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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척거리며 미끄러진 순간들

실비아 플러스 <에어리얼>

by 김애니



얼마나 멀까?

내 발에는 진흙이 묻어 있다,

질척거리고 붉고 미끄러져 내린다. 그것은 아담의 옆구리다.


- 실비아 플러스 <에어리얼> 중에서 그곳에 가기


1.

내 20대를 아는 친구와 2년 동안 매월 1달에 1권씩 시집을 읽고 있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시집은 실비아 플러스의 작품이었다. 유독 좋아하는 문장이 많이 나오지 않았던, 이상한 시 읽기 경험이었다. 이제 시 좀 읽는구나 싶었던 교만이 마음이 쏙 들어갔다. 여전히 시는 다른 장르보다 어렵다.


어디에 정신이 팔린 걸까. 돌이켜보면 돈 버느라 바빴다. 눈은 시집을 읽지만 정신은 돈 버는 일에만 팔려 있었다. 간절했고 절실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시집에 쓸 에너지가 당시에 없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힘을 많이 준 일은 잘 되지 않았고,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래도 위에 인용한 시는 가슴에 와닿았다. 왜 와닿았는지 의식의 흐름대로 몇 글자 적어보려고 한다.


2.
아담의 옆구리를 묘사한 문장이 꽤나 강렬했다.


질척거리고

붉고

미끄러져

내린다


이 문장이 아담의 옆구리라니. 내가 이런 표현을 잘하지 못해서 더 와닿았던 걸까. 그렇다기보다 아담의 옆구리를 평소에 전혀 생각해보지 않아서 저 구절의 임팩트가 컸던 듯하다. 기독교인 나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서 아담이 더 가깝게 느껴졌지만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 따먹은 것만 기억나지, 아담 자체를 궁금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마치 내게 아담은 신적인 존재다. 존재했다지만 한 번도 만나지도 못했고 카더라통신처럼 듣기만 했던 캐릭터다. 왜 아담의 옆구리는 질척거리고 붉고 미끄러져 내린다고 실비아 플러스는 표현했을까 궁금해졌다. 여성 작가인 그의 인생은 꽤나 흥미로웠다. 인생풍파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가 그였다면 글을 전혀 쓰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데, 험난한 인생사 와중에도 글을 써 내려간 게 자못 흥미로웠다.


진은영은 이어 “삶은 전자와 같은 비관적 버전 대신 후자의 낙관적 버전을 택하는 이들에게 궁극의 미소를 짓는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이의 삶은 이 두 가지 이야기 사이를 오고 간다. 절정에서 절망으로. 다시 절망에서 절정으로. 삶은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한다. 실비아 플러스의 삶도 그랬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읽은 실비아 플러스의 시집은 도가도비상도처럼, 유가 있어 무가 존재하는 것처럼 그걸 끊임없이 이야기해서, 현실이 그래서 더 구구절절 와닿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삶이 궁금했을 정도로 온전히 위 시집을 소화하진 못했다. 오래간만에 어려운 시집을 만났다.


3.

질척거리며 미끄러진 순간들


올해 내 시간을 요약하는 문구다. 무슨 일을 맡으면 몰입하고 몰두하는데, 그게 훅하고 빠져나가면 굉장히 깊은 허탈함을 느낀다는 걸 발견했다. 여러 번 나는 평생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방식이나 주제는 타인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맞춰져 있어서 늘 갭 사이에서 힘들었고 방황했다.


쓰는 사람이 작가라고, 평생 글을 쓸 거라고 무언의 다짐을 해왔다. 진실이었을까. 진심인가. 내가 굳게 믿고 있던 마음에게 되묻고 질문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4.

2024년 시집 리스트 중 내게 베스트는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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