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능력이 이정도입니다.
"해당 업체와 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많이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E는 이제야 찝찝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는 해당 업체와 어떤 소통 문제가 있었기에 이렇게 늦어진 것인지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찝찝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그 일이 있은지 정확히 49일째 되던 날이었다.
49일 전.
'나야 뭐, 일도 안 하고 화면만 틀어 놓으면 되니까 좋지. 땡잡았네.'
E는 안내 포스터를 통해 행사 일정과 프로그램 내용을 확인했다.
'라인업이라... 또 연예인들을 잔뜩 불렀네. 웹툰 작가, 개그우먼, 가수, 방송인... 아주 버라이어티 하네. 행사 제목이... '청년이 청년에게', '청년이 사회적경제에게'. 음... 근데 이 사람들이 청년, 사회적경제랑 무슨 상관이 있지? 얼마 주고 이 사람들을 불렀을까? 왜 맨날 이런 식으로 돈을 쓸까.'
행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찼던 L은 모니터를 켜놓고 딴짓하다 힐끔힐끔 행사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또 한 분은... E 씨! E 씨의 밝은 미소가 눈에 들어오네요. E 씨에게 사인 CD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딴짓에 집중하며 웃고 있던 E는 깜짝 놀랐다. 가수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이 크게 불렸기 때문이다. E는 그렇게 가수의 사인 CD를 선물로 받게 되었다.
E는 박람회 주최 측에 주소와 연락처를 전달했다.
'아... 기분은 좋은데... 영~ 찝찝하네. 행사라도 열심히 볼 걸.'
34일 전.
'왜 CD가 안 오지. 뭐가 잘못된 거지. 3일 전에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메일로 물어봤는데 왜 답은 없는 거지? 자기들이 필요하고 급할 때는 전화도 하고 엄청 요구하면서 왜 내 질문에는 대답도 없지? 이런 일로 전화하기 싫은데. 나는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싶다고. 오늘이 근무 마지막 날인데... 아... 마지막으로 메일로 물어보자.'
E는 근무일지 제출과 함께 다시 한번 사인 CD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3시간 후에 주최 측으로부터 답변이 왔다.
'사인 CD 증정 이벤트는 계획에 있던 것이 아니라서 저희 측에서 빨리 발송해달라고 재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확한 일정 확인은 가수 측에 직접 문의를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주최 측의 답변을 읽으며 L은 어이가 없었다.
'계획에 없던 이벤트를 왜 갑자기 한 거지? 뭔가 있어 보이려고 했나? 비싼 돈 주고 가수를 불렀을 텐데 사인 CD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주최 측에서 묻지도 못하는 것인가. 내 주소와 연락처를 전달하기는 했을까? 여기는 왜 이렇게 어설프고 확실한 것이 없을까.'
E는 이 일에 대해서 이것저것 따지고 싶었으나 그만뒀다. 메일을 주고받은 힘없고 직급 낮은 직원이 자신으로 인해 무척 괴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저 사람 붙잡고 물어봤자 달라지는 것 하나도 없겠다. 내가 직접 알아보자.'
E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수의 SNS에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000님. 저는 E이라고 합니다.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서 죄송합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메시지를 쓰는 이유는...
...
...
000님, 예정에 없던 선물이라고 들었습니다. 보내주실 수 없으시다면 편하게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현재 상황을 말씀드릴 곳이 없어서 이렇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항상 멋진 모습 보여주시고, 좋은 음악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에휴, 올 때 되면 오겠지. 난 그저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고. 아, 후련하다!'
사인 CD에 대한 기대도, 사회적경제에 대한 기대도 싹 다 사라져 버린 L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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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는 얼마나 더 지나야 사인 CD를 받을 수 있을까? E가 사인 CD를 받게 된다면 주최 측 때문일까. 가수 측 때문일까. E가 직접 보낸 메시지 때문일까.
E는 과연 사인 CD를 받을 수 있을까? E가 사인 CD를 받지 못한다면 주최 측 때문일까. 가수 측 때문일까. E가 직접 보낸 메시지 때문일까.
부러워하실 것 없습니다~!
아직도 사인 CD 못 받았어요~!
영원히 받지 못할지도 몰라요~!