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2.] 머리 짧은 여자

나에게 쓰는 편지-62

by 도르유

안녕,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스쳐 지나가 않겠다고 다짐한 후 어느새 60편이 넘는 편지를 쓰고 있어.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오늘은 이틀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써보려고 해. 회식을 하던 중에 잠깐 화장실을 갔을 때였어. 화장실 칸에서 나오는 순간 짧은 머리의 사람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고 나도 모르게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라고 말해버렸어. 돌아온 대답은 "아.. 제가 머리가 짧아서.." 끝을 맺지 못한 문장이었지만 나는 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어. 그분은 자주 있는 일인지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말하며 오히려 웃으셨어.


화장실 밖으로 나와서도 한동안 멍했던 것 같아. 말로만 들었던 화장실에서 남자로 오해하는 상황을 처음으로 겪어서 놀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고정관념에 휩싸여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거였어. '어떻게 여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당연히 남자일 거라 생각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


나름대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야. 머리 긴 남자, 머리 짧은 여자, 힐을 신은 남자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앞에 그 사실, 머리가 짧고 남색 후드티를 입은 사람을 마주한 순간 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느끼는 순간이었어. 마음속 깊은 곳부터 편견 없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도 수고 많았어.


오늘의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