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 맘짓] 서울 직장에 대학원 다녔던 상담자 이야기

운이 좋아서 광운대 상담복지정책대학원을 졸업한 이야기(후기)

by 낌새


올해 봄학기를 끝으로 상담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뒤미처 대학원 산하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학회 자격 수련 과정인 인턴십에 지원하여, 실제 상담 사례를 배정받고 초심상담자로서 한 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두 번째 내담자 사례로 공개사례발표를 마침으로써, 인턴십 첫 학기도 곧 마무리됩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우리 대학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여러 우연이 겹쳐서, 비과학적 표현으로는 우주의 기운이 도와서 정말 잘 맞는 대학원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저의 여러 문제도 해결하였고, 여전히 생계를 위한 직장에 열심히 다니면서도 스스로 상담자라고 인식하며 그런 소명의식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줄곧 이 과정의 특별함에 관한 글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상담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저와 같이 운이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광운대학교 상담복지정책대학원 상담심리치료학과는 이 분야에서의 평판에 비해서 정보가 제한적입니다. 어쩌면 대학원 과정이 녹록지 않아서(소위 빡세서) 선배 졸업생들이 펜을 들 여력조차 없었나 싶습니다(농담 반 진담 반).


또 다른 이유는 졸업이 가져오는 여러 상념들을 글을 쓰면서 정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3학 차를 마칠 무렵 두 동기 선생님들과 식사를 하다가 이 시간이 지나가는 게 너무 아쉽다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는데, 이런 복잡 미묘한 마음의 정체도 이번 기회에 탐색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평소에 남기는 만연식 글과는 달리, 내담자를 전문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사례개념화 양식을 일부 빌려와서 되도록 일목요연하게 담아보렵니다.


1. 광운대 상복원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내방경위)

직장 생활 중에 청소년상담사 3급을 취득하면서 상담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재작년에 이직한 곳이 대학 산하 기관이었고 마침 재직자는 등록금을 절반이나 감면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대학원을 염두에 둔 이직은 아니었는데, 참 운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광운대 상복원의 면접은 예비 상담자의 전문적 자질보다는 인간적 자질을 우선하기에, 유료 컨설팅이 합불 여부에 개입할 가능성도 낮았습니다(일부 상담대학원은 입시를 위한 사설 유료 컨설팅이 이루어지기도 함). 4학 차 제지만 보통의 5학 차 제보다 더 많은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밀도 높은 과정에 어떠한 동기로 얼마나 성실히 임할 것인지를 진솔하게 나누는 면접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1학 차 때는 커 보인 동기 선생님들 사이 사전 지식이나 경험의 폭이 4학 차 무렵에는 상향 평준화됨으로써 모호하게 좁혀졌습니다.


2. 대학원 과정을 통해서 해결하고 싶은 문제 또는 충족하고 싶은 욕구는 무엇이었나요? (주호소문제)

이런 우연이 작용하였다 하더라도, 굳이 왜 하필이면 그때-거기를 선택하였는가를 따져보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무엇보다 상담을 제대로 배워서 좋은 상담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석사 학위 취득이 목적이었다면, 더 가깝고 덜 수고로운 솔직한 말로 돈만 내면 적당히 사정을 봐주어 쉽게 졸업할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먼 길을 돌아서 다시 결정한 상담자의 길에 어영부영 설렁설렁 들어서고 싶진 않았습니다. 학업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교수님들의 연구와 저서를 찾아서 읽었습니다. 특히, 대상관계이론의 골자를 비전공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관계의 힘을 키우는 부모 심리 수업>을 감명 깊게 탐독했습니다. 학부 가족상담 수업에서 얕게 접한 대상관계이론을 더 깊게 배우고 싶었습니다.


한편, 직장이나 일상에서 만나는 관계가 피상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셰어하우스에서 밤을 새워가며 나누던 사적인 대화에서도, 중요한 정책을 의사결정 하기 위한 회의에서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과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반면, 청소년상담사 자격 연수에서 또는 배우자와 함께 한 부부상담에서는 몸과 마음으로 깨닫고 느끼는 충만함이 있었습니다. 저에겐 그런 순간(아마도 참만남; Encounter)을 더 자주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 삶에서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담대학원에서 전문성을 쌓고 학회 자격 취득을 위해서 수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원에 지원할 당시에는 이런 인간적인 성장 욕구에 더 목말랐습니다.


3. 그런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었나요? / 어떻게 드러났나요? (촉발사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직장 경험을 위해서 상경하며 처음 지낸 곳은 고시원이었습니다. 그곳은 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이나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보았듯이 사적 관계로부터 필사적으로 철수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몇 개월 뒤,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셰어하우스로 옮겼고 결혼하기 전까지 5년간 총 세 곳의 셰어하우스에서 지냈습니다. 셰어하우스에서 지낸 배경에는 보증금 절감이나 운영 주체인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있겠지만, 돌이켜 보면 공동체에 소속되어 좋은 관계를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셰어하우스에 지내면서 저는 겉돌기도 하고, 지나치게 관여하기도 하였으며,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피상적으로 지내는 단계에도 이르렀습니다. 독서모임이나 자치회 등에 앞장서면서 입주조합원들과 교류하려는 욕심이 치솟던 어느 날, 우리가 서로 더 잘 이해하려면 저마다 거슬리는 면들이 원가족의 어떤 면과 비슷한지까지 나누어야 한다고 무리하게 주장하였다가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집단)상담에서 다루어야지, 주거공동체에서 다루기에는 부담스럽고 부적절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고 싶다니, 나는 정말 상담이 하고 싶구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욕심을 품은 사람들과 깊게 어울리고 싶구나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애먼 데서 질척대지 말고 상담을 해야 했습니다.


4. 문제를 해결하거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대학원 과정에서 어떻게 대처/노력했나요? (대처방식)

대학원 첫날 참여한 오리엔테이션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권경인 교수님께서 우리 대학원을 코로나에도 장사가 잘되는 집(식당)에 비유하면서, 상담 명문을 지향해 왔고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내심 선전 구호는 실제의 반대(롤랑 바르트의 주장)일 수 있다고 되뇌며 의심을 품었습니다. 혹여나 나중에 실망할까 봐 기대를 낮추고 싶었을 텝니다(이런 방식으로 타인이 나를 실망시키도록 유도하며 살아왔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수업에서는 상담자로서 성찰하는 과제(Reflection Paper)가 자주(거의 매주) 주어졌는데, 과제를 하는 학생보다 그걸 실제로 읽고 꼬박꼬박 코멘트를 남겨주시는 교수님들의 정성이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이런 교수님들의 열정이 저에게도 전달되어 점차 의심을 거두고 동기화되었습니다. 마치 상담에서 치료적 동맹을 맺듯이, 어쭙잖게 간보지 말고 진심으로 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지금까지 사용한 제대로, 좋은, 진심으로와 같은 가치독점적 수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부연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차 상담심리치료 전공은 23명, 가족·청소년·조직상담 전공은 8명이었습니다. 전공 또는 학과별로 2년 동안 같은 수업을 듣는 데다가 집단상담이나 사이코드라마와 같이 자기 개방을 요하는 실습까지 함께 하면서 서로 깊게 관여하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다양한 구성원에게 비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진솔하게 표현하는 경험이 마치 장기적 집단상담 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얄롬이 집단상담의 치료요인으로 제시한 일차 가족 집단의 교정적 재현이 대학원 집단에서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부수적인 역동을 피하지 말고 맞닥뜨리자는 게 진심으로 임하자는 다짐이었습니다. 그리고 과제나 발표, 실습 등 모든 과정에서 요령 피우지 말고 몰입하자는 게 제대로좋은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5. 그 과정은 효과적이었나요? (대처의 효과성)

일-생활에 더하여 공부까지 병행하며 삶의 균형을 잡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흔히 일반대학원이 아닌 특수대학원이라고 하면 직장인의 사정을 고려해서 정규보다 수업시간을 단축하고 과제도 적고 출석 대체도 다반사인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곳의 실상은 정확히 반대였습니다. 수업이 열리는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유연근무제를 활용하여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다섯 시에 학교로 향했습니다. 수업은 어김없이 밤 10시 40분에 끝났습니다. 공개사례발표 참관을 위해서 연차도 소진했으며, 휴일조차 실습이나 과제로 온전히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주어진 과업에 몰입하고 맞닥뜨리며 학기를 마칠 때마다 분명히 배우고 성장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점차 과업의 양이 늘고 난이도가 높아졌음에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이건 교육과정이 그만큼 체계적이라는 방증이겠습니다. 게다가 이 과정이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않았습니다. 상복원에는 변태들만 모아놨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듯이, 쩔쩔맬수록 좋은 상담자가 되고 있다는 감각이 더불어 따라오는 듯했습니다.


6. 대학원 과정을 전후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성과)

대상관계이론을 더 깊게 배우고 싶다는 바람은 상당히 이루어졌습니다. 내담자를 깊이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론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인턴십 과정에서 초심상담자임에도 사례개념화 특히, 내담자 이해를 잘한다는 피드백을 여러 동기 선생님들과 함께 받곤 합니다(재수 없는 소리를 뻔뻔하게 잘하게 된 점도 중요한 성과). 그럴 때면 손에 잘 맞는 무기가 생긴 듯이 든든하고 뿌듯합니다.


대상관계이론과 집단상담으로 알려졌고 관련 수업이 전체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실제로 높지만, 여러 교수님들께서 공통적으로 특정 이론과 기법에 연연하지 않는 통합적 관점을 강조하십니다. 전통적인 이론을 배우면서 기본을 다지는 가운데 매월 열리는 콘퍼런스를 통해서 다양한 분야를 접하였고, 점차 주이론이나 기법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특히, 4학차 상담사례 실습 및 지도 수업에서는 접수면접과 슈퍼비전을 실전처럼 해보았는데, 그동안 배운 것들을 집대성해서 사례에 알맞게 응용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관점을 대입하면서 더 공부할 바를 인식하고 스스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회 자격 수련과 함께 수용-전념 치료(ACT)와 게슈탈트 상담과 관련한 워크숍이나 집단상담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능동적으로 방향을 설계하고 독립과 의존을 안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담자로서 자율성이 높아졌다고 자부합니다.


동기 선생님들과는 좋은 상담자의 길을 함께 걷는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습니다. 학회 자격 수련이나 국가자격증(청소년상담사, 임상심리사) 공부를 하면서 정보를 나누거나 정서적으로 지지하기도 하고, 일부는 미래에 협동조합 등 단체를 결성하기 위한 논의도 나누고 있습니다. 다른 글로 남겼듯이, 타인들 앞에서 울 수 있게 되었고 전적으로 부정적이었던 기억 속에서 감사한 면을 발견하는 등 저를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힘(연대감)도 강해졌습니다.


이렇게 술회하고 보니, 상담자로서 인간적 자질과 전문적 자질 모두 뚜렷하게 발달하였음을 실감합니다. 이 길에 함께 한 분들께 감사합니다. 끝으로, 마침 상담자의 길목에서 이 글을 접한 분이 있다면 참 운이 좋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궁금한 점을 남겨주시면 성심껏 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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