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_무라카미 하루키

by 도르유

글을 쓰기에 앞서 나는 달리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해야겠다.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만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보다는 근력 운동을 더 선호한다. 시간 단위보다는 횟수 단위로 운동하는 게 더 지루하지 않고 목표 개수를 채웠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달리기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유튜버 '이연'의 추천 때문이다. 한 때 취미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림 유튜버로 뜨기 시작했던 유튜버이다. 지금은 프리랜서가 되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림 관련된 주제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영상을 많이 올려서 라디오처럼 편하게 듣고 있다. 나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영상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하게 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연이 소개했던 여러 책들 중에서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워낙 강력 추천을 했던 책이라 위시리스트에 저장을 해두었지만 다른 책들에 밀려서 선택받지 못하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달리기라는 주제만으로 이렇게 책을 쓸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책을 출판할 수 있다니.. 무라카미 하루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지금부터 20여 년 동안 필라테스를 꾸준히 한다면 '필라테스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책을 낼 수 있을까..


단순히 달리기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꽤나 긴 문장들과 직설적이지 않은 은유적 표현들로 인해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흐름도 있지만, 밑줄 치며 되뇌게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달리기에 대해 정직하게 쓴다는 것은,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직하게 쓰는 일이기도 했다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으로 읽어주어도 무방하다는 저자.

내가 아주 나중에 회고록을 쓰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축으로 나라는 사람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나만의 속도로, 계속하는 힘]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 계속하는 것-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달리기와 소설뿐만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들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계속’하는 것. 초반부터 스퍼트를 내다보면 쉽게 지쳐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다. 적당하게 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나 자신과의 경쟁]


달리고 있으면 그저 즐거웠다.
어떤 일이 됐든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든 지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 그런 의미에서 장거리를 달리는 것은 나의 성격에 아주 잘 맞는 스포츠였다.


똑같은 경우를 일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 뭔가를 이룩했는가의 하나의 기준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에게는 그녀들에게 어울리는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나에게는 나에게 적합한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그것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해가게 될 것이다. 나는 기록에 도전하는 무심한 젊은이도 아니고, 한낱 무기적인 기계도 아니다. 한계를 알면서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오래 자신의 능력과 활력을 유지해가려 하는, 한 사람의 직업적인 소설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성향상 팀 스포츠와 일대일 대항 스포츠가 맞지 않는다고 했지만, 성향 차이를 떠나서 누군가를 상대로 승패를 가르는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부럽기도 하면서 닮고 싶은 부분이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나 자신’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집중하기. 장거리 달리기야말로 승패를 떠나 ‘내’가 이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는가에 모든 노력을 다하는 스포츠인 것이다. 시간과의 경쟁도 하지 않는다. 대신 달리기라는 행위에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끼며 끊임없이 활력을 얻고자 하는 저자의 모습이 멋졌다.


요즘 들어 자꾸만 남들과 비교하려고 하는 내 모습에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내 목표는 누구보다 더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닌 옳은 방향과 알맞은 속도로 꾸준히, 차근차근히 나아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인데 왜 이렇게 조급해지고 남과 비교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기. 내일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 최선을 다하기.




[공백]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진공을 포용할 만큼 강하지 않고, 또 한결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도 달리고 있는 나의 정신 속에 스며들어 오는 그와 같은 생각(상념)은 어디까지나 공백의 종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용이 아닌, 공백성을 축으로 해서 성립된 생각인 것이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니.. 보통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무작정 걷거나 그림을 그린다고들 하는데 그런 의미의 표현인 것일까. 실제 퇴근길에 걷거나 뒷산을 오를 때를 떠올려보면 어떤 생각이 스치는 듯 하지만 금세 사라져 버린다. 잠시 걷는 시간마저 아까워 유튜브를 들을 때도 내용이 들리는 듯 하지만 귀에 온전히 들어오진 않는다. 나도 모르게 공백을 획득하려고 하는 걸까. 그 사이에 떠오르는 생각과 상념은 공백의 종속물에 지나지 않는 건가. 어렵다..ㅎㅎ


이 책을 막 읽기 시작한 시점에 한 친구의 생일이었는데 책과 달리기를 좋아하는 친구이고, 언젠가부터 서로 책 선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생일 선물로 이 책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다. 역시나 책을 받은 친구는 표지 제목만으로도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초반 부분에 나오는 '공백'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 그 친구가 떠올라 더 뿌듯해졌다.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 사업등록을 했는데 바로 그 출판사 이름이 '공백'이기 때문이다.(친구의 성이 공 씨다) 내가 쓴 글들을 모아 친구 출판사를 통해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도 여러 번 얘기하고 있다 ㅎㅎ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했던 이름인데 선물해준 책에 '공백'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체험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느끼는 감정 역시 처음으로 맛보는 감정인 것이다. … 지금의 나로서는 자질구레한 판단 같은 것은 뒤로 미루고, 거기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우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운동량과 달성된 일의 효율도 눈에 띄게 나빠진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체념하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으로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생의 원칙이며, 그 효율의 좋고 나쁨이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닌 것이다.


곧 있으면 어김없이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게 나이 듦인 것 같다. 누군가 보기엔 한없이 어리고 젊은 나이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처음 겪은 29살의 나이가 어떨지 가늠되지 않을 뿐이다. 걱정 반 설렘 반의 감정을 느끼며 맞이하는 2022년에는 저자의 말처럼 ‘자질구레한 판단은 뒤로 미루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야겠다.’




