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밀스러운 휴양지, 설캉스

"남편은 모르는 나의 비밀 휴양지, 오늘은 '싱크대'로 떠납니다"

by 마마알베스

우리 집에는 나만 아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이 하나 있다. 바로 '설거지'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집에서 설거지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집안의 늦둥이로 자라온 내게 설거지란 영 어색한 일이었고, 명절에도 당연히 언니들이 도맡아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 대학생 시절, 방학을 맞아 인솔 아르바이트로 아이들과 함께 미국 보스턴에서 한 달간 머물게 되었다. 한 가정에서 아이들 일곱 명과 홈스테이를 하며 캠프를 진행했는데, 그곳에서 내 역할은 아이들을 챙기는 것과 약간의 가사 일을 돕는 것이었다. 요리는 그 댁의 사모님이 주로 하셨기에, 나는 눈치껏 설거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거지통 앞에 선 내 모습이 마치 '부엌데기'가 된 것만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컵과 접시를 닦다 보니 더 빠르고 깨끗하게 닦아내는 나만의 기술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선 이어폰도 없던 시절이라 음악 하나 없이 오롯이 접시만 닦아야 했지만, 오히려 그 고요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꽤 달콤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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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쌓인 기술 덕분인지, 이제 설거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안일이 되었다. 남편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나는 설거지할 때 진정한 즐거움을 느낀다. 특히 육아에 치이는 지금, 설거지 시간은 나에게 가장 큰 안식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안의 소음을 차단하는 순간, 세상에는 오직 나와 설거지거리만 남는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냄비, 접시, 아이들의 컵과 물병이 하나씩 깨끗하게 씻겨 나가고, 건조대 위에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일 때의 쾌감이란. '그래도 이 집에서 이 일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구나'라는 묘한 해방감마저 든다.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지, 요즘은 설거지를 '설캉스(설거지+바캉스)'라고 부른단다. 참 재치 있는 이름이다.


오늘도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하루를 마무리하며 설캉스를 떠날 채비를 한다. 고된 가사 노동과 육아 속에서도 나만의 바캉스를 찾아내는 이런 소소한 이벤트들이 모여 나의 하루를 지탱해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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