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데-예뻐서_박조건형&김비

#일상, 그리고 쓰다

by 도르유

트랜스젠더 소설가,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앓고 있는 드로잉작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동시에 지극히 일상적인 그들의 이야기.


당신이 사는 거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책 뒤표지에 쓰여있는 문장처럼, 다른 듯 하지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과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부부의 상 속 이야기를 담담하고 담백하게 풀어낸 이야기는 서서히 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싶은 장면을 지나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그림으로 기록하는 박조건형 작가님, 그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한번 더 되뇌게 만드는 문장들로 남기는 김비 작가님. 각자 잘하는 분야를 해나가면서 서로를 채워나가는 부부의 모습이 책 속에 담겨있다. 환상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평범한 일상 속 이야기를 나만의 그림으로 남기고 글로 기록하고 싶은 나에겐 하나의 지침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책이다.




우린 너무 예쁜 것만 보려고 한다는 말. 우리 일상 속 가장 가까운 곳 중 하나인 화장실 드로잉이 인상적이다.


일상 속 사소하고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화장실까지)과 물건, 주변 사람들까지 놓치지 않고 그림으로 그려내며 그에 관한 이야기까지 풀어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그림 또는 글만으로 구성된 책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처음엔 그리 가볍지 않은 이야기로 시작는데 꽤나 자세하고 깊은 가족사까지 나온다. 무슨 심정인지 알 것 같다거나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 같은 어줍지 않은 공감을 하기보단 담담히 쓰인 그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갔다.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부부가 얼마나 건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주차장 드로잉 그림을 통해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던 감정을 붙잡아보려고 한다. 흐려진 당시의 기억과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 사람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며 어제의 사랑을 붙들기보다는 내일 또 사랑하리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글의 내용이 좋았다.







대파 써는 그림에서 노동의 가치를 찾아내는 김비 작가님..!!


'김비님 머리카락'이라는 표시와 강조가 되어있는 몇 점의 그림ㅎㅎ 내 화장실을 보는 것 같아 김비님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사람'에 따라 정책이 세워지고 '돈'에 따라 사람이 몰리는 세상. 가끔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해도 되는 건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확 와 닿는 문장이라 몇 번 다시 읽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우대하기 위한 변화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화'와 '효율화'를 내세우며 만들어지는 정책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을 음지로 내몰고 있다.


일상적인 주제 속에서 깊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그만두셨다고 하지만 오랜 기간 노동자로 일을 하며 그린 그림들.


생생한 현장과 주변 사람들, 그 안에서 겪은 일들까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그림 속에 담겨있다. 그 기록을 통해 박조건형 작가님에 대한 깊은 이해, 그가 하는 일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는 김비 작가님의 글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작은 회사에서의 부당한 대우와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이 많이 된다. 처우 개선이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저 똑같이 기록하는 건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말한 적이 있다는 박조건형 작가님에 대한 김비 작가님의 생각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예술'이라는 이름 속에 기록되지 못한 것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도 많다. 그림으로 옮긴 풍경은 작가의 마음이 손끝에, 시선에 묻어 더욱더 귀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풍경을 발견해 작가의 시선으로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지금도 여전히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예전보다 흥미가 덜해졌고 반대로 드로잉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진도 작가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 충분히 새롭고 다른 느낌의 결과물을 낼 수 있겠지만 그림만큼 작가 고유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풍경에 시선을 주며 손끝으로 만들어낸 노동의 결과물. 비 작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그 가치는 정말 차고 넘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일상 속에서 가치 있는 드로잉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울증과 무기력증,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혼자만의 발버둥을 치는 중이었다. 영혼의 몸을 버둥거리는 중이었다. 자기 자신은 물론 세상의 모든 편견과도 맞서 싸우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다짐한 일과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지키며 하루 일과를 꿋꿋하게 해내는 박조건형 작가님. 가님의 하루하루를 응원하고 싶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한 사람이다.
이제 나는 삶을 말할 때, 죽음을 말할 때, 그 어떤 순간도 가벼이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다가온 시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어제의 삶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시간을 살고, 내 몫이었던 시간을 무엇으로든 '기록'하는 것.

'기록'이란 시간을 기억하는 일.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그림과 글로 일상을 '기록'하며 '기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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