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개의 차이로 알아보는 창업자의 기업가정신.
얼마 전, 개와 늑대의 차이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실험자는 일부로 고기를 먹기 힘들게 배치해 놓은 뒤 개와 늑대가 어떻게 대처하는 지를 알아보았다.
개와 늑대는 얼추 조상도 비슷하여 시베리안 허스키와 늑대는 크게 분간도 안 간다. 그런데, 외관과 달리 실험 결과는 개와 늑대의 확연한 차이를 보여줬다. 늑대는 끝까지 혼자 고기를 꺼내먹으려 애썼다. 반면, 개는 고기를 먹으려 몇 번을 시도한 뒤 쉽지 않자 옆에 있는 사람에게 불쌍한 표정으로 고기를 꺼내 달라는 듯 쳐다봤다. 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인간에게 의존하게끔 진화한 것이다. 개는 더 강한 이빨도, 발톱도, 근육도 필요가 없게끔 진화했고, 고양이나 늑대와 달리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동물이 되어버렸다.
'인간에게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라는 개의 좋은 학습력이 개라는 동물을 지금까지 생존하게끔 만든 것이다. 많은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멸종했지만 개는 꿋꿋이 살아남아 지금도 우리의 반려'견'으로서 어떻게 보면 인간보다도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늑대는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야생성이 강하다. 또한 '비열하다'라고 평가할 만큼 인간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낮고 조금도 의지하지 않는다. 늑대는 수세대에 걸쳐 더 강하고 더 빠르고 더 영리하게 진화했다. 늑대는 지금도 야생에서 살아남고 있고, 타고난 사냥꾼으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즉, 늑대는 오랜 시간에 걸쳐 문제 해결 능력을 매우 느리게 체득해온 반면, 개는 태어나자마자 인간을 통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왔다. 우리가 보기엔 늑대가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개를 야생에 던져놓으면 개는 순식간에 바보가 되어버린다. 지구 상에 어떠한 개도 늑대를 이길 수 없다. 어떤 이들은 핏불이나 로트와일러 같은 전투형으로 개량된 개가 늑대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늑대와 개의 심폐지구력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늑대를 결코 이길 수 없다.
투견끼리는 서로의 목을 물어 제압을 하려 한다. 반면, 늑대는 개의 몸통을 물어 갈비뼈를 부러뜨릴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늑대와 개의 싸움을 보면 늑대가 개의 몸통을 물어 곧바로 내장까지 뜯어내는 방식으로 싸움이 끝난다. 개는 결코 늑대를 이길 수 없다. 아무리 개량된 투견이라 할 지라도, 인간에 의해 개량된 투견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투견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개량됐기 때문에 심폐지구력이 매우 낮다. 인내심이 강한 개라고 할 지라도 심폐지구력이 월등한 늑대와는 상대가 안된다. 늑대는 심폐지구력이 월등하면서도 싸울 때 즉각적으로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심리전을 계속하며 느리고 차분하게 한 방을 노린다. 오랜 세대에 걸쳐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투력을 갖게 된 늑대와 인간에 의해 개량되고 길러진 개는 이렇게 큰 차이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는 늑대보다 훨씬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아남는다. 확률적으로 죽을 확률이 늑대에 비해 훨씬 낮다. 개가 아프면 인간이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해준다. 반면, 늑대는 작은 상처에도 기생충이 감염되면 죽어야 된다. 결국, 개와 늑대의 차이는 둘 사이에 어떠한 우월성도 갖지 않는다. 그저 다를 뿐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창업자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형 창업자와 늑대형 창업자가 있다고 본다. 개형 창업자와 늑대형 창업자는 둘이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저 두 부류의 창업자 모두 제품-시장 핏을 맞추기 위해 시장과, 기존의 패러다임 속에서 고독하게 싸울 뿐이다. 어떤 창업가는 관계를 통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한다. 대부분 이런 창업자들의 문제 해결 능력은 극도로 뛰어나다. 대기업을 나와 창업을 한 창업자나, 해외 유명대학을 나와 끈끈한 네트워크를 갖고 창업한 창업자들이 이런 유형에 해당한다. 유명한 기업인으로는 잭 웰치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개형 창업자에 속한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창업자의 학력이 중요하냐고 묻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안중요할 수가 없다. 학력이 좋거나 대기업 출신인 사람들이 성공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경험을 갖기까지의 인내심과 노력도 그렇지만, 그 이후 구축된 관계들, 그리고 그것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온갖 노력 끝에 얻은 '관계'와 '안정성'은 언제 어디서든 힘을 발휘한다.
