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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애희 Jun 30. 2024

요하네스 베르메르_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N번째 진주

요하네스 베르메르_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Meisje met de parel) 1665년 경

아름다운 갈색머리!

언제부터였을까? 내 머리카락은 밝은 갈색으로 물들어갔다. 주변 사람들은 밝은 색이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하지만 점점 밝아지는 내 머리카락에는 이유는 따로 있다. 어느 순간부터 흰 머리카락이 꽤 많이 늘어났다. 흰 머리카락들이 내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염색을 시작했다. 작년보다 더 빨리 찾아온 더위도 이겨내고, 상큼한 변화도 주고 싶어 오랫동안 길렀던 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했다. 먼저 염색약을 바르고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화학반응이 진행되는 동안 잡지책을 펼쳤다. 미용실에서 보는 잡지는 참 재미있다. 얼마 전에 방문했던 <갤러리 SL> 관계자의 기사가 나와서 더 흥미로웠다. 드디어 샴푸 시간,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던 몸을 샴푸 의자에 눕혔다. '아, 편하다.' 두피 마사지와 함께 머리 구석구석 깨끗하게 감겨주는 미용사의 손길에 피로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샴푸가 마무리되었고, 미용사의 안내에 따라 커다란 거울 앞 커트용 의자에 앉았다. 그곳에는 나를 환하게 비춰주는 조명이 있었다. 거울 속에는 평소보다 더 하얗게 빛이 나는 얼굴에 진주 귀걸이를 한 내가 있었다.     


스포트라이트(spotlight)

나만을 비춰주는 조명을 받은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내가 태어나던 순간으로 돌아갔다. 사실 기억이 날 수 없는 장면이지만, 내가 아기를 낳던 순간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다. 그 순간이 내 생애 최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날 품에 안은 엄마, 아빠의 삶 속에서도 가장 빛이 나는 순간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뽀오얀 얼굴에 볼이 복숭아처럼 붉었다는 엄마의 얘기를 조합해 보면, 아기였던 나는 자체 발광했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동생들이 하나, 둘 생겼고 나는 언니가 되어 유치원이라는 사회에 첫발을 내밀었다. 그때 빛이 나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프란치스카유치원 백합만 ‘나앵금’ 선생님이셨다. 나에게 ‘나앵금’ 선생님은 <천사들의 합창¹> 속 ‘히메나’ 선생님 같았다. 긴 머리에 원피스를 입으셨고 하얀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있었다. 친절했던 선생님의 영향이었을까? 나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선생님으로 8년 근무를 했고, 그 이후 유치원 원감으로 일을 하며 ‘유치원’이라는 장소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국민학교² 1학년 여름방학 때 나에게 빛이 나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녀는 주인집 언니였다. (그때 우리 집은 주인집 주택 대문 옆에 있는 상하방³에서 살았었다.) 그림일기 숙제로 고민 중인 내게 "상황을 다 그려도 좋지만, 주제만 크게 그리는 것도 방법이야!"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상황을 그리고 싶은지 묻던 언니는 수박 한 조각을 크게 그려서 내게 보여줬다. “유레카!” 미술시간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언니의 말 한마디는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의 틀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 준 빛나는 순간이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강창제 담임선생님은 칠판 왼쪽 끝부분에 풍경 사진을 붙여놓고 쉬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셨다. 그림을 그리던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후광이 비췄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예술을 동경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린 시절 나에게는 내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던 순간과 함께 누군가에게 빛을 받았던 순간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의 삶에 빛을 주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잠시 흥분된다.      


(pearl)

진주조개는 몸속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그것을 없애기 위해 이물질을 탄산칼슘으로 계속 뒤덮는다. 이때 덩어리가 생기는 데 이것이 바로 진주다. 우리가 아름답다 느끼고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는 진주는 결국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진주조개처럼 나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고민과 선택, 그리고 결정의 순간들이 있었다. 10살, 내 삶에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국민학교 2학년 가을에 이사를 갔고, 3학년 때 가까운 두암 국민학교로 전학을 갔다. 조용히 학교생활을 했던 나에게 전학은 스스로 성격을 바꿀 만큼 큰 고난이었었나 보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낯선 환경에서 낯선 친구들과 적응하려면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변신해야 함을 알았던 것이었다. 그 선택은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모습으로 진화를 했고, 이것은 나의 첫 번째 진주가 되어 내 삶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제 나의 진주를 밖으로 꺼내고 싶다. 나의 진주를 아낌없이 꺼내, 문화 예술 강사로 수원시에 있는 초등학교 교실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의 빛을 주고 싶다. 나의 진주를 아낌없이 꺼내, 유아동 예술교육가로 꼬물꼬물 한 아이들의 반짝이는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원할 때마다 꺼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틈틈이 진주를 만들고 싶다. 싱그러운 풀잎 향을 느끼며 산책을 하거나 마음을 키우는 시간을 갖으며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만의 N번째 진주를 만들 것이다.


1) 천사들의 합창은 1989년에 멕시코의 텔레비사(TELEVISA S.A.)가 제작한 어린이 드라마로,  1989년 10월 ~ 1991년 7월에 미국의 중개 업체를 통하여 배급되어 KBS 2TV를 통하여 방송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생소한 멕시코산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2) 국민학교는 초등교육기관으로 1996년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명칭을 '초등학교’로 변경했다.

3) 상하방은 두 개의 방이 서로 붙어있고 하나의 문으로 통하는 방으로, 한쪽 방은 외부와 통하는 문이, 다른 한쪽 방은 주방이나 다른 용도의 곳으로 통하게 되어있습니다.     


#요하네스베르메르 #1632년~1675년 #네델란드화가 #진주귀걸이를한소녀 #스포트라이트  #N번째 

#진주 #펄 #살롱드까뮤 #공저모임 #그림에세이 #그림으로글쓰기 #도슨트전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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