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_하퍼 리

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해하는 세상을 꿈꾸며

by 도르유

중학생일 때부터 필독서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어 책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지금까지 미루어왔던 책, <앵무새 죽이기>.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했던 책을 드디어 완독 하였다.


500페이지가 넘는, 결코 적지 않은 양의 소설이지만 관련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작가, 소설의 배경과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고 덕분에 소설 속 의미를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남부지역 앨리배마 주의 메이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백인조차 가난하게 사는 대공황 시기 + 남부 지역이라는 시대적, 지역적 배경만으로도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극심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메이콤 마을 사람들을 네 가지 계급으로 나눈다면 읍내 안 엘리트, 숲 속 사람들(배심원), 최하층 백인들(쓰레기장), 흑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쓰레기장에 사는 백인보다 흑인이 더 낮은 계층인 것이다.


화자이자 주인공 '스카웃'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9살이 될 때까지 3년여간의 기간 동안 크게 2가지 사건을 겪으며 성장하는 내용이다. 어머니는 스카웃이 2살 때 돌아가시고 이후 흑인 캘퍼니아 아주머니가 사실상 엄마 역할을 하며 남매를 돌본다. 변호사인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는 지금이라면 높은 사회적 계층에 위치하고 있겠지만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변호에 대한 대가로 음식 등을 대신 받으며 생활을 한다.


<앵무새 죽이기>는 어린 여성 화자를 내세운 몇 안 되는 작품으로 6살 아이의 시선에서 어두운 사회적 이면을 묘사한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시선으로 모든 사건들을 바라보는 화자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은 이미 각각의 집안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어느 집안 출신은 원래 그렇다'는 표현을 하며 일반화하고 자신들과 구분 짓는 것이다. 북부 출신의 선생님은 이런 마을의 상황을 모르고 있어 당황한다. 남부와 북부 격차가 얼마나 크게 나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1부에서는 스카웃과 4살 차이가 나는 오빠 젬, 여름방학 때마다 놀러 오는 딜이 주가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카웃 집 앞에 위치한 집에 살고 있는 부 래들리(본명은 아서 래들리이다.)는 집 안에서 나오지 않는 인물이다. 마을 내에서는 미지의 인물에 대한 온갖 루머와 유언비어가 퍼져있다. 옛날에 어떤 사건을 겪은 후 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베일에 쌓여있는 부 래들리를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호기심을 갖는다. 그 집 마당에서 자란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는 등의 소문에도 불구하고 이 세 명의 아이들은 래들리를 나오게 하기 위해 위험한 행동들을 서슴지 않고 한다.


아이들의 순진한 마음이 보이는 부분은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몇십 년 동안 '눈'이란 게 내린 적이 없는 마을에서 눈이 내리는 것을 본 아이들은 "아빠, 이제 이 세상이 끝장이에요! 제발 어떻게 해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는 중 아버지는 어떤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된다. 스카웃이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기 전 학교 친구에게 '너희 아버지는 흑인 애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뜻은 정확히 몰라도 아버지를 모욕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의 재판은 백인 여성(이웰)을 흑인 청년(톰 로빈슨)이 강간했다는 사건에 대한 것으로 강간 혐의를 받고 있는 흑인을 아버지가 변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할 때가 있어. ... 글쎄,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너와 젬이 커서 어른이 되면 어쩌면 연민을 느끼면서, 내가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이 문제를 되돌아보게 될 거야.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은 말이다.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있는 문제야. ...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줘야 돼. ...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 흑인을 변호하는 일에 대한 아빠의 굳건한 신념을 잘 드러내 주는 부분이다.



아이들이 공기총을 선물로 받았을 때 '앵무새 죽이기'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이 된다.

"난 네가 뒤뜰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될 거야. 맞출 수만 있다면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1부와 2부로 구분이 되어있지만 큰 이야기의 줄기는 끊기지 않고 계속된다. 2부에서 더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바로 흑인과 백인 사이에 존재하는 높은 벽이다. 그 벽을 스카웃과 젬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모두가 못 사는 시기이지만 그 안에서 나뉜 계층 중 스카웃과 젬은 백인 중에서도 나름 엘리트 층에 속하는 집안의 아이들이다. 흑인 캘퍼니아 아줌마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환경 속에서 백인 중심의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캘퍼니아 아줌마가 다니는 교회를 따라가게 된다. 흑인들을 위한 교회는 처음 가본 것이다. 평소엔 백인 말투를 쓰던 캘퍼니아 아줌마는 흑인들을 만나자 갑자기 그들과 같은 말투를 쓴다. 찬송가를 부르는 시간엔 한 명이 책을 보며 선창 하면 나머지가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놀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묘사된다. 다른 이유도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톰 로빈슨의 가족을 위한 헌금이 진행되고 10달러가 모이기 전까지는 교회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극단적인 조건 속에서 아이들도 헌금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드디어 톰 로빈슨에 대한 재판이 열리는 날, 스타웃과 젬, 딜은 어른들 모르게 법정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노인들의 대화를 통해 애티커스 핀치, 즉 아버지가 원해서 톰을 변호하게 된 것이 아님을 듣게 된다. 법원에서 임명해서 변호한다는 것이다.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본인이 자발적으로 먼저 원해서 맡은 변호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차례가 돌아온 일에 대해 받아들이고 책임을 다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영웅적인 캐릭터가 아니 때문에 독자들이 더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이다.