[타인과의 차이]


생각해보면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아란 것을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까닭 없이(라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고 나 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가장 밑바닥 부분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저자의 생각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타인과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아가 형성되고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것.. 다름에서 오는 마음의 상처는 인간의 자립성에 따른 대가라는 것..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맞닥트렸을 때 유독 나는 다름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왜 나와 생각하는 게 이렇게나 다를까, 왜 다르게 받아들이고 이해할까, 왜 내 의도와 마음을 다르게 해석하는 걸까.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 받게 되는 상처는 꽤나 컸다.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나의 중심이 사라져 버렸다.


그럴 때 나는 필라테스를 찾는다. 스트레스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내 몸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상태라면 평소보다 더 높은 강도로 50분을 꽉 채운다. 아프던 머리도 어느새 멀쩡해지고 활력이 생긴다. 누가 봐도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닌 날엔 부드러운 스트레칭과 마사지로 굳어있는 몸을 풀어준다. 몸의 강화와 이완을 적절히 섞어줄 수 있는 운동이라 시작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필라테스가 아니더라도 운동 자체에 그런 힘이 있는 듯하다. 몸도 마음도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억지로라도 매트를 깔고 운동을 하면 적어도 운동하는 시간엔 잡념이 사라지고 혈액순환이 되면서 몸이 더 가벼워진다. 앞으로 운동은 평생 할 생각이다.




[사회인의 공부]


내가 공부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소정의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든 마친 다음, 소위 ‘사회인’이 되고 나서부터다.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가면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난 후엔 사실 공부와 연을 끊을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공부하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나 또한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고 나서 한동안은 공부와 거리가 멀어졌었다. 영어 공부는 놓지 말자는 생각으로 회사에서 들을 수 있는 영어 회화 수업을 한동안 들었는데 별다른 목표 없이 하려고 하니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분야에 눈을 떠서 나름의 공부를 시작했는데 꼭 해야만 하는 강제성이 부여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동시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니까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아마 이 공부는 평생 하게 될 것 같다.




[인생의 우선순위]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짓게 할 수는 없다.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나름의 우선순위를 매김으로써 나만의 시스템을 확립하기. 결국 나의 가치관을 명확히 세워두어야 앞으로의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서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실패를 마주 보기]


실패의 원인은 명확했다. 달리 양의 부족. 그것이 전부였다. … 건전한 자신감과 불건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


사람은 누구든 영원히 이기기만 할 수 없다. 인생이라는 고속도로에서 추월 차선만을 계속해서 달려갈 수는 없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똑같은 실패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데 인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원인까지 철저하게 파악한다. 자신의 불건전한 교만 때문이었다는 것. 더 나아가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저자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뇐다.




[그만둘 수 없는 아주 적은 이유]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달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달련하는 것.


힘들어서, 건강이 안 좋아져서, 싫증이 나서.. 어떤 일이든 그만둘 수 있는 이유는 수없이 댈 수 있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는 이유,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계속해나가는 것이다. 도저히 더 할 수 없을 거라 생각이 든다면 지금까지 소중히 단련해온 ‘아주 적은 이유’를 떠올리자.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나 스스로에게 허용 범위를 넓히는 순간 꾸준히 지켜나갈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달리기의 매력]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신을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당연히 달려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마라톤 레이스인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달리기를 조금은 더 좋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더 생동감 있게 목적성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제 달릴 것인가와는 조금 다른 문제이지만..ㅎㅎ


달려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마라톤 레이스처럼 인생도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존재 의의]


내가 당면한 세계는 기껏해야 3미터 앞에서 끝나고 있다. 그 앞의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 여기서부터 3미터 앞의 지점까지 다리를 움직인다 - 그것만이 나라고 하는 인간의, 아니 아니지, 나라고 하는 기계의 작은 존재 의의인 것이다.


끝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우선 한 단락을 짓는다는 것뿐으로, 실제로는 대단한 의미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끝이 있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서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잘 된다는 가정이지만) 다다를 수 있다.


달리기라는 주제를 통해 존재 의의까지 뻗어나갈 수 있다니..




[불완전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주워 담을 것은 주워 담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결점이나 결함은 일일이 세자면 끝이 없다. 그래도 좋은 점도 조금은 있게 마련이고, 가진 것만으로 어떻게 참고 갈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완벽하길 바라면 한도 끝도 없다. 결점과 결함이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것만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조급해지지 말기]


어떤 경우에는 시간을 들이는 것이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된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경우에 괜한 조급함이 생기기 마련인데 오히려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전환. 적어도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라는 것. 혹시라도 앞으로 구멍 뚫린 냄비에 물을 붓는 일이 있더라도 너무 낙담하진 말자. 시도했다는 사실에, 노력했다는 사실에 더 초점을 맞추자. 그 시간과 경험이 쌓여 지름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쨌든 눈앞에 있는 과제를 붙잡고 힘을 다해서 그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간다. 한 발 한 발 보폭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시에 되도록 긴 범위로 만사를 생각하고, 되도록 멀리 풍경을 보자고 마음에 새겨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장거리 러너인 것이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한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


어느 한 문장도 빠트리지 않고 쓸 수밖에 없었던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

앞서 저자가 말해오던 이야기, 생각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페이지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올해 마지막 목표가 바로 이 책을 완독하고 정리까지 하는 거였는데 올해의 마지막 주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읽으려고 하기보단 자기 전 침대에서 몇 페이지 씩이라도 읽으려고 했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서 완독까지 할 수 있었다. 밑줄 치며 읽은 부분을 다시 한번 읽으며 정리해보니 주옥같은 문장들로 책이 쓰였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올해 생각보다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는데 22년에는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읽으면서 생각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도록 해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