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여는 순간부터 닫는 시간까지 나는 쓸고 닦는 일을 반복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선택지를 열어놓고 싶지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선택지들 사이에서 고르다가 지칠 수 있고, 잘못된 선택을 제한할 기회가 생기면, 뭔가에 정착하면(중략) 제가 '아, 내가 정말 이걸 좋아하는구나, 어떻게든 해야 되겠어'라고 깨달았을 때, 참 이상하게도 구속적이기 때문에 자유로워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뭘 하고 싶은지 압니다. 알기 때문에, 이제 시작하면 되니까 뭘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모든 선택은 포기해야 한다 해도 내가 열정을 느끼는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 저는 그 자체가 자유로워지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당신과 나의 희곡 중에서
회사인간에서 카페인간으로 거듭난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구르고 일하며, 사장인 남편과 싸우며 서로 합을 맞춘 시간, 손님과 켜켜이 시간을 쌓아가면서 배우는 것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회사인간이었을 때는 공휴일에 쉬어도 월급이 줄어들지 않아서 아무생각이 없었고 즐거웠다. 나는 정해진 월급만 제 날짜에 입금되면 그만인 회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카페인간으로 살면서 빨간 날은 수익이 '0'원이라 마냥 즐겁지 못하다. 안정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벌이는 회사인간과 카페인간으로 처지가 변한 나의 심리를 극명한 대비로 드러내 준다. 카페가 쉬는 날에도 돈이 줄어들지 않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단 생각에 내 안의 근엄한 고용주가 얼굴을 스멀거리며 드러낸다. 요즘은 회사 대표의 마음을 백만퍼센트 이해하며, 리더의 자리 나아가 자격까지 배운다.
카페에서 하는 일은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몰랐을 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돈 버는 일에서 낭만을 찾는 내가 철없이 느껴진다.) 카페 일은 돈을 받으며 하는 집안일에 비유하면 쉽게 이해가 될까.
몇 천만 원이나 되는 멋있는 커피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뽑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만드는 일은 빙산의 일각처럼 손님이 없으면 다른 일로 채워진다. 카페라는 빙산 아래 숨겨진 일은 끝없이 반복되는 '청소'로 대표된다.
바리스타에게 가장 필요한 자격요건은 자나 깨나 '청결'이며, 카페에서 하는 일도 '청결'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카페를 여는 순간부터 닫는 시간까지 나는 쓸고 닦는 일을 반복한다. 매일 반복되는 청소에 지치고, 회의감이 몰려올 때도 있다.
회사 다닐 때는 매주 한 번 청소하는 것도 싫어서 농땡이 부리기 일쑤였던 사람이 나다. 카페에서 매일 청소하느라 혼쭐이 나는 중이다. 2.5평 좁은 카페 공간에 청소를 해야 하니, 로봇청소기를 한대 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쓸어도 떨어지는 커피가루가 미워보이고, 음료를 제조하면서 나는 수전증이 있는 건지 끈적거리는 시럽이 한두 방울씩 바닥에 떨어져 애를 먹는다.
오늘의 노동에서 인상 깊었던 일은 주문과 동시에 손님의 얼굴이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점이다. 메뉴는 기억하는데 어떤 손님이 주문했는지 까먹는다는 말이다. 1초라는 시간이 쪼개지기 무섭게 손님이 러시타임에 몰려들었다.
인터뷰했던 짬밥도 있던 터라 사람을 기억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느꼈다. 현실에서 나는 방금 온 손님도 잊어버리는 맹구가 된다. 손님이 주문한 메뉴는 또렷이 기억하고, 누가 그 메뉴를 시켰는지 홀라당 까먹어서 혼선을 야기하고 말았다. 서비스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일이 갑자기 튀어나오고 당황하며 한뼘씩 더디게 성장한다.
아이스라떼와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내가 일하는 카페를 찾는 대다수의 손님이 주문하는 복붙 메뉴 중 하나다. 그런데 오늘은 같은 메뉴를 주문한 손님이 사라졌다. 덩그러니 좁은 음료가 나가는 서비스테이블을 차지한 커피는 주인을 기다리다 결국 다음 손님에게 서비스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커피를 서비스하는 일을 하는 중이지만 서비스에 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입장에선 독설에 해당한 어느 목회자의 말은 내 마음속에 뽑히지 않는 가시처럼 생채기를 냈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내 안의 부족함이 올라올 때마다 영혼을 살리는 목회자이길 기대했던 그의 한마디가 가시 돋친 바늘처럼 나를 찔러댄다.
얼마 전부터 함께 일하게 된 Y는 나처럼 서비스직보다 사무직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향을 지녔다. 카페에서 하는 일이 처음인 Y는 러쉬타임에 어떤 메뉴가 들어왔는지 정신이 없을 만큼 해내느라 버둥거린다. 나 또한 그 시기를 이 악물고 버티며 지나왔기에 이해한다. 서비스업에 맞는 인재가 세상에 정해져 있는 걸까. 경험이 쌓이면서 사람의 성향이 달라지는 건 아닐까.
바쁜 시간에 메뉴의 오류는 다음 주문까지 밀리게 만드는 신기한 힘을 발휘한다. 내가 일하는 카페는 메뉴가 프랜차이즈카페와 비교하면 많은 편도 아닌데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서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말은 심적인 부담감이 크게 작용한다.
카페를 열고 싶은 마음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매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요리하는 일을 아무런 대가 없이 즐거워하는 사람인가?, 나는 분주함 가운데 내 페이스를 잊지 않을 차분함을 가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