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양치를 하다 오른쪽 아래의 금니가 아팠습니다. 오늘이 가장 저렴하다는 치과라고 하니 곧바로 병원에 가보았어요. 씌운 금니를 열어봐야 한답니다. 덜컥 겁이 났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10년이 넘는 세월을 저와 함께 한 치아였거든요. 씌운 금 크라운을 벗겨 내어 보니 치아 깊은 뿌리까지 썩어서 이를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젊은 30대에 임플란트라니요. 좌절도 잠깐, 바로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누구보다도 치열한 20대를 보내왔고 수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삶에서 배운 것이 정말 많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이 성장해서 조금은 어른다워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로 34살이 된 저는 여전히 상처받고 이겨내는 일이 두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점점 익숙하고 안정적인 것을 좇고 있더라고요. 사실 그동안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금니 걱정을 안 한 건 아니에요. 너무 오래되어서 지금쯤이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지금 당장 아프지 않으니 애써 외면해 왔던 것 같아요. 아니, 사실은 문제를 마주하기 무서웠어요. 외면하면 지금 이대로 무탈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죠. 돌아보니 저는 알고 있었던 거예요. 제 오른쪽 금니에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씌워두었던 금에 아주 미세한 구멍이 있는 걸 보니 그 작은 틈 사이로 충치균이 들어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균열의 시작은 늘 사소한 것에서부터라는 사실이요. 충치 하나로 뭐 이렇게까지 생각하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오래된 충치를 뽑던 그날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 인생에 관하여, 어쩌면 제 삶의 태도에 있어서요.
30대 중반의 어른이 되면서 마음에 새긴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비움’이라는 단어인데요. 문득 서른이 되기 직전 삶을 돌아보니 열심히 채우기만 했던 20대였습니다. 멋진 이립(而立)을 맞이하고 싶었는데 힘이 들었어요. 곰곰이 마음을 살펴보니 더 이상 무언가를 채울 공간이 없어 과부하가 걸려버렸습니다. 삶의 태도에 있어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구나, 30대가 되어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여유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워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래된 낡은 것들을 보내주어야만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을요. 그 후 미니멀리즘을 꿈꾸며 늘 비움을 실천하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습니다. 계절 하나 바뀔 때, 오래된 옷 한 벌 버리는 것조차 어렵더라고요. 헌 옷을 기부도 해보고 나눔도 해보면서 연습 중이지만 비우는 것은 늘 힘들어요. 그런 저에게 ‘이 하나’ 뽑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어요.
이번 일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요, 그동안 어쩌면 안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에요. 변화를 거부하고 편한 것만 추구하고 있었어요. 분명 제 안에 오래된 것들, 보내줘야만 할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며 보내달라는 시그널들을 찾아야겠어요.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이 되기 위하여 앞으로 고군분투하겠습니다. 새로 채워질 임플란트와 함께 할 미래도 기대가 됩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워야 한다는 것,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지금의 여러분은 잘 비워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