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것을 '소비'할 때 '행복'한가
나는 언제,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가.
평소에 내가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는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시리즈로 한번 정리를 해볼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에 대한 관점과 기준, 그 대상이 달라지겠지만 달라지는 변화를 기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 첫 번째로 '소비'를 통한 행복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나는 어떤 것을 '소비'할 때 '행복'한가
소비에 대한 트렌드는 최근 짧은 기간 내에 꽤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 때 <욜로>가 유행하면서 "한번 사는 인생, 지금을 즐기자!!!"라는 말에 공감을 크게 얻었다. 극단적으로는 미래를 위한 저축에는 관심이 없고 현재의 소비에 치우쳐져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코로나 시기에는 자산 가격이 튀어 오르면서 <재테크/파이어족>이 가장 화두였다. 코인 대박으로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둔다는 파이어족이 이곳저곳에서 생겨났고 노동의 가치가 등한시되어버리는 사회적 현상도 일어났다.
(이 중간쯤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는 소비도 유행처럼 퍼져나갔던 것 같다.)
2년여간의 반짝 자산 폭등이 끝나가면서 자산 가격은 원래의 자리를 되찾아가고 있고, 폭등장에 무리하게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손절을 하거나 고금리의 대출을 감당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중에 나도 포함..) 그러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거지방>이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짠테크라는 말까지는 그래도 익숙하게 들어본 말이었는데 <거지방>이라니.. 말 그대로 거지처럼 아끼고 살자는 다짐을 오픈톡방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서로의 소비를 제지하는 방이라고 한다. 동시에 세계여행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겠다며 해외로 나가거나,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명품 쇼핑을 하는 사람들도 이에 못지않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부정적으로 보면 극단적으로 절약하는 사람들과 값비싼 소비를 하는 사람들로 양극화되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앰비슈머(Ambisumer)'의 등장으로 보는 해석도 많다. 앰비슈머는 양면성(Ambivalent)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다. 평소에는 실용성을 중점으로 두고 '가성비'를 따지며 소비를 하지만 자신이 가치를 높게 두는 대상에 대해서는 심리적 만족, 즉 '가심비'를 따지며 아낌없이 소비하는 것이다. 회사 점심시간에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다가 주말에는 호텔 브런치를 먹은 후 호캉스를 즐기는 모습이 한 예시가 되겠다.
그렇다면 나의 소비 행태는 어떨까? 나는 무엇을 많이 소비하고 어떤 것을 소비할 때 행복을 느낄까?
일단 나도 젊은 세대에 속해서인지 확실히 앰비슈머의 소비 형태에 공감이 많이 간다.
기본적으로 '경험'의 가치를 크게 두는 편이다 보니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에 대해 아깝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 덕분에(?) 국내외 여행은 가리지 않고 가능할 때마다 다녀왔다. 그곳에서만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점에서 여행은 정말 매력적인 것 같다. 오마카세나 가격대가 있는 식당도 가끔 경험해 보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부모님은 비싸게 나가서 먹는 걸 아까워하시는 편인데, 막상 다녀오시고 나면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더더욱 새로운 음식과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어떤 인플루언서는 가족들과 매달 한 번씩 호텔에 가서 브런치나 식사를 하는 대신 평소엔 외식을 지양하고 집밥으로 해결한다고 한다. 자주 먹는 치킨은 자녀가 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매달 한 번씩 가는 호텔 식당은 좋은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인데, 개인적으로 공감이 되고 앞으로 나도 실천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일상 속에서는 최대한 쓸데없는 것에 소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점심도 혼자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도시락도 몇 번 싸가서 먹어봤는데 귀찮은 일이지만 조금만 부지런하면 될 일이다. 사원대리 때는 어떻게 그렇게 매일 약속을 잡고 외식을 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모습이다 ㅎㅎ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지인들을 만나 식사하고 카페를 자주 갈 수도 있지만 이 빈도도 점차 줄어들었고 대신 혼자서 나의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누가 봐도 앰비슈머의 모습인데, 다른 점이 있다.
단순히 소비를 위한 소비는 점점 멀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 점점 세뇌가 되어가서 그런가..
여러 가지 예시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예시는 '의류'가 아닐까 싶다. 옷 좀 사 입으라고, 지금 이렇게 젊을 때 안 꾸미면 언제 꾸미려고 하냐는 엄마의 잔소리(ㅎㅎ)를 매번 만날 때마다 듣지만, 정말 옷에 대한 욕구가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필요한 옷까지 안 사고 버티는 건 아니지만, 사기 전에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한 후 결정을 하게 된다. 충동 소비는 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사놓고 안 입는 옷들을 보면 정말 아깝기 때문에.. (자기 관리 측면에서의 피부, 헤어 관리 등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귀차니즘이 문제다.. 알아보고 시간 들이는게 너무 귀찮다..ㅎㅎ)
또 하나는 명품 쇼핑. 이에 대해서는 가치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에게 명품은 가치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비슷한 티셔츠에 명품 로고나 문구 하나 박혀있다고 가격이 몇십 배로 뛰는 게 정말 신기할 뿐이다. 명품을 앞으로 평생 안 사겠다는 건 아니고.. 내가 이 명품을 일시불로 사도 한 달 생활에 전혀 영향이 없을 때 사고 싶다. (언젠간 가능하겠지?!?) 이러한 지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가심비'보단 '가성비'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을 느끼게 되니 소비성 지출에 대해서는 별 감흥이 없어지게 된 것 같다. 오히려 그 자산을 잘 유지하고 더 키우기 위해 어떻게 하면 지출을 줄이고 소비를 늘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너무 극단적으로 소비를 멀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써야 할 때 안 쓰는 건 아니다. 감사한 분들께 선물을 하거나 밥을 사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지출은 아낌없이 하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을 위한 소비를 통해 얻는 행복도 만만치 않게 크기 때문이다. 대신 생각없이 나가는 소비를 줄임으로써 지출을 통제한다. 절약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이번 한 달도 잘 절약해서 저축률을 높였을 때 더 뿌듯하고 행복을 느끼는 편이다. ㅎㅎ
이것저것 소비하면서 느낄 수 있는 순간의 행복을 잠시 미루어두는 대신, 나는 자산을 보유하고 이를 더 키우는 데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를 통해 얻는 행복은 앞으로 점차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새로운 '경험'을 위한 지출과 '주변 사람들'을 위한 지출은 아낌없이 하면서 나와 내 주변을 더욱 다채롭고 가치 있게 채워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