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카유보트_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1877
파리에 거리에 생명력 불어넣기
가을비다. 집을 나설 때 가볍게 내리던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차가워져 나에게 '가을'이 왔다고 알려준다. 흙냄새가 살포시 올라오며 대자연이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여기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작품 속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 어두운 색 우산을 쓰고 안개로 자욱한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초겨울 아니면 초봄 같다. 퇴근시간일까? 사람들을 살핀 나는 거리를 살폈다. 새롭게 만들어져 반듯하고 서로 닮은 건물들, 깔끔한 초록 페인트칠이 된 가로등, 비를 머금고 있는 질서 정연한 차도(마차가 다니는 곳)는 나에게 허전함을 주었다. 1877년 그려진 파리의 거리는 각자만의 길을 걷는 사람들로 분주해 보이지만,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 비 오는 날의 흐린 하늘을 닮았다.
무엇이 이런 공허함을 줄까? 생각해 보았다. 이 거리에는 아이가 없다. 나무도 꽃도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든 건물, 길, 우산, 마차가 있을 뿐이다. 난 종종 텅 빈 놀이터를 볼 때 놀이터가 생명력을 잃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방학 끝 무렵 새 학기 맞이를 위해 찾은 텅 빈 유치원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놀이터와 유치원은 아이들이 있을 때 비로소 살아나는 경험을 한 나는 파리의 거리에서 시들어있는 생명을 마주한 것일까? 머릿속으로 파리의 거리 곳곳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보았다. 빗방울을 발로 톡톡 치며 노는 아이, 우산을 빙그르르 돌리며 길을 걷는 아이도 그려보았다. 이제야 이 거리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도심개조, 파리
지금 우리가 보는 파리는 나폴레옹 3세 때 파리 도심 개조사업(1853-1870)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좁은 골목길을 뒤엎고 직선의 도로를 만들어 어디서든 접근 가능하게, 건물을 획일화하여 정돈된 느낌으로 만들었다. 공원(블로뉴 숲 공원, 1852-58년 조성)과 하수도 시설을 구축했다. 거리에 없던 자연을 공원 안에 넣은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에 일본 작가 유이치 히라코에 대한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그가 런던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 사람마다 자연을 보는 관점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리젠트 파크에 갔는데 친구가 거기서 '역시 자연이 좋구나!' 감탄했다고 한다. 유이치 히라코는 '공원이 자연이라고?' 공원은 인공적인 자연이라 생각해 왔던 작가는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중앙일보 2024.01.09. 참고)
다시 파리로 돌아가 보자. 그 이후 20세기 초 유럽은 옛날의 좋은 시절이라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1871-1914)로 불리며 예술과 문화도 부흥하며,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기를 보냈다. 도시환경의 개선, 자본주의의 상징인 오페라 지역의 파사주(1868년 경), 갤러리 라파에트 백화점(1912년)처럼 점차 중산층을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 당시 돈과 시간이 많았던 사람들이 목적 없이 거리를 다니며 관찰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 어릴 적 서울에 가면 '우와!'를 연발하며 높은 건물에 두 눈이 휘동 글해졌던 내가 떠올랐다. 귀스타브 카유보트도 1877년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작품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도시 파리의 거리를 담으며 그 시대를 풍미했을지도 모른다.
계획도시, 수원
19세기 후반에 파리 도심 개조사업이 있었다면 내가 사는 수원은 조선 22대 정조대왕 때 정조 효심이 담긴 조선 최초의 계획도시(1794년-1796년) 수원화성이 있다. 팔달산과 수원천이 흐르는 곳에 지어진 수원화성은 정조와 실학자들이 지은 성곽이다. 자연과 어우러지게 지어진 수원화성은 정조의 통치 이념과 예술성, 과학, 경제까지 선조들의 지혜로움으로 건설되었기에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런 사실보다 2005년 결혼 후 수원에서 지내기 시작한 나에게는 수원화성은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었다. 수원에서 살기 전까지 난 수원화성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역사 수업 시간에 배우긴 했을 텐데, 내가 직접 가 보고 기억에 남는 성은 낙안읍성 하나뿐이었다. 2006년 유치원 아이들과 견학으로 화성 행궁 뒤편 팔달산에서 화성열차를 타고 연무대에서 내렸다. 화성열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나는 아이들과 같이 '우와~! 멋지다!' 감동의 반응을 보였다. 아니, 어쩌면 내가 더 많은 감탄을 했을지 모른다. 성곽을 따라 난 길은 자연과 동무해 걸을 수 있었고, 화홍문의 일곱 문으로 흐르는 수원천 또한 아름다웠다. 화성열차의 종착지 연무대에서 내린 후 또 한 번 놀랬다. 길 건너편에 보이는 창룡문(그때는 준 이름을 알지 못했다.), 창룡문과 연무대를 잇는 성곽, 성 안과 성 밖을 도로로 내어준 사다리꼴 터널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마저 주었다. 유치원에서 견학을 다녀온 나는 그 감동을 가족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시댁 어른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셨을 때 모두 모시고 수원화성에 갔다. 유치원 견학코스 그대로 재현했다. 아는 게 그것밖에 없었던 나는 짧은 코스지만 신이 나서 모두에게 수원화성에 대해 설명을 했다.
기억 속에 내재된 행복은 나를 적극적인 수원시민으로 이끌었다. 18년째 수원에 살고 있는 나는 내 이름 앞에 다양한 수식어를 넣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 도슨트, 수원특례시 청개구리스펙 문화예술강사, 수원문화재단 CA 유아동예술교육가! 모두 배움과 가르침으로 통하는 길이다. 초등학교 교실을 찾아 수원 문화를 알려주고 예술 수업을 하며, 곧 수원시 내 어린이집 아이들을 찾아 <작은 돌의 화성 모험> 수업을 할 것이다. 잘 정돈됐지만 딱딱한 파리의 거리보다 구불구불한 수원화성의 거리처럼 아이들과 말랑거리는 소통을 해보고 싶다.
그림을 보며 떠올렸던 글 소재들
제주도에서 트릭아트에서 봤던 그림
우산 (이 시대의 우선은 모두 검정, 어두운 색? 내가 좋아하는 우산은? 아이들 가방에 있는 우산)
어릴 적 비 오는 날
파리 거리의 울퉁불퉁한 돌
우리나라 궁에서 볼 수 있는 울퉁불퉁한 돌(미끄러지지 말라고 눈부시지 말라고 조상님들의 지혜)
양갈래 길
인도와 가로등
1877년 우리나라는?
책 <1900년 파리, 조선청년 허의문> 김준기 역사소설
귀스타브 카유보트_프랑스 화가
1848.8.10 ~ 1894. 2. 21
프랑스 초기 인상주의 화가
사실주의 화풍 영향받음
부유한 가정, 경제적 여유, 후원자
인상주의 작품 전시회 후원
모네, 피사로, 르느아르 등 성공하지 못한 화가들의 작품 매입
https://youtu.be/zvD4PYYuqNA?si=acGh_injY7C6i1x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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