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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Nov 21. 2023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당신이 옳다>를 읽고 (2018, 정혜신)

#우리는 왜 아픈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서] 


순간적으로 그 말이 내포한 정서와 전체를 더 근원적으로 받아들인다
(중략)
가장 절박하고 힘에 부치는 순간에 ‘네가 그랬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은 산소공급이 제대로 사람에게 요리를 해 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저 사람은 지금 내가 산소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키는 인증 작업일 뿐이다


예전 내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어릴 적부터 애늙은이라는 말, 사람을 잘 본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그날도 그 친구가 처음으로 자기 남자 친구를 소개해주는 자리였다 

시간이 지난 후 내게 친구가 다그치듯 눈이 동그래져서는 묻길 ”어때?”

난 내 친구를 아낀다는 생각이 너무 앞서 해서는 안될 말을 감히 내뱉었다 

“괜찮긴 한데 많이 연하에다가 일로도 아직 자리 잡긴 멀었고 좀 네가 아까워 

내가 널 아껴서 그러는지 몰라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

“넌 어디가 좋은 건데?”라는 질문에 갑자기 울먹이며 친구가 말을 너무나 어렵게 꺼내었다

“난 너처럼 예쁘지도 인기 있지도 직업도 변변찮아서 주변에 그럴듯한 사람들이 없어

그동안 말은 못 했지만 난 남자들이 첫 만남에 호감을 느끼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그래서 

누군가 나를 좋아해 주고 친절을 베풀고 잘해주고 밀어내다 밀어내다 그것이 진심이라 생각이 들면 그냥 좋아지게 돼, 넌 그런 내 맘 모를 거야. 그러니 누가 아깝다는 말은 말아줘.”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았고 난 울면서 미안하다 했다 

허나 그 친구의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으리라.. 그 후로 난 절대 친구들끼리 흔히 말하는 그만 만나 왜 그런 데니.. 등의 말은 안 한다 아니 못한다 “그렇구나 넌 그래서 어때?”정도..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거지 판단을 원한 건 아닐 거니까..

판단과 걱정은 그 자신보다 누가 더 할까..


#심리적 CPR [사람을 그림자 취급하는 사회적 공기]

누군가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 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소거하면 그 상황에 대한 팩트가 대부분 유실 된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안다고 확신하며 기어이 던지는 말은 비수일 뿐이다
“그런 생각은 잊어. 너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충조
“그럴수록 더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지”.. 충조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 아니니?”.. 평판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야, 별다른 사람 있는 줄 아니.”.. 충조평판


살면서 사람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삶에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나 또한 그렇고

그럴 때 누군가 “힘내~”,”누구나 다 힘들어~”,”그러다 말 꺼야~”라고들 한다. 물론 그 당시 적정한 말이고 그 외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순간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난 내가 ‘힘들어서 맘까지 꼬이면 안 되지’했지만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눈만 마주쳐 주어도, 두 손만 꼭 잡아주어도

오롯이 이해받는다는 정확한 ‘공감’ 일 것이다.



#공감[사람을 살리는 결정적인 힘]


정서적 공감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과 결합된 성숙한 공감력을 말한다.
정서적 호들갑과는 구별해야 한다
(중략)
악의가 없어도 얼마든지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공감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천천히, 환하게 판단과 편견을 내려놓고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공감은 마음의 문고리를 돌리는 힘이다



#경계 세우기 [나와 나를 동시에 보호해야 공감이다]


경계란 개념은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실용적인 것이다.
사회적 관계에서는 너와 나를 갑과 을로 나눌지 모르지만 심리적으로 모든 사람은 갑과 갑이다 



#공감의 허들 넘기 [진정한 치유를 가로막는 방해물]


관계가 깊어질수록 공감이 힘든 이유는 가족이나 연인 등 가까운 사이일 지라도 서로에게 받을 것이 있다고 믿는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깊이 수용하고 공감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가족이나 연인에게 가장 원망스럽고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는 이유다.



#공감 실전[어떻게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한 사람은 탈진할 만큼 애를 써가며 씨름을 하는데 안갯속에 갇힌 사람처럼 막막한 상태라고 느껴질 수밖에. 잘 모를 때 아는 척 끄덕끄덕이지 말고 더 물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각각 개별적인 존재, 모두가 서로 다른 유일한 존재들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같은 감정을 갖지 않는다. 다르다. 그러므로 공감한다는 것은 네가 느끼는 것을 부정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관심을 갖고 그의 속마음을 알 때까지 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 그 자체다. 
(중략)
그 태도는 상대방을 안전하게 느끼게 하고 믿게 하고 자기 마음을 더 열게 만든다.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이렇게 정혜신 선생님의 글을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갈 때마다

무언지 모를 가슴의 울림과 깊은 반성을 하게 했다

나는 고교땐 시화전에도 나갈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했다 

대학 때까지 일기도 매일 썼다. 엄마가 훔쳐본단 생각을 하기 전까지

좋게 말해서 온실 속 화초/ 그저 꽉 막힌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인형…

마흔을 넘긴 지금 나는 막상 글을 쓰려하니 표현이 어렵다 

아마도 누구나 던지는 말이겠지만

사느라 바빠서의 핑계에 숨어서 책을 멀리한 탓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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