세 아이들은 좁은 2층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흑인들 사이에서 재판을 보게 된다. 1층에 앉아있는 백인들 사이가 아닌 흑인들 사이에서 재판을 보며 흑인들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흑인 교회에 간 경험과 재판 과정을 관찰하는 두 사건은 아이들을 한층 더 성장시키는 계기라고 볼 수 있다.


재판 심문 과정을 보면 누가 봐도 톰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12명의 배심원들의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웰의 손을 들어준다.


재판 과정 중 검사에 대한 딜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막 대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딜의 마음을 사람들이 절반이라도 닮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핀지 변호사님은 메이예라와 이웰 영감을 반대 심문하실 때 그런 식으로 대하진 않으셨어. 그런데 그 사람은 그(톰)를 계속해서 '젊은이'라고 부르며 비웃고 그가 답변할 때마다 배심원들을 휘둘러보고 ...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패소했다는 결과를 들은 젬은 분노한다.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말이에요?"

아버지는 생각보다 침착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라는 듯이.

"나도 몰라.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어. 전에도 그랬고 오늘 밤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다시 그럴 거다. 그럴 때면 오직 애들만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구나. 잘 자거라."


2심을 준비하는 중에 소식이 들린다. 탈옥을 시도하려던 톰이 총에 사살당했다는 것이다. 2심에서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톰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재판에서 이겼음에도 밥 이웰은 애티커스 핀치에게 침을 뱉고 톰의 아내를 위협적으로 따라가는 등의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젬과 스카웃의 대화를 통해 그동안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빠, 내 생각으로는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네 나이 때에는 말이야.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다면, 왜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까? 그들이 서로 비슷하다면, 왜 그렇게 서로를 경멸하는 거지? 스카웃, 이제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부 래들리가 지금까지 내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말이야, 아저씨는 집 안에 있고 싶기 때문이야."


대망의 마지막 사건은 핼러윈데이 날 일어난다. 핼러윈 행사가 끝난 늦은 밤, 밝은 불도 없는 거리를 젬과 스카웃이 걸어가다가 누군가 뒤쫓아 오는 소리를 듣는다. 도망치려고 했지만 결국 붙잡혔고 젬은 스카웃을 구한 후 그 누군가와 몸싸움을 하다가 팔 한쪽이 부러진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알 수 없는 누군가 젬을 둘러업어 집까지 데려다준다.


경황이 없는 스카웃은 젬 방에 들어와서야 찬찬히 그 아저씨를 보게 되고 한 마디를 건넨다.


"헤이, 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부 래들리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는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면서도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며 젬이 이웰을 죽인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한다. 내가 젬이었다면 정말 서운했을 것 같다.


부 래들리를 집까지 안내하며 스카웃은 한층 더 성숙해진다.

부 아저씨는 우리 이웃이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비누로 깎은 인형, 고장 난 시계와 시계 줄, 행운을 가져준다는 동전 두 개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가져다주셨다. 이렇게 선물을 받으면 이웃 사람들은 답례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껏 그 나무에서 얻은 것들을 도로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슬펐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스카웃은 몸을 돌리며 부 래들리의 시각에서 밖을 바라봤을 때 보였을 장면들을 계절의 흐름에 따라 떠올린다. '관점의 전환=입장의 전환=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모습이다.


아빠가 정말 옳았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래들리 아저씨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집을 향해 가는 동안 나는 나이가 부쩍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아마 대수를 빼놓고는 이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별로 많은 것 같지가 않았다.

1부에서 아버지는 "살갗 밑으로 들어가 길을 걸어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인 '타인에 대한 이해'를 주인공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앵무새 죽이기>는 타자에 대한 이해를 중심 주제로 내세우며 여러 사건들을 통해 주인공인 어린아이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 관용, 사랑'을 배우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앵무새는 누구인가? 그리고 누가 앵무새를 죽였는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우선 앵무새는 부 래들리 또는 톰 로빈슨이라고 볼 수 있겠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엽총을 주며 다른 새를 죽이는 것은 몰라도 앵무새를 죽이면 안 된다는 아빠의 말을 바탕으로 볼 때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새를 죽이면 죄라는 것이다. 부 래들리와 톰 로빈슨은 마을 사람들의 근거 없는 루머, 흑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차별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인물이다.


초반부에 젬의 팔이 부러진 사건을 언급하며 젬과 스카웃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사건의 시작은 딜이 여름방학 때 놀러 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 래들리를 집 밖으로 끌어내려는 시도와 후반부 재판이 연결되어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편견과 차별이 만연한 사회를 꼬집어 비판하며 두 사건을 관통하는 '타자에 대한 이해'라는 중심 주제를 제시하는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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