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회적기업 불나방 Dec 28. 2020

16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 도시재생은 잘 모르지만

아버지 생각엔 그러면 네가 많이 힘들 것 같구나


1


  "도시재생센터인가 사회적기업센터인가 거기 계속 다니면 안 되니?"
  "예. 그만두겠다고 했고 결정 났어요."

  "그래. 흠... 요즘 일자리도 잘 없을 텐데. 네 자리에 다른 사람 뽑았니?"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일하겠다는 사람 줄을 섰어요."

  "그렇겠지. 다들 힘든 시기니까. 왜 그만둔 거냐? 계속 다니지."

  

  L은 아버지에게 소주잔을 건네며 말했다.

 

  "참을 수가 없었어요. 뒷돈 받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뒷돈?"

  "네. 예산 500만 원을 쓰기로 사업주랑 입을 맞춘 후 300만 원만 실제로 쓰고 200만 원은 다시 받았어요."

  "흠......"

  "그 돈을 개인 주머니로 넣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이런 행동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 후로 서먹해졌어요. 저는 책임질 사람도 없고, 그렇게 돈을 벌고 싶지도 않으니 그만뒀어요."

  

  L의 말을 듣고 한참 생각에 잠겼던 아버지는 소주를 한잔 들이켜고 말했다.


  "세상이 그래. 아버지는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네가 이야기하는 뭐 이런 것들 잘 모르지만 사회가 거의 다 그래. 뒷돈 받아먹고 그런 사람들 많아. TV에도 매일 그런 이야기들 나오지. 후, 세상이 그래.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는 네가 세상이랑 타협하라는 말은 안 해. 그렇지만 너무 예민하게 굴지는 마. 그러면 너만 힘들어.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벌써 다 이야기해놓고 자기들끼리 다 뭉치고 그러고 살고 있어. 네가 여기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너무 예민하게 굴지는 마. 너만 힘들어, 너만."


  '알고 있어요. 세상이 그런 걸.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뭉치고 계속 이러고 사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힘들어요. 그래도 참을 수 없어요. 아버지는 하루 종일 운전하며 힘들 게 버는 돈을 걔들은 종이 쪼가리 눈속임으로 몇 백씩 쉽게 챙겨요. 그걸 제가 어떻게 보고 있어요? 전 싫어요. 전 진짜 싫어요.'


  아버지는 소주잔만 보고 있는 L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뭘 도와줄까?"   

  "도와주실 것 없어요."

  "네 엄마는 맨날 내가 너랑 이야기도 잘 안 한다고 뭐라고 하는데. 아버지가 뭐 이야기해줄 것이 없다. 뭐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라."

  "예."

  "그래, 잘 먹었다. 치우자."




2


  L과 아버지의 술자리는 이렇게 끝이 났다.


  L은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과메기를 산 자신과 사놓고 먹지 못해 챙겨 온 소주를 냉동실에 넣어둔 자신을 칭찬했다. 이러한 자신의 행동 덕분에 아버지와 난생 처음 둘이서 술자리를 가질 수 있었고, 아버지에게 난생 처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했어. 좋은 저녁이었.'


   자신을 오랜만에 칭찬하며 L은 깊은 잠에 들었다.


  


3


  '양심과 전문성으로 시민들과 함께 삶의 변화를 이끄는 센터장이 되겠습니다. 아... 다음에 뭐라고 쓰지. 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


  37살을 앞둔 L은 자기소개서를 쓰며 머리를 쥐어짰다. 벌써 7번의 퇴사를 경험한 L. 이만하면 그만할 때도 되었지만 (이만하면 L이 문제인지 L이 몸 담았던 조직이 문제인지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L은 8번째 퇴사를 위한 도전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번엔 조직의 '장'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L이 수많은 단어들 중 '양심'을 자기소개서 가장 처음에 쓴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른 '장'들과는 달리 '양심'을 가장 최우선으로 두는 '장'이 되어 조직을 이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조직의 '장' 경험이 없었던 L은 머리를 계속 쥐어짰다.


  '아... 힘들다. 뭐라고 써야 하지. 아... 아... 내가 경력상 부족해 보이는데... 아... 어떡하지.'


  문득 '뭘 도와줄까?' 하며 자신을 보고 빙긋 웃으시던 아버지의 미소 떠올랐다.


  '그래, 이번에 안되면 내가 하나 만들지 뭐. 하하-'


  여유를 찾은 L은 마음을 다잡고 계속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갔다.


.

.

.


  다가오는 새해엔 L의 빛나는 양심을 볼 수 있을까?


  사회적기업이든 도시재생이든 사회적경제든 어디든, 빛나는 양심을 볼 수 있었으면. 설령 빛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을 볼 수 있었으면.





  아버지와 먹은 과메기와 소주, 정말 달았다.


  자주 먹어야겠다.






  * '이상한 사회적기업, 이상한 사회적경제'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를 접하며 '이상한데.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분들은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이상한 것인지,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가 이상한 것인지 함께 이야기 나눠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15  사회적경제 랩스타가 되세요! MC사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