반면, 늑대형 창업자가 있다. 뭔가 늑대라고 하니까 더 멋있어 보일지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 비즈니스를 수행할 때 어떠한 관계도 없는 경우 실패 확률이 대단히 크다. 지금의 늑대는 강하지만, 그러한 늑대가 태어나기까지 수세대에 걸쳐 수많은 늑대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늑대형 창업자의 경우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이때 들어가는 시간이나 비용적인 부분이 굉장히 크다. 이러한 늑대형 창업자의 대부분은 실패한다고 본다.
그런데, 아주 만약에 이러한 늑대형 창업자가 생존했을 경우 일반적인 개형 창업자들보다 훨씬 더 강한 면모를 드러낸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이러한 늑대형 기업인에 속한다고 본다. 스티브 잡스나 손정의 회장 모두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스티브 잡스는 리드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했으며, 손정의 회장 또한 일본의 와세다나 동경대학을 나온 사람이 아닌 미국 UC버클리 출신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를 하버드보다 더 알아주듯 일본이나 중국도 로컬 대학이 더 높은 비즈니스적 가치를 갖는다.
즉, 늑대형 창업자는 생존이 매우 어렵지만, 만에 하나 생존했을 때는 매우 강하고 저돌적인 측면이 있다. 개형 창업자의 경우 생존확률이 높고 영리하지만, 만에 하나 실패 문턱에 갈 경우 늑대형 창업자에 비해 쉽게 지칠 확률이 있다.
늑대와 개는 저렇게 이미 진화가 끝났다. 하지만 인간은, 창업자는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개형 창업자과 늑대형 창업자의 면모를 섞어서 더 강력한 개체를 만들어야 한다. 늑대형 창업자는 개형 창업자들이 가진 관계나 관계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배우면 되고, 개형 창업자는 늑대형 창업자가 가진 헝그리 하게, 가끔은 무식하게 저지르고 보는 그러한 승부 수적 기질에 대해 배우면 된다.
공동창업자가 있는 회사가 더 성공할 확률이 크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일 수 있다고 본다. 한 명은 개형, 한 명은 늑대형 창업자일 경우 회사가 성공할 확률이 월등하게 높을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 마쿨라라는 귀인을 얻어 사업을 폭발적으로 키울 수 있었다. 인텔 출신의 마쿨라는 창업 동아리 수준의 애플을 세계적인 회사로 키워낸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이 마이크 마쿨라가 애플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개형 창업자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도 몇 가지 질문을 던질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개형 창업자인가? 늑대형 창업자인가?
관계를 통한 빠른 학습이 중요한가?
느리더라도 직접 체득하며 학습할 것인가?
고통을 미리 예견하고 피할 것인가?
고통을 맞닥뜨릴 것인가?
No pain, No gain 이라지만, Yes pain, Yes gain! 은 아니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을지라도, 꼭 고통받아야 얻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창업자는 이러한 근본적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창업자의 심리적 안정성이 회사의 안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업 초기에는 창업자가 무너지면 회사가 무너진다.
그러나, 창업자는 늘 매우 무너지기 쉬운 감정상태로 버텨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방향성을 잘 정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기업가정신을 마음속에 되새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 늑대와 개의 사진을 보며 이러한 고민을 해보는 건 어떨까?
* 이 글은 비캔버스로 초안을 잡아 작성한 글이다.
비캔버스로 잡은 글 초안을 https://beecanvas.com/s/77c25a 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