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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애희 Oct 22. 2024

숲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Lost in thought 111, 2023_유이치 히라코

유이치 히라코, Lost in thought 111, 2023, acrylic on canvas,130x160cm. [스페이스 K 2023.11.16 - 2024.02.04]

숲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윌라! 오늘은 숲 속 탐험 하러 가자.”

“난 숲 속 친구들이 놀라지 않게 변신을 해야겠어.”

단풍잎처럼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작은 나무 가면으로 변신 완료! 


“어때! 내가 사람인지 모르겠지?”


지구의 모든 동물들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난 그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나는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 주는 동물 치료사다. 사람과 함께 사는 반려 동물들을 치료하다 문득 병원을 찾지 못하는 동물들을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난 가방을 꾸렸다. 치료 도구, 약, 생명수, 약간의 간식, 따뜻한 담요 등 어느새 가방은 볼록 해졌다. 동물들이 좋아할 간식은 숲에서 찾기로 했다.     


"윌라! 준비 됐지?" 신발 끈을 꽉 조여 맸다.

"가는 길에 도토리를 많이 줍자. 네 간식은 가방 속에 있어." 난 잠시 윌라와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지었다. 

나무로 변신한 나는 피톤치드* 범벅이 되어 자연과 하나가 된듯했다. 

커다란 자루에 도토리를 담으며 한참 동안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물의 정령이 사는 숲.     

우리는 물기를 머금은 파란 나무들 사이에 멈췄다.

"윌라! 이쯤이면 아픈 동물들을 살필 수 있겠지?"

우리는 주워온 도토리를 쌓으며 위로 올라섰다.

"잘 살펴봐. 다친 친구나 아픈 친구들이 있는지."     

나는 윌라와 함께 한참을 둘러보았다.     


숲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짙은 포도색 그림자가 드리운 땅이 보인다.     

"윌라! 서쪽으로 가보자!"

도토리는 배고픈 동물들을 위해 두고, 우리는 서둘러 서쪽으로 출발했다.


물의 정령이 사는 숲을 벗어나자 가시덤불이 가득하다. 

겨우 빠져나온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멀리 보였던 짙은 포도색 그림자는 불길이 지나 간 후 남긴 자욱한 연기와 작은 불꽃들이었다. 


최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등으로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불길이 솟구치고 있다. 

이 숲에서도 불이 났던 것이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꺼져가는 생명들을 붙잡고 생명수를 한 모금씩 나눠주며 상처를 치료했다. 

윌라는 약간이라도 허기를 채울 수 있도록 도토리를 나눠주었다. 

가방에 있던 치료 도구와 약이 바닥날 무렵, 윌라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윌라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빛은 어느새 검게 그을린 땅을 초록으로 만들었다. 

시들어가는 생명에게는 심장박동을, 다치고 그을린 피부에는 건강함을 불어넣어 주었다.     


"윌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윌라가 방긋 웃으며 속삭인다.

"널 만나서, 내 힘이 되돌아왔어." 

"동물을 사랑하는 너를 돕다 보니, 약해졌던 내 힘이 돌아왔나 봐."


윌라는 생명을 살리는 고양이 정령이었는데, 환경오염으로 그 힘이 많이 약해져있었다고 한다.      


어느새 우리는 초록으로 무성해진 나무 정령의 숲 한가운데 서있었다. 

윌라에게서 뿜어 나오는 빛은 동물친구들을 끌어모았다.

가방에 잔뜩 들어있던 도토리 간식을 모두 꺼냈다. 

모두 함께 즐거운 간식 시간이었다.       

내가 동물 친구들을 도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윌라, 널 만난 건 행운이야!”

우리의 숲 속 탐험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지구를 지키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피톤치드: 피톤치드는 나무와 식물이 내는 특별한 향기로 나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요. 우리가 숲에서 맡으면 기분이 좋고 건강에도 좋아요.



# 트리맨과의 재회

지난 1월, 살롱드까뮤 지현샘을 통해 유이치 히라코 작품을 처음 만났다. 사슴뿔을 달고 있는 나무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 일명 '트리맨'. 숲 한가운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트리맨을 기억한다. 어두운 밤하늘과 다르게 알록달록 꽃이 가득했던 언덕에 있던 트리맨. 이번에는 숲 한가운데 도토리 탑을 쌓고, 그 위에 올라선 트리맨을 만났다. 옆에 귀여운 고양이까지 함께 한 작품을 마주하며, 나는 꿈꾸듯 동화 속으로 떠났다. 이야기를 짓다 보니, 내가 관심 갖고 있던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제로웨이스트, 자연과의 공존 등과 연관 지어짐을 알아차리고 혼자 웃었다.      

<어린이가 이끄는 미래 여행>이라는 큰 주제로 유아들과 환경 수업을 했었다. '어린이가 이끄는 미래는 어떤 곳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시기에 다시 만난 유이치 히라코의 <Lost in thought > 작품은 나에게 특별한 작품이 되었다.

      

# 어린이가 이끄는 미래를 위해

런던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사람마다 자연을 보는 관점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리젠트 파크에 갔는데 친구가 거기서 '역시 자연이 좋구나!' 감탄하더라. 공원이 '자연'이라고? 

저는 공원이 '인공의 자연'이라 생각해 왔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그때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우리는 항상 자연과 함께 해왔지만 각자 다른 관점으로 모호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지금 우리가 각자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또 우리 주변의 자연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물으며 15년째 작업해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_ 중앙일보 2024.01.09.     

유이치 히라코는 15년째 자연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기후위기", "지구 온난화"를 외치는 지금, '우리도 10년 전, 20년 전부터 환경의 소중함을 알고, 지키고 보호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유이치 히라코는 작가가 환경운동을 하는 그 누구보다도 대단해 보였다. 국민학교 시절(1980년대 후반) 처음 '산성비'*라는 언어를 접했다. 산성비에 맞으면 쇠도 부식되고, 머리카락도 빠진다며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의 나는 '산성비는 무서운 거구나!' 1차원적인 생각만 했다. 지금은 미세먼지, 황사, 미세플라스틱, 점점 더워지는 날씨 등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제는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 수많은 위협 요인들을 무섭다고 피할 수만 있는 때가 아니다.     


어린이가 이끄는 미래를 위해 나부터 변해야겠다.

편안함과 타협하며 사용했던 일회용품들, 플라스틱 제품들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 

아이들은 미래다. 

이제는 아이들이 살 미래를 위해 변화해야 할 때이다.

그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어른으로 행동해야 할 때이다.     


*산성비: 산성비는 나쁜 물질이 비에 섞여서 내리는 거예요. 이 비는 나무와 꽃을 아프게 하고,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줘요.


#유이치히라코 #Lostinthought111 #자연을바라보는작가 #트리맨 #기후위기 #지구온난화 #내가만든동화 #환경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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