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겐 가닿지 못하는 마음의 소리들

받은 만큼만이라도 (잘) 일해주세요

by 김애니

나는 사장의 측근이라 직원 마음이 되기 어렵다. 인건비를 걱정하는 내 모습을 보면 백 퍼센트 사장 편이다. L이 나오지 않은 날, 나는 그와 단둘이 일했다. 그는 오픈조를 맡아 혼자 쏟아져오는 손님을 감당했다. 그는 카페를 차리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L과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한 그가 얼마나 전투적으로 일했는지 정신없는 테이블 위가 이야기해주었다. 드립백은 넘어져 있고, 영수증은 쓰레기통에 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에스프레소를 받는 벨크리머는 왜 물을 따르는 곳 위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걸까 이해하기 어려웠고, 뒤늦게 도착한 나는 그 모든 일을 수습했다.


오전 9시가 넘으니 손님이 뚝 끊어졌다. 나는 L이 하던 일을 주로 했다. 더치커피를 내리고 컵에 홀더를 끼웠다. 나는 넌지시 무인결제가 가능한 키오스크가 들어오면 L이 일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정된 사항이 아니라서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나는 반복해서 에둘러 변명했다.


평일 중 가장 바쁜 화요일 점심 장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에스프레소 샷만 담당하는 그에게도 핫과 아이스컵 그리고 스팀피쳐까지 넘겨졌다. 정신은 없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런 걸까. 우리는 L없이도 곧잘 해냈다.


하지만 아침 오픈 장사를 혼자 해낸 그는 아침에 혼자선 못하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그 말은 나에게 얘도 오래가진 못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어떤 부분에서 그랬냐면, 사장인 남편은 혼자 그 일을 1년 남짓 감당해왔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이 그렇게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100명의 손님을 혼자 받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50잔일까. 아니면 35잔일까. 아침에는 날씨가 쌀쌀해서 따뜻한 라떼류가 많이 나가서 힘들었음을 에둘러 표현한 걸까.


나는 고용주의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이 되곤 자주 곤란에 자빠진다. 일하는 카페는 사장이 자리를 비웠지만 대체인력 두 명과 함께 고군분투하며 돌아간다. 열심히 벌어도 6시간 30분 일하는 그들에게 7시간어치 비용을 지불하면 금세 통장은 텅텅 비어버린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텅 빈 통장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의 실수는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하는 걸까 의아하다. 혼자서 오픈을 감당한 그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실수의 타깃이 된 그 손님에게 실수를 했다. 여차저차한 설명을 늘여놓았지만 내 귀에는 다 변명처럼 들렸다. 왜 한 명의 손님이 귀한 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걸까. 자신의 가게 단골손님이면 그렇게 대했을까. 왜 그는 주구장창 나에겐 그건 얼마에 샀느냐 집착 아닌 배우려는 자세를 빙자해서 질문하는 걸까 되묻고 싶어졌다.


회사에 들어가서 자신이 차릴 미래의 사업을 꿈꾸며 배우려는 자세로 일하려는 마음가짐은 높이 산다. 하지만 적당히란 없는 걸까. 빼먹을 건 다 빼먹으면 그 후엔 재미가 없어서 그만둘 건가. 아무리 작은 구멍가게라도 어떤 제품을 돈 받고 팔거나 손님이 찾아오도록 만들기까지 시간과 돈과 맞바꾼 어떤 노하우를 홀라당 함께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져가도 괜찮은 걸까. 그런 직원 혹은 함께 일하는 사람은 어떻게 대하는 게 맞을까. 딴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니까 신뢰가 점점 옅어져 간다.


한 사람은 이 길 아닌 다른 길을 가서 열심히 하는 듯 보이지만 대부분 설렁설렁이고, 한 사람은 이 길을 가고 싶어서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는데 시키는 일만 한다. 나는 사람을 잘 볼 줄 모르는데, 왠지 잘 보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 본심은 그들이 탐탁지 않다. 고용하기 전에는 우리의 상황이 급박했고, 고용된 후에는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사장마인드, 주인의식, 소명 이딴 단어로 강요하고 싶지 않다. 돈을 받는다면 실수를 하지 말고, 제대로 할 일을 했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건 딱 그만큼인데, 그 제대로 원하는 기준이 높아서 나는 그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이렇게 애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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