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나의 부끄러움을 마주하는 일
이슬아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의 첫 인터뷰이(interviewee)인 라디오작가 정혜윤님은 이런 말을 했다
글쓰기는 자아의 형성, 해방, 이동이다.
나의 글쓰기가 자아 표현에서 그치지 않고 시선의 이동과 확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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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의 글을 읽으며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한동안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는데 저 문장을 읽고는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었다.
나를 넘어서 너와, 우리, 그들을 향한 시선의 확장 없이 나에게만 갇힌 글쓰기는 울림을 줄 수 없다.
나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언젠가는 고갈되기 마련이다.
모든 대화의 흐름이 '자기 자신'으로 귀결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과의 대화는 답답하다 못해 깝깝하다.
모든 대화가 자신의 경험담으로 일축되는 이들은 자신이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길 꺼려하기 때문에 모든 대화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가지고 온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오로지 자신의 세계에 갇힌 사람들인 것이다.
한살한살 나이가 들어갈 수록, 무엇보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느끼는 것은
학력이든 나이든 경력이든 무언가 많이 축적될 수록 오히려 유연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면 참 우아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책을 많이 읽어서, 배운게 많아서 라기 보다는 언제나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고, 세상에는 아직 자신이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학력 인플레의 시대이지만 여전히 대학원은 하나의 특권으로 받아들여진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로 얻은 지식들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누군가의 우위에 서기 위한 수단이 되지 않기 위해 항상 나 자신을 검열하려 하지만, 사실 그 검열에 완벽히 떳떳하진 않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진 기회가 특권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반성하고, 시선을 확장하고, 부끄러움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고귀한 지식인은 아니더라도 비열한 지식인은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