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 맘짓] 10인의 목격자와 몸짓언어로 알아차림

사이코드라마 수업과 게슈탈트 체험집단을 처음 경험한 이야기

by 낌새
<Microsoft Bing Image Creator(AI)로 생성한 이미지>


욕구는 첫 몸짓들을 유발했고, 정념은 첫 목소리들을 토해내게 했다 - 루소



몸짓언어와 집단상담


 이번 학기엔 사이코드라마 수업을 수강했는데, 4일간 실습과 시연 위주로 진행되었습니다. 또, 외부에서 열린 게슈탈트 체험집단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역시 4일간 집단원 경험을 했습니다. 온전한 주말이 없는 학기를 보내며 일과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하기 퍽 버거웠음에도, 분명히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집안일에 소홀했던 저를 감내한 배우자의 공이 큽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이론 요약, 경험보고서 그리고 실습 축어록 과제까지 주어졌지만 게슈탈트는 기록할 강제성이 없다 보니, 경험이 휘발한다는 집단원의 말씀을 명분 삼아 바삐 붙잡아두려 합니다.


 사이코드라마를 창시한 모레노는 천편일률적인 인간성을 보통증(normosis)이라는 표현으로 꼬집으며, 진정한 인간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자발성창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과 천사를 흉내 내었던 어린 시절 소꿉놀이에서 착안한 역할극(역할놀이)은 당대 주류였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여러모로 대척점에 섭니다. 그는 언어로 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사람들이 다시 꿈을 꾸게 하겠노라 선언했습니다. 언어가 아닌 신체를 사용해야만 잉여현실(무의식)과 접촉할 수 있다는 주장이 생경했는데, 지난 실습과 시연을 겪으며 몸짓의 효과성을 상당히 납득했습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집단상담의 원형으로서 여러 이론과 기법에서 차용하고 변주하는데, 게슈탈트에서 강조하는 지금-여기 개념, 신체자각빈 의자 기법 등도 사이코드라마의 그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신체가 경직되었고 감정 접촉이 어려운 편인 제 관점에선 사이코드라마가 매운맛, 게슈탈트가 순한 맛 버전인 같은 회사 제품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펄스의 게슈탈트는 통합이 특징인 이론답게 언어자각해석도 중요하게 다룬다는 면에서 차이도 뚜렷합니다.


 이번 게슈탈트 집단상담 지도자는 우리 부부의 상담자로 뵈었던 교수님인데, 전문상담교사인 배우자가 직장 연수에서 모셨고 이후 체험집단과 워크숍(지도자 과정) 그리고 개인상담을 받아오며 존경해마지 않는 분입니다. 저 역시 두 회기 부부상담을 받으면서 통찰과 안정을 얻었고 나아가 마음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결심에도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몇 해 전부터 집단에 참여하고자 관심을 두던 중에 사이코드라마 실습을 마친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일정이라 드디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표현하지 못한 정념


 지난 학기 집단상담 수업 실습에서 감정 접촉이 어렵다는 주제를 선택했지만, 주인공 작업은커녕 다른 집단원과의 역동(공동 작업)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앞선 집단상담 수업에서 교수님은 눈물을 끅끅 참다가 엄마가 나타나서야 비로소 실컷 울어재끼는 아이를 비유로 들며, 인간은 홀로 있을 때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목격자 앞에서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못하는 내 앞에서 과연 내담자가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실습을 마치고 실패 경험을 가방에 담으려던 차에, "감정에 접촉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으라고 하지 않겠다. 그동안 애 많이 쓰셨다."라는 최종 피드백에 울음이 터졌습니다. 타당화(validation) 개입이 자기 수용으로 이어진 버저비터였습니다.


 이후로 몸과 맘이 공히 전보다 말랑해졌다고 느끼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기준입니다. 여전히 초심 뚝딱이인 저에게 선택과목인 사이코드라마를 수강신청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습니다. 집단에서 춤을 추기도 하는 등 몸을 쓰는 워밍업 시간이 정말 괴로웠고, 주인공을 위해서 힘껏 소리쳐주지 못하는 저의 한계를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디렉터 역할이나 소시오드라마 경험은 무척 재밌었고, 사이코드라마를 원형 그대로 수련해서 활용하진 않을지라도 집단에서 적절하게 응용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심어졌습니다. 무엇보다 강렬한 감정 표현에 대한 맷집을 기르는 홍수법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주인공 역할을 하면서는 학부 때 겪은 폭행 사건 후 이를 무마하던 교수님과 가해자를 보조자아로 두고 표현하는 장면을 다루었고, 일주일간 여운이 있었습니다.


 이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는 두통과 빗장이 풀린 눈물샘으로 드러났습니다. 한 번은 동기 선생님 두 분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도 울었는데, 그런 제 모습이 무척 낯설었습니다. 그러다가 임종이 임박한 표징으로 실금(失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인간 그리고 많은 다른 동물들은 성장하면서 배변을 통제하는 학습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적절한 상황에서만 배변을 하게 됩니다. 즉, 배변 활동은 불수의적이다가 차차 수의적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다시 임종이 가까워지면 불수의적 영역으로 돌아가는 생리입니다. 눈물도 그렇습니다. 저는 눈물을 과도하게 억압하는 학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흘려야 할 때조차도 흘리지 못한 눈물이 오래 쌓였던 겁니다.



10인의 목격자들


 게슈탈트 체험집단은 지난 집단상담이나 사이코드라마 실습과 달리, 기존에 관계가 없던 타인들과 진행하는 첫 경험이기에 자기 개방 수준이나 역동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집단상담 실습은 반구조화였던 반면에 이번 게슈탈트 집단은 비구조화로 진행되었습니다. 첫날부터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개방이 빠른 속도로 오고 갔는데, 지금-여기에서 알아차리는 주관적인 지각을 중심으로 발화하는 규칙을 형식지가 아닌 암묵지로 이해했습니다. 첫날엔 가난을 주제로 조심스레(피상적으로) 개방하며 감정이 고조되다가 장을 마쳤습니다. 이 잔상이 일주일간 이어졌는데,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 회기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마음을 견디며 모닝 그라운드에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날은 소극적으로 임했는데, 아마도 낯선 10인의 집단원들이 저를 믿지 못할 거라는 지각이 작용했을 겁니다. 물론, 이런 지각은 제가 아직 집단원들을 믿지 않는 마음을 투사한 결과일 겁니다.


 리더는 개입과 해석을 최소화하고 집단원 간 역동에 대한 지각을 표현할 때마다 "N분의 1"을 강조함으로써 의미를 가중하지 않도록 당부하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집단원은 리더와의 이자관계에서 전이동맹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텐데, 리더는 자신의 전이(집단원에 대한 가족관계 투사)나 정치성향 등을 허심탄회하게 개방함으로써 한 명의 집단원으로 존재하고자 노력하는 듯 보였습니다. 또, 신사적이지만 재치 있는 유머도 적재적소에 구사하였는데, 과장하기직면을 내포할 때도 있었습니다. 상담자를 전적으로 좋은 대상인양 우상화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하지만, 상담자의 인격이 그 자체로 큰 치료적 요인인 도구라는 점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누구의 피드백이 가장 마음에 남나요?"라는 질문의 의도와 달리, 지목받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곤 했습니다. 다른 집단원이 아니라 리더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런 응큼한 마음이 부끄러워서 몰래 억눌렀음을 고백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외피를 두르지 않은 감정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전 집단상담 실습에서 경험한 버저비터 이야기로 이어지며 울먹였는데, 이때 집단원들의 공감이 외피 없이도 따뜻하게 수용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감정이 고양될 때 충분히 가라앉히고 나서야 다음 말을 이어나갔는데, 그러지 않고 계속 표현하는 경험도 귀했습니다. 직설적인 감정을 마주하면 느껴지지 않고 분석하는 패턴이 있었는데, 이것이 마치 '해리' 같다는 피드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정을 수용하지 않은 채 섣부르게 하는 말들이 타인에게는 공감이 아닌 평가나 해석으로 오해받기 좋았겠다는 통찰이 연결되며 개운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문헌

최헌진. (2010). 사이코드라마 이론과 실제(2판). 학지사.

장 자크 루소. (2002).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주경복, 고봉만, 역). 책세상. (원본 출판 17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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