빨간색이 시내이지만 나는 보라색 머신 앞에서 오랫동안 씨름했다.

직원이 알려주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즐겨찾기 해둔 캡처사진도 찾지 못했다. 심지어 환승해야 하는 상황인데 노선도 미리 알아두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어떻게든 해결은 되었지만 잘 해결되지는 않았다. 내 인생도 잘 해결되지 않았다. 이번 가을에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저렴한 티켓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렇다고 내년으로 넘기면 영원히 갈 수 없게 된다.

16시 항공사 체크인을 완료했다. 지정해 주는 좌석을 무조건 사용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가운데는 아니었다. 아부다비행 17G 가운데 열이지만 통로 쪽이고, 인천행은 27K 창가좌석이다. 올 때와 같이 긴 구간은 창가라 다행이다.




땀을 많이 흘려서 옷을 빨아서 널었다.

한 순례자가 밥을 지어서 채소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서 나누어 먹었다. 둘이 먹다가 Jean이 와서 권하니까 밥은 거절하고 미소된장국을 마시더니 배추를 쌈장에 찍어먹었다.

또 다른 한국인을 불러서 밥을 나누었다. 팜플로나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치료를 거부하고 걸었단다. 뭐지? 까미노에서 사고소식이 많다고 하더니 어느새 길 탓을 하고 있었다.

젊은애들이 나이 든 사람들과는 얘기를 하지 않고 외국인들과만 얘기하려고 한다며 투덜대는데, 늙은 나도 듣기 싫은 스타일이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사고방식 때문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으로 들어왔는데 마른하늘에 천둥번개가 요란해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이내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는 어느새 우박이 되었다. 우박 크기가 제법 되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알베르게 안으로 잠시 피신하기도 했다.

교대하고 접시를 사러 나갔으면, 오는 길에 접시는 와장창 부서질 뻔했다.

마드리드에서 마지막 날, 한국식 비빔밥을 먹고 천둥번개에 우박까지. 다이내믹한 날이다.




18:30 디에고가 왔다. 까친연 배지 저금통이 택배로 와서 설치했다. 그런데 제작한 배지에 오타가 있었단다.

마지막 날이라 인사도 할 겸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그들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인사는 간단히 하는 거지.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Jean이 와서 내일 언제 가냐고 묻는다. 아침이냐고 해서 오후라고 말했다. 설마 청소시키려고 그런 건 아니겠지? 나는 내일 꼼짝도 하지 않을 거야.




앙헬라에게 폰따니야스에 오늘 순례자가 10명이라며 메시지가 오더니 이내 영상통화가 왔다. 안이 너무 어두워서 창가에 서서 통화했다.

서로의 언어를 몰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영상통화가 처음이다. 그동안 얼굴 보고 통화할 사람이 없었다. 그것도 참 웃픈 얘기다.




오늘은 빵도 먹고 밥도 먹었지만 장이 부대끼지 않았다. 그것도 신기하다.

Jean이 부른다. 나가니 맥주와 빠따따스와 비스킷. 오늘 두 잔 째다. 또 마셨다.

그리고 이제 소파에 앉아있을 필요가 없어 침대로 올라갔다.

천둥번개가 다시 시작되었다. 폭우도 쏟아졌다. 내일도 비가 올까 봐 판초우의를 꺼낼까 했지만, 지나가는 비라 위안이 된다.

배낭을 침대로 끌고 올라갔다. 짐을 꺼내고 침낭부터 차례로 정리해서 넣었다. 나머지는 소파에 세워놓고 채워 넣었다.

스틱을 배낭에 넣을까 고민했지만 자칫 배낭이 찢어질 수 있어서 바깥에 꽂았다. 이제는 스틱보다 배낭이 더 중요했다. 정리하고 나니 땀이 났다.

어느덧 21:40